2020/03/29

전략적 측면에서 본 이문열 삼국지



『삼국지연의』에는 독화살에 맞은 관우의 팔을 화타가 치료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살을 가르고 뼈를 깎는 수술을 받으면서도 관우는 태연하게 마량과 바둑을 둔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쓴 이문열은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런데 흥을 깨는 일이 될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들춰보고 싶은 것은 정사(正史)이다. 진수의 삼국지에는 「화타전」에도 「관우전」에도 이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관우전」에 빠진 것은 별로 역사적 가치가 없어서라면 이해가 되지만, 대단찮은 치료 얘기까지도 상세히 적힌 「화타전」에까지 빠진 것은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삼국지 위지(魏志)의 여러 전(傳) 중에서 무제(조조), 문제(조비)의 기(記)와 원소, 원술 등 몇 사람의 전을 빼면 가장 긴 게 화타전이고, 화타는 거의 의자(醫子)라기보다는 방술사(方術士)에 가까울 만큼 신비하게 기록되어 있다. 『연의』의 저자가 민간의 속설이나 이제는 전해지지 않는 어떤 기록에서 그 이야기를 옮겨 적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나, 혹 그 신비한 화타를 빌려 관공을 높이려고 꾸며 넣은 얘기는 아닌지.(8권, 161-163쪽)

여기서 이문열이 실수한 부분이 있다. 삼국지 촉서 「관우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관우는 일찍이 날아오는 화살에 왼쪽 팔이 꿰뚫린 적이 있었다. 나중에 상처는 다 나았지만 구름이 잔뜩 낀 날이나 비오는 날이면 으레 뼈에 통증이 왔다. 의원이 말했다.

“화살촉에 독이 있었는데 그 독이 뼛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팔을 찢어서 뼛속의 독소를 없애면 통증이 사라질 것입니다.”

관우는 곧 팔을 펴고 의원에게 째도록 했다. 그때 관우는 마침 장수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열어 서로 마주했다. 팔에서 나는 피가 흘러 떨어져 그릇에 가득했지만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을 마시며 평소처럼 웃으며 말하였다.(촉서, 146쪽)

번성에서 조인과 싸울 때의 있었던 일이 아니고 화타가 치료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관우가 팔 수술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장수들에게 구운 고기를 잘라주기도 했다.

이문열은 왜 「관우전」에 나오는 수술 장면을 보지 못했을까? 일단 분량이 많아서는 아니다. 이문열의 말과는 달리 「화타전」은 『삼국지』의 다른 전보다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며, 「관우전」은 「화타전」보다도 분량이 적다. 관우가 수술 받는 내용은 배송지 주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진수가 서술한 촉서에 나온다. 이문열이 자기가 한 말과 달리 실제로는 진수의 『삼국지』를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문열이 진수의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어렵다. 이문열 삼국지가 나온 것이 1988년인데 내가 알기로 진수의 『삼국지』가 처음 번역된 것은 1994년이다. 리동혁의 『삼국지가 울고 있네』에서 지적하는 이문열 삼국지의 오역을 본다면, 당시 이문열은 『삼국지』 원문을 읽을 정도의 한문 실력을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문열의 한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이는 단순히 작가로서 게으른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문제다. 한문을 웬만큼 잘 하지 않고서는 번역서 없이 혼자 힘으로 역사서를 읽기 힘들다. 번역서 본문에 그렇게 많은 주석이 달려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이문열이 나본이나 모본을 정통으로 번역하거나 진수의 삼국지에 기반하여 새롭게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평역’이라는 제3의 길을 선택한 것은, 꽤나 전략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번역과 완전 창작 중 어느 길로도 가기 힘들었던 이문열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기에는 평역이라는 형태가 가장 좋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이문열 삼국지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일종의 전략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다.

* 참고문헌

나관중, 『삼국지』, 이문열 평역, 개정판 (민음사, 2002).

진수, 『삼국지 촉서』,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2020.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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