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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2

연구 분야나 관심 분야를 표기하는 방법



핵심어를 단순히 나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연구 분야나 관심 분야를 소개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사람 만날 때마다 전공 분야가 바뀌는 준-사기꾼들이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싶어 하는 허영심 가득한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 놈들은 “오는 길에 귀여운 고양이를 보았다”고 말하면 될 것을, 고양이의 계-문-강-목-과-속-종을 일일이 언급하면서 마치 분류학에 정통한 사람인 듯한 냄새를 풍기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단지 정돈 안 되고 정신 산만한 사람이 두서없이 자기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의 핵심어를 나열하면, 마치 다재다능한 척, 르네상스 지식인이라도 되는 척 뽐내는 준-사기꾼이나 허풍선이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군더더기 없이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에 대해 소개하더라도 상대방이 해당 분야가 어떤 것인지 금방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경제학의 철학과 사회과학의 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면,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한 분과이니 그냥 사회과학의 철학으로 묶이는 것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꼭 나온다. 경제학이 사회과학의 한 분과인 것은 맞는데, 경제학의 철학과 사회과학의 철학은 상당 부분 겹치지 않기 때문에 경제학의 철학이 사회과학의 철학에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 그런지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다 보면, 이야기를 듣던 사람은 눈이 풀려 있거나 자꾸 다른 곳을 보려고 한다. 그렇다고 설명하다 중간에 멈추면 상대방을 무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 하던 말은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전공 분야나 관심 분야의 분류 체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가령, 떠벌떠벌 말하는 것이 습관인 사람이 “나는요, 일단 철학 전공이구요, 그 중에서 과학철학 전공인데요, 과학철학도 프랑스철학 쪽과 영미분석철학 쪽이 있는데 분석철학 쪽이구요, 경제학의 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요새는 계량거시경제학 쪽에 관심이 있어서 박사학위논문은 그 쪽으로 쓰려고 하는데, 인과를 다루려구요. 인과는 형이상학의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인데...”라고 말한다고 해보자. 간단히 말하면, 아직 박사학위도 없고 학위논문 작업에서 진척된 것도 없는 주제에 떠벌떠벌 하는 것인데, 하여간 철학, 과학철학, 프랑스철학, 분석철학, 경제학의 철학, 계량거시경제학, 인과, 형이상학까지 여덟 단어나 나왔으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말을 듣고 멍청이들이 속아 넘어가도 문제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의심해도 문제다. 해당 분야를 분류 체계로 정돈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피할 수 있다.

철학 > 과학철학 > 경제학의 철학 > 거시경제학에서의 인과 (분석철학)

형이상학에서 논의되는 인과에 관한 논의를 잘 모르면 위와 같이 한 줄만 적으면 될 것이고, 인과에 관한 일반적인 논의도 웬만큼 안다면 다음과 같이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철학 > 과학철학 > 경제학의 철학 > 거시경제학에서의 인과 (분석철학)

철학 > 형이상학 > 인과

이러한 제시 방식을 응용하면, 경제학의 철학과 사회과학의 철학이 어떤 식으로 다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직관적인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다. 가령, 관심 분야를

철학 > 과학철학 > 경제학의 철학

철학 > 과학철학 > 사회과학의 철학

이라고 제시하면, “철학 > 과학철학 > 사회과학의 철학 > 경제학의 철학”이라고 제시하지 않은 점에 근거하여 두 분야가 포함 관계가 아닐 수 있겠다고 추론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에 연구가 잘 되어서 연구 분야가 확장되었다고 해보자. 거시경제학에서의 인과를 연구하다가 계량경제학사에도 손을 대었고, 1940년대 계량경제학의 태동기의 인과 관련된 논의도 손을 대서 경제학사 논문도 쓰게 되었다고 하자. 이 경우, 연구 분야를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철학 > 과학철학 > 경제학의 철학 > 계량거시경제학에서의 인과

역사학 > 과학사 > 경제학사 > 계량경제학사 > 1940년대 > 인과

이렇게 나타내면 특별히 많은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두 연구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내적인 연관성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 연구가 확장되었을지는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연구가 잘 된다고 해도 너무 떠벌거리면 재수 없어 보일 뿐 아니라 멀쩡한 성과도 다른 사람에게 의심받을 수 있는데, 위와 같이 제시하면 연구 성과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었는지 짐작하기 쉽게 보이기 때문에 신뢰도도 잃지 않을 수 있다.

(2025.11.02.)


2025/12/29

<우주 생명 마음> 중간고사 이의신청에 대한 조치



지난주에 <우주 생명 마음> 중간고사를 보았고, 채점도 다 끝났다. 학생들에게 공지했던 대로 전부 선다형 문제로 냈는데, OMR 카드 리더기가 없어서 내가 손으로 채점했다. 채점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한 번 더 확인한 뒤, 다음 주에 학생들에게 개별적으로 성적을 공지할 생각이다.

오전반과 오후반을 모아서 한 번에 시험을 보면 문제도 한 세트만 내고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자면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시험 문제를 두 세트로 냈다. 아예 다른 범위에서 시험 문제를 낸 것은 아니고, 거의 같은 범위에서 문제와 선지만 바꾸었다. 같은 내용인데 오전반은 선지 중 맞는 것을 고르고 오후반은 틀린 것을 고르라고 한 문제도 있었고, 맞는 것/틀린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경우는 같은 문제에 일부 선지만 바꾸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오전반)

40. 다음 중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설을 주장한 소련 생화학자는 누구인가?

① 레닌

② 스탈린

③ 오파린

④ 푸틴

(오후반)

40. 다음 중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설을 주장한 소련 생화학자는 누구인가?

① 스탈린

② 오파린

③ 부하린

④ 푸틴

이런 방식으로 출제하면 오전반 학생이 오후반 학생에게 문제를 유출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고 걱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두 가지 대비책이 있었다. 하나는 답안지 제출할 때 문제지도 이름을 적고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문제지를 제출하지 않으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고 0점 처리한다고 공지했다. 다른 하나는 시험 전에 출제 문제에 대한 충분한 힌트를 준 것이다. 힌트가 충분하니 문제가 유출되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40번 문제에 대한 힌트로 제시한 키워드 세트는 “오파린, 코아세르베이트”였다.

중간고사 끝나고 나서 저녁 때 강좌 LMS에 문제지와 정답을 올린 뒤 문제 및 정답 이의신청을 받는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10월 31일(금)까지 ‘유효한 이의제기’를 하면 가산점을 주겠다고 했다. 중간고사 후 첫 수업 직전까지 접수된 이의신청은 총 네 건이었다. 유효한 이의제기란 문제에 결함이 있음을 증명하여 채점 결과를 바꾸는 경우를 말하는데, 접수된 네 건 중 유효한 이의제기는 없었다. 중간고사 후 첫 수업 때 학생들의 이의제기 내용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한 뒤, 유효한 이의제기가 없었으므로 가산점도 부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학부 다닐 때의 이야기를 했다. 학부 후배 중에 2점대 학점을 3점대 학점으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그 후배가 자기 후배들에게 자기가 학점을 올린 비결을 공개했다. 수업마다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고, 마치 무언가가 궁금한 것 같은 표정으로 수업을 듣고, 사실은 하나도 안 궁금한 데도 손 들고 질문했더니, 철학에 대해 추가로 알게 된 것이 거의 없는데도 학점이 1점 가까이 올랐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의 철학과는 전반적으로 수업이 파행적이었으니, 학부 후배의 행동은 정말로 학점 상승의 유효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해당 학생의 행동만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파행적인 수업의 틈새를 이용한 학생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제공한 교강사들에게 있다. 이는 강의료 받아놓고 개떡 같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의 인성에까지 악영향을 끼친 것이다. 살다 보면 먹고살려고 거짓말하게끔 되어 있는데, 대학에서부터 그런 것을 시킨다? 그래 놓고 무슨 놈의 교육이네 교육자네 하겠는가?

내가 학생들에게 말한 바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정말로 유효한 이의제기를 했다면 수강생 전체에게 도움을 준 것이므로,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의제기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떠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한 이의제기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가? 유효하지 않은 이의제기는 가산점을 받을 수 없다. 이의제기한 학생이 정말로 궁금했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들었다면, 이미 그 학생은 이의제기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만일 그것이 그 학생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면, 그 학생은 궁금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마치 궁금한 듯 거짓말을 한 것이다. 학생이 거짓말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그래도 이의제기를 한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자니 좀 그렇기는 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수고했고 좋은 시도였다고 하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2025.10.29.)


연구 분야나 관심 분야를 표기하는 방법

핵심어를 단순히 나열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연구 분야나 관심 분야를 소개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하나는, 사람 만날 때마다 전공 분야가 바뀌는 준-사기꾼들이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