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4

농담 잘하는 아저씨가 되고 싶다

   
방송인 중에 데뷔 초에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다가 연차가 쌓이면서 정치나 시사로 분야를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꼭 그래야 하나 싶다. 물론, 방송 수명을 늘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라고 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겠지만, 나이 든 사람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정치나 시사에 대한 전문성도 없으면서 이전에 보여주었던 유머와 해학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에 대한 어떠한 기대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가령, 중년 남성에게는 세상일에 대해 한두 마디쯤 할 수 있는 지식이나 경륜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지식을 갖추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지식을 갖춘 사람은 드물다. 세상 즐거울 일 없는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이 하루 종일 신문 보고 뉴스 본다고 해서 교양 있는 사람이 되거나 지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런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들의 지적 수준의 최대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나 <정규재TV> 정도다. 아저씨들이나 할아버지들이 아는 척 안 하고 똥폼만 덜 잡아도 훨씬 품위 있는 아저씨나 할아버지가 될 수 있다. 방송인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나이 좀 먹었다고 모르던 것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아는 척 하고 똥폼을 잡는가.
    
남들 연애사에 대해 명언 몇 마디로 이러쿵저러쿵 한 것으로 떴다고 하자. 머리가 새하얗게 될 때까지 명언을 모으는 것이다. 미국 명언, 프랑스 명언, 일본 명언, 그렇게 계속 명언을 찾고 찾다가 나중에는 고대 그리스 명언, 메소포타미아 명언, 고대 그리스 명언, 갑골문에 나오는 명언, 그렇게 계속 찾다가, 방송에서 안 불러주면 대학원 가서 명언 연구로 학위를 받는 것이다. 여자 꼬시는 법으로 떴다고 하자. 허리가 꼬부라질 때까지 여자 꼬시는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다. 10대 여자 꼬시는 법, 20대 여자 꼬시는 법, 30대 여자 꼬시는 법, 40대 여자 꼬시는 법, 그렇게 70대 여자 꼬시는 법까지 수집하는 것이다. 반세기 가량 이야기를 모으면 사료적 가치가 지닌 문헌을 남길 수도 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정치적으로 올바른 여자 꼬시는 법, 페미니즘에 부합하는 여자 꼬시는 법으로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왜 나이를 먹으면 재미없고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쥐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심각한 표정으로 개소리를 해야 하는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원로 코미디언들은 존경스러운 면이 있다. 그들은 70대, 80대가 되어서도 젊어서 하던 코미디를 한다. 코미디 소비층이 바뀌었지 그들의 기량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코미디언 한무는 어쩌다 방송에 나오면 사람 입으로 낼 수 있는 온갖 방귀소리를 모사한다. 뽀빠이 이상용은 지금도 수첩에 유머를 수집해 놓는다고 한다. 뽀빠이 이상용이 하는 개그 중 일부는 지금 들어도 재미있다.
  
나도 곧 있으면 마흔 살이 될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진중한 척 한다고 괜히 내 수준을 넘어서는 되도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실없는 농담을 썩 잘 하는 아저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하고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살면 됐지, 유식한 척 해봐야 다 들통 나는 거 굳이 그래야 하나 싶다. 유시민에 따르면, 사람은 60살이 되면 뇌가 썩기 시작한다고 한다. 정말로 뇌가 썩어서 농담을 재미있게 할 수 없게 된다면, 젊은 사람들 앞에서 농담 안 하고 나하고 비슷하게 늙은 사람들 앞에서 농담을 하면 될 것 같다. 치매가 오기 전까지는 동년배들이 재미있어할만한 농담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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