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9

[과학사] 정은진 (2014), “마파 문디(Mappae Mundi): 지도에 그려진 유토피아” 요약 정리

     

[ 정은진 (2014), 「마파 문디(Mappae Mundi): 지도에 그려진 유토피아」,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 제41집, 233-257쪽 ]
  
  
  I. 서론
  II. 지도, 공간과 역사 그리기
  III. 마파 문디에 그려진 지상낙원
    1. 낙원의 지리적 위치
    2. 낙원의 지형도
  IV. 사라진 지상낙원
  V. 나가며: 에덴동산에서 행복도시로


  I. 서론

■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에 실린 지도 [233쪽]
-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살아있는 동안 출간된 『유토피아』는 다섯 가지 판본
- 초판은 1516년 12월 벨기에 루뱅에서 디크 마르텐(Dirk Martens)이 출판함.
• 토마스 모어가 원고를 에라스무스(Erasmus)에게 보낸 것은 1516년 9월 3일
• 에라스무스는 『유토피아』의 초고를 대폭 수정하여 초판을 찍어냄.
- ‘유토피아’라는 명칭은 에라스무스가 편집하는 과정에서 탄생함.
• 토마스 모어는 라틴어로 ‘어디에도 없음’을 뜻하는 ‘누스쿼마’(Nusquama)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에라스무스가 이를 희랍어 방식으로 바꿈.
• 그 밖에도 초고의 다양한 명칭이 희랍어 방식으로 바뀜.
- 『유토피아』를 추천하는 인문학자들의 추천사들이 서문 형식으로 추가됨.
- 6행시는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의 누이의 아들 계관시인 아네몰리우스가 유토피아 섬에 대하여 쓴 것으로 1516년 초판부터 네 번째 판까지 모든 판본에 실림.
- 초판에는 이 시외에도 유토피아의 지도와 유토피아 알파벳이 실림.
• 초판에 실린 지도는 작자 미상
- 1518년 3판에서는 암브로시우스 홀바인(Ambrosius Holbein)이 그린 목판지도로 바뀜.

■ 논문에서 다루는 것 [235-236쪽]
- 두 지도의 가장 눈에 띠는 차이는, 초판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1518년 판에는 등장한다는 점.
- 정은진은 『유토피아』에 삽입된 지도에 주목하여 유토피아라는 ‘없는 나라’가 어떻게 지도로 그려질 수 있었는지 중세에 제작된 지도 특히 낙원의 모습이 그려진 세계 지도, 즉 마파 문디 (Mappa Mundi)를 통해 살펴보고자 함.
• 유토피아의 지도를 포함하여 지도를 과학적 지도는 물론 시대의 세계관이 반영된 시각물로 함께 다루고자 함.
• 이를 위해 II장에서 지도와 회화의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할 것임.


  II. 지도, 공간과 역사 그리기

■ [237쪽]
- ‘지도’(map)라는 말의 유래는 라틴어 ‘마파’(mappa).
• 마파는 ‘옷’을 의미함.
- 지도로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상징적 기호, 그림, 도면이 있음.
- 최초의 지도들과 최근의 지도들은 지도에 기호를 사용하여 세계를 표현함.
- 모든 그림지도, 특히 조감도(bird’s eye view)와 같은 관점을 활용해 만든 지도(평면도)는 미술과 지도 제작의 그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임.
• 초기 지도 중 몇몇은 이런 방식으로 그려짐.
- 지도 제작은 기호에서 시작하여, 그림 기법을 거쳐 다시 기호 표현으로 변화함.

■ [237쪽]
- 기원전 5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제작된 <시파르 점토판 지도>.
• 점토판 위에 사각형으로 시파르 도읍을 표시함.(도 3)
• 광활한 지역의 관계수로 체계를 표시함.
- 고대사회에서 숙련된 지도제작은 문자와 수학의 발달을 의미하기도 함.
- 고대 사회에서 지도를 만든 주요한 이유는 땅과 관계수로, 도시 구획, 영토의 소유권 등을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임.
- 실용적인 목적뿐 아니라 지도는 그 사회의 세계관을 나타냄.
• 예) 이집트에서 제작된 파피루스 지도는 종종 사후세계의 이상향을 그리기도 함.
- 현세의 삶을 기록해 죽은 자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만든 지도는, 당대의 농경문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죽은 이의 행복한 영생을 기원한 것.
- 고대 그리스 지도는 나무판이나 청동판 위에 그리거나 새김.
- 그리스 지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들 중 하나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등장함.
• 아킬레스의 방패 위에 물로 둘러싸인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다는 것.
• 이 지도는 지구를 하나의 섬으로 보여줌.
- 밀레토스 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546)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 중 하나를 그린 사람임.
- 여러 지역을 항해하며 무역을 했던 그리스인들은 여행자에게서 입수한 정보를 해석하여 세계에 대한 정보를 남김.
- 기원전 3세기 경,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 BC 276-194)는 『지구의 측정』(Measurement of the Earth), 『지리지』(Geographika)에서, 지구 둘레를 측정하는 방법과 지도로 그리는 법을 고안함.
• 실제로 그가 계산한 수치의 오차는 76km 이내.
- 자신들이 알고 있던 곳이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그리스인들은 지구를 탐사와 지도 제작이 필요한 곳으로 여김.

■ [238쪽]
- 2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도 제작 방식의 혁신을 일으킴.
-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 안내』(Geograpike hyphgesis)
• 천문 자료에 기초하여, 지구 구형의 표면을 위도와 경도라는 격자로 나누어 각 장소의 위치를 쉽게 확인하게 만듦.
• 이 경위선들은 자유롭게 구부려지면서 투영도법에 적용될 수 있음.
-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는 현존하지 않지만, 15세기 판본들이 남아있음.
• 원뿔형 도법을 사용한 이 지도에는 왼쪽 위에 유럽, 왼쪽 밑이 아프리카, 그리고 오른쪽 아래 스리랑카가 큰 섬으로 그림(도 4).
-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로마에서는 도로가 가장 중요했기에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포이팅어 지도(Tabula Peutingeriana)와 같은 도로 지도(road map)가 완성됨(도5).
• 지도에서 산맥은 옅은 갈색, 강은 녹색, 숲은 무리지어 있는 나무로 나타냄.
• 휴게역과 함께 주도로를 표시함. 
• 지도의 비율은 남북 거리가 동서 거리보다 훨씬 더 작은 축척으로 나타남.
• 거리는 휴게 역 사이의 이정표를 덧셈해 계산함.
- 도시 로마는 한 손에 구형의 물체를 들고 다른 손에는 창을 들고 방패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함.
• 지중해 동부 지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을 확대해 보면 바다 가운데 키프로스 섬의 모습이 선명하며, 섬 오른쪽에는 안티오크는 긴 창과 방패를 든 인간의 모습으로 그림.

■ [239쪽]
- 비잔틴 제국에서 남아 있는 주목할 만한 지도는, 요르단의 마다바(Madaba)라는 오래된 도시에서 1884년에 발견된 <마다바 지도>임.
• 이 지도는 6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 현재는 파편으로만 남아있음(도 6).
- 이 지도는 비블로스와 다마스쿠스에서 시나이 산과 이집트의 테베까지 보여주었던 것으로 추정됨.
• 예루살렘은 성벽에 둘러싸인 섬처럼 표현되었으며, 다마스커스 성문(Damascus Gate), 성묘 교회(the Church of Holy Sepulchre)와 같은 구 도시의 주요 건물들을 나타냄.
• 요르단 강과 함께 강 속의 물고기, 작은 영양을 사냥하는 모습 등을 함께 담음.
- <마다바 지도>는 지리학에서 지도의 역사를 언급할 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미술사에서는 비잔틴 모자이크를 설명할 때도 언급됨.
• 도시의 주요 부분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 지도의 역할이라면, 물고기나 사냥하는 모습을 담은 점은 모자이크 회화임.
- 문명이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에서 동로마제국까지, 고대 사회의 지도는 미술과 그 영역을 분리하기 어려움.

■ [241쪽]
- 중세는 세상을 자연과학적 시각보다 신학적 틀로 보았기 때문에 지형을 나타내는 지도를 그리는 일은 매우 드물었음.
• 기술의 연구는 초보적 수준에 머물렀으며, 전반적인 지리 연구 수준도 단편적이고 불완전했음.
- 이 시기의 지도는 마파 문디, 포르톨라노 해도(Portolan Chart), 지역 지도로 분류됨.
- 마파 문디는 주로 수도원에서 제작됨.
• 시편과 성 베아투스(St. Beatus)의 묵시록 주해에 나타난 (유토피아의 지도처럼) 일종의 삽화로 볼 수 있음.
- 포르톨라노 해도는 12세기 초에 만들어진 초기 해양지도임.
- 1360년 무렵 제작된 <고흐 지도>는 620개의 거주민 마을을 포함한 영국 전역을 묘사함(도 9).
• 잉글랜드 동부가 서쪽, 특히 스코틀랜드보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됨.
- 지도 제작에서 중요한 점은 방위를 표시하는 것
• 흥미로운 점은 <고흐 지도>와 마파 문디는 동쪽을 위로, 포르톨라노 해도는 북쪽을 위로 표시한 것.
• 포르톨라노 해도는 선원들이 나침반을 이용하여 그린 것이라서 북쪽이 위로 표시되면 나침반을 맞추어 읽는 데 간편했기 때문임.
- 그렇다면 마파 문디는 왜 동쪽을 위에 표현 했을까?


  III. 마파 문디에 그려진 지상낙원

    1. 낙원의 지리적 위치

■ [241쪽]
- 중세의 지도 제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신학이며, 특히 성서에 의존함.
- 1350년 제작된 <힉든 지도>(Higden Map)
• 맨 상단(동쪽)에는 낙원, 가운데는 예루살렘, 그리고 하단(서쪽) 지브롤터 해협에는 헤라클레스의 기둥(Columnae Herculis)이 나타남.(도 10).
- 이 상징들의 위치는 성서적 시간의 흐름과 일치함.
• 인류 역사가 아담과 이브가 거주하던 에덴 동산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로 정점을 맞고, 그리스도가 재림함으로써 인류의 종말이 도래한다는 것.
• 이는 성서의 각 책들이 배열된 순서와도 유사함. 천지창조가 일어난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재림과 구원받은 신자들이 거주할 새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요한묵시록』에서 마치는 것.
- <힉든 지도>와 같은 마파 문디는 인류의 시작과 종말을 그리스도교적인 세계관에 입각하여 지도화한 것
• 이 지도에 낙원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잘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는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스케치한 흔적이 있음.

[243쪽]
- 성서에서 말하는 낙원(에덴)은 동쪽에 위치하는 나무가 있는 동산이고, 강이 시작되어 네 줄기로 갈라지며 하느님이 빚은 사람(아담과 하와)이 있는 곳임.
- 7세기 이시도루스(Isidore of Seville)는 『어원학』(Etymologies) 14장에서 낙원의 지리적인 특성을 정리함.
• 『어원학』은 중세 수백 년에 걸쳐 재출간될 정도로 중세의 지식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지도 제작자들은 이시도루스의 낙원 표현을 지속적으로 이용함.
• 이시도루스의 영향은 자연에 대한 백과사전인 『만물』(De Universo)을 집필한 마우루스(Rabanus Maurus, 780-856)에게 이어짐.

[244쪽]
-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낙원을 실재하는 어떤 장소라고 밝히고, ‘생명의 나무’가 있었다고 주장함.
- 중세 지도 제작자들은 낙원을 동쪽에 위치한 대양 너머 인간이 갈 수 없는 내륙이거나 인도 동쪽의 섬 또는 인도 동쪽의 내륙으로 위치시켰으며, 성서에 기술된 이상의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음.


    2. 낙원의 지형도

■ [244-245쪽]
- 마파 문디에서 에덴동산을 표현한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낙원에 아담, 이브, 선악과 나무나 생명수를 표시하고 담장과 같은 울타리를 표시하는 것.
- 1109년에 제작된 <베아투스 지도>(Beatus Andres de Arroyo)
• 낙원은 아담과 이브, 생명의 나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탄을 그려서 표현되었으며, 그 위치를 코카서스, 아시리아, 페르시아, 칼대아, 그리고 인도 사이의 지역 즉 인도의 북쪽 지역에 둠(도 11).
- 1220년 제작된 <베아투스 지도>
• 여러 지정학인 표식들과 함께 화면 상단에 아담과 하와가 등장함(도 12).
- 1235-40년에 제작된 <에브즈도르프 지도>(Ebsdorf Map)
• 맨 상단의 가운데 그리스도의 얼굴이 있고, 그 오른쪽에 낙원이 있음(도 13).
- 1086년 제작된 <베아투스 지도>
• 낙원을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낙원에서 발원하는 네 강이 사각형 안에 교차됨(도 14).
- 1270년에 제작된 <베르첼리 지도>(Vercelli Map)처럼 사각형 안에 십자가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음(도 15).
• 낙원의 모습을 사각형으로 표시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성막(Tabernacle)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가능함.
• 낙원에서 발원하는 강을 지도에 그리는 것은 기쁨의 상징인데 에덴이라는 지명 자체가 ‘기쁨’, ‘즐거움’, ‘희락’의 의미를 지님.
• 초대 교부인 데오필로(Theophilus)는 네 줄기로 나뉜 강은 네 가지 선을 의미한다고 함. 비손은 ‘신중함’, 기혼을 ‘절제’, 그리스는 ‘용기’, 유프라테스는 ‘정의’
- 1260년 경 제작된 <시편 지도>
• 지도에 그려진 낙원에는 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네 강에 갠지스 강을 추가하여 다섯 개의 강이 흐름(도 7).
- <코튼 지도>(Cotton Map)
• 낙원을 그리지 않았지만 낙원에서 발원한 네 강은 표기함.
• 특히 비손을 낙원의 강(flumen paradisi)으로 표기하여 낙원의 존재를 암시함(도 16).

■ [246쪽]
- 마파 문디에서 지상낙원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은 성으로 표현하는 것
- 1448년 발슈페르거(Andreas Walsperger)가 제작한 지도
• 하늘을 상징하는 원 형태의 가운데에 예루살렘이 있음.
• 빨간색은 그리스도교 도시, 검은색은 비(非)그리스도교 도시로 구별함(도 17).
-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종종 지상낙원의 또 다른 모습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성으로 표현된 예루살렘이 낙원의 상징이 된 것.
• 낙원을 성으로 표현한 것은 과거의 낙원(에덴)과 미래의 낙원(예루살렘)을 중첩하여 표현한 것.
- 1300년 경 그려진 <헤리퍼드 지도>(Hereford Map)에서 낙원은 성과 성문으로 표현됨(도 18).
• 낙원에서 원죄를 범하는 장면과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모습이 함께 나타남.
• 원형으로 그려진 낙원 안에는 네 강이 흐르고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음.
• 같은 공간의 하단에는 낙원의 문이 있음.
• 원형의 낙원 아래, 부정형 공간에는 낙원추방이 그려지는데, 여기서 낙원은 성으로 묘사됨. 성 앞에는 케루빔이 아담과 이브를 내쫓음.
• 낙원의 성문은 닫힌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닫힌 문은 언젠가 열린다는 것을 전제할 때 이것은 낙원과 인간의 일시적인 분리를 의미함.
- 결국 마파 문디에서 지도의 맨 위를 동쪽으로 표현한 것은 성서에 근간한 그리스도교 적인 세계관을 표현한 것
- 지도 제작에 근간이 된 성서적 시각은 14세기부터 변화가 감지됨.


  IV. 사라진 지상낙원

■ [248쪽]
- 1321년 베네치아의 지도 제작자 피에트로 베스콘티(Pietro Vesconte)가 제작한 <마파 문디>
• 동쪽을 위로 하고 예루살렘을 가운데 놓은 전통적인 마파 문디의 형식을 고수
• 지도 위에 항해선을 표시하여 포르톨라노 지도의 성격도 함께 보여줌(도 19).
• 낙원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인더스 강에 기혼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낙원이라는 존재를 인정함.
• 이 지도는 십자군 원정 때, 동방의 성지탈환이라는 목적으로 제작됨.
- 낙원을 묘사한 중세지도에서 르네상스 지도로의 전환을 나타내는 이정표적인 지도는 <프라 마우로 지도>(Fra Mauro Map) (도 20).
• 프라 마우로가 1450년 제작한 지도는 남쪽을 위로 정함.
• 지도 안에 직접 낙원을 표시하지 않은 대신 그는 지도 외곽에 낙원을 위치시킴.
- 이는 중세의 지도 제작 전통을 깨뜨린 것
• 지도가 종교적 영향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태도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
• 지도에 쓰인 문자를 라틴어 대신 베네치아 방언으로 표기한 것도 지도 제작 방식이 전환된 것임.
- 프라 마우로는 낙원을 지도 외곽의 장식 부분에 위치시킴.
• 지도 외곽으로 나간 낙원은 그 표현이 이전보다 구체적임.
• 원형으로 그려진 낙원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낙원 한 가운데는 샘과 선악과가 있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 그리고 이들을 꾸짖는 하느님의 모습이 나타남.
• 샘에서 나온 물은 낙원 밖으로 흘러 네 강으로 흘러가고, 낙원의 문 앞에는 케루빔이 지키고 있는 것까지 자세하게 묘사함.
- 프라 마우로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를 지도 밖으로 빼내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지도의 중심이 아닌 서쪽에 위치시킴.
• 이는 마르코 폴로와 포르투갈 탐험가들로부터 알게 된 새로운 정보를 반영한 것
• 프라 마우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경위도를 사용하고 싶었으나 표기할 공간이 부족해서 사용하지 못했다고 언급함.
- 이 지도는 중세에서 근대로 향하는 전환점이 되는 지도이며, 지도가 회화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이기도 함..
- 그러면 이렇게 지도상에서 낙원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 [249쪽]
- 가장 큰 요인은 포르톨라노 해도의 영향.
- 중세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동일한 지도 제작자가 세계지도와 포르톨라노 해도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짐.
• 실용적인 지도인 포르톨라노 해도를 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지도 제작에서도 실용적인 방식을 도입하게 되고, 이는 낙원의 부재로 이어짐.
• 실제로 세계지도를 제작할 때 항정선을 먼저 그린 다음 세계의 윤곽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낙원의 표지가 사라지게 된 것임.
- 또 다른 요인은 15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프톨레마이오스의 재발견
- 프톨레마이오스는 경위도 좌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소의 의미에 따른 위계를 부여하지 않았음.
• 정확한 위치에 장소를 두었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장소라 해서 중요한 위치에 표시하지 않았음.
•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 제작법을 택한 사람들은 낙원에 대한 경위도 좌표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공간의 특정 지역에 낙원을 위치시키는 것을 꺼리게 됨.
• 예루살렘을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지도상에 표기하는 것도 어려워짐.
- 프톨레마이오스의 재발견은 콜럼버스와 마젤란과 같은 탐험가에 의해 지리정보가 풍부해졌기 때문임.
- 동아시아로 여행한 많은 여행자들의 경험은 더 이상 낙원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불가능해짐.

■ [250쪽]
- 무엇보다 낙원이 지도에서 사라진 데는 당시 신학적인 변화도 원인으로 작용함.
- 15세기 신학자들은 여전히 아퀴나스를 따르지만 에덴의 절대적인 위치에 대해서는 이전과 다른 입장을 취함.
• 성경의 비유적인 해석을 강조하여 낙원을 지리적인 위치가 아닌 비유적 장소로 간주하게 된 것임.
- 루터 『창세기 주석』
• 지상낙원은 존재하였으나 노아의 홍수에 의해 사라졌거나 인간의 원죄에 의해 낙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낙원의 위치를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주장함.
• 역사적으로 낙원은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비유의 의미만 가진다는 것. 낙원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인간이 알려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
- 그러면 이제 지도에서 사라진 낙원은 어디에 있을까?


  V. 나가며: 에덴동산에서 행복도시로

■ [250쪽]
- ‘없는 나라’인 유토피아가 지도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에덴을 동쪽에 그렸던 마파 문디 전통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음.
- 그러나 본 연구는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한 장의 지도 삽화에 관심을 두었다. 아담과 이브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섬의 모습은 마파 문디에 그려진 낙원의 모습과 유사하다.
  
  
(2018.04.30.)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