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잡담 - 2017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잡담 - 2017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8/02/28

윤서인 대 정우성

      

한국 격언에 “잘 생긴 사람은 인물값을 하고 못 생긴 사람은 꼴값을 한다”는 말이 있다.

 
 
 
 
  
  

* 링크: [위키트리] “잘생긴 거 하나도 소용없다” 정우성 다시 저격한 윤서인

( 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323349 )

(2017.12.28.)

     

2018/02/27

10대 후반의 토마스 쿤

     

한국에서 나온 책이든 외국에서 나온 책이든 토마스 쿤과 관련된 책 표지에는 중년 이후 쿤의 사진을 쓴다. 10대 후반의 쿤은 이렇게 생겼다.

 
 
 
 

* 출처: Robert J. Richards and Lorraine Daston (eds.)(2016), Kuhn’s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at Fifty: Reflections on a Science Classic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12.27.)

    

2018/02/23

동양과학사 선생님의 종강모임 건배사

     

협동과정에서 종강 모임을 했다. 동양과학사 선생님이 건배사를 하셨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동지(冬至)입니다.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동양에서는 음이 쇠하고 양이 다시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동지에 해당하는 주역 괘는 복괘(復卦)입니다. 맨 밑에 있는 효 하나가 음이고 그 위가 모두 양인 괘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학기말에 기말보고서 쓰느라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온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옆에 있는 대학원생한테 조용히 말했다. “좋은 말씀인데 비유가 약간 틀린 것 같아요. 동지는 대학원생이 아니고 교수 임용 직전의 박사죠. 대학원생은 계속 밤이구요.”
  
대학원생의 상황을 나타내는 괘는 복괘가 아니라 산괘(山卦)일 것이다. 산괘는 산 위에 산이 겹친 형국을 나타낸다.
  
  
(2017.12.23.)
    

2018/02/19

대학원 진학의 의미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선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실수했네.” 그 말을 듣고 내가 물었다. “대학원 진학을 말하는 건가요?” 과학철학 대학원생들 중 대부분은 학부를 이공계에 다닌 사람들이다. 곧바로 취업을 할 수도 있었고 이공계 대학원으로 갈 수도 있었고, 실제로 이공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철학 전공 대학원생이 된 경우도 있다. 참고로, 나는 문과로만 살았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선배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 세계가 나에게 적대적으로 변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런 말은 키가 180센티가 넘는 미남이 했을 때나 어울리니까 잘 생긴 대학원생한테 저작권료를 받고 파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선배도 나에게 대학원 진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1조 달러를 가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짐바브웨 달러로요.”

(2017.12.19.)

2018/02/15

존경하는 철학자

     

직장인인 친구가 나에게 존경하는 철학자가 누구인지 물어보아서 대답했다. “그 사람 누구냐? 처음 들어본 사람인데.”, “응, 내 지도교수.”

내년에는 존경하는 철학자가 바뀔 예정이다. 아마도 갱신이 아니라 추가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2017.12.15.)

2018/02/09

신은 수학자인가?

미국의 천체물리학자인 마리오 리비오(Mario Livio)가 코넬대에서 강연을 할 때였다. 리비오가 준비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신은 수학자인가?” 이 문구를 보자마자 앞줄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한숨을 내뱉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

* 출처: 마리오 리비오, 『신은 수학자인가』, 김정은 옮김 (열린과학, 2010), 11쪽.

(2017.12.09.)

2018/02/08

개나 소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현상

요즈음은 개나 소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것이 유행인 모양이다. 누가 페미니스트인지 알려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무엇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약간 질문을 바꾸어보자. 누가 과학자인가? 과학을 하는 사람이다. 과학은 무엇인가? 과학자가 하는 학문 활동이다. 이런 식으로 정의가 순환하면 안 되니까 과학과 과학자 중 한 쪽에 우선성을 부여해야 할 텐데 어디에 우선성을 부여해야 하는가? 쿤에 따르면, 과학자에 우선성을 부여해야 한다. 과학이 무엇인지는 과학철학자들끼리도 쉽게 합의가 되지 않는 문제지만 과학자들은 과학 공동체에서 과학 활동을 한다. 어떤 규범을 따라야 하는지 명시되지 않아도 과학자들이 과학 공동체에서 과학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명시적인 규칙을 따라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과학 공동체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과학교과서이다. 과학도들은 과학교과서를 통해 과학을 배우며 학자가 될 준비를 한다. 교과서로 과학을 배울 때는 과학적인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인 정의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것이 적용되는 모범 사례와 함께 배운다. ‘힘’이나 ‘질량’ 같은 개념을 배우는 것은 사전적 정의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연습 문제를 풀면서 그러한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익히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실험 기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실험 결과가 나타내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이 교과서에서 배운 개념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배운다.

이는 누가 어떤 주의자인지를 이야기할 때도 응용할 수 있다. 누가 사회주의자인가? 사회주의자 공동체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사회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있을 것이다. 팽팽하게 경합하는 이론들 중 어느 것이 옳은지 개념적인 탐구를 한 다음에 사회주의자가 된다면 아마도 사회주의자가 되기 전에 늙어죽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개념을 익히는 것은 사전적인 개념을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에 대한 응용을 하면서 익히는 것이다. 어떤 응용이 적절한 응용인지는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사례들이 축적되고 모범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가 구분되며 정교하게 되고 이것이 그 다음 이론 서적에 반영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주의에서도 어떤 주의에 대한 정의보다 어떤 주의자 공동체가 우선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인가? 그들에게 이론적인 기반 같은 것은 있을 리 없다. 그들은 어느 공동체에서 무슨 활동을 하는가? 트위터 활동이다. 참 대단한 활동이다. 트위터에서 트윗트윗 하는 것을 퍽이나 대단한 정치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든 자신의 활동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든 그건 자유지만, 여가 활동은 여가 활동일 뿐이니까 주제 넘게 까불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현상 자체는 좋게 본다. 그것은 쥐뿔도 모르는 사람들 눈에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것, 무엇인가가 바뀌는 것이 좋아 보이거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대체로 센 쪽에 붙으려고 하기 마련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가 넘고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에 일체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 중 의식 있어서 그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 대통령 때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고 했을 것이고 분위기에 따라 편승하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의식적 각성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쪽으로 힘이 쏠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개나 소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현상 자체는 좋은 징표다. 페미니즘 이론가나 활동가들이 그러한 사람들의 무지나 허영심을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2017.12.08.)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