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31

나는 별 생각 없이 사는데

     

나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품이 잘 나간다든지 어떤 정치인이 잘 나갈 때 대부분은 사람들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안철수를 지지했는가? 괜히 안철수가 좋아 보이고 남들도 좋아하니까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왜 인문학 열풍이라는 것이 발생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이 뭔지 모르니까 그런 것 아닐까. 어차피 대부분의 인문대학에서는 등록금이나 받아먹고 학생들을 방생하니 다른 전공한 사람들은 더 모르지 않는가.
  
내가 이런 식으로 의견을 피력하면 몇몇 사람들은 “왜 너는 다른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느냐, 다른 사람도 너만큼 생각을 하고 산다”고 항의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특별히 무시한 적은 없다. 단지 나는 내가 별 생각 안 하고 살아서 남들도 나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하는 것뿐이다. 내가 한 대부분의 선택은 별다른 이유 없이 한 것이거나, 남들 하는 것을 따라한 것이거나, 괜히 남들 하는 것과 반대로 한 것이다. 내가 쥐뿔이나 뭘 알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나에 비추어보아서 남들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한 것인데, 남들은 나와 달리 사안마다 치밀한 분석과 논증을 거쳐서 얻은 결론에 근거하여 무언가를 선택했다는 말인가. 나만 똥멍청이인가.
  
사람들의 어떤 선택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라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그 사람들이 그런 결과를 예상하거나 의도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추가 자료나 논증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흰개미집이 건축공학에 부합한다고 해도 흰개미가 건축공학을 알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흰개미집이 건축 공학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따지는 것과 흰개미가 건축 공학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를 따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내 정신이 어떤지도 잘 모르겠는데, 시대 정신이랍시고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러는지 모르겠다.
  
  
(2017.08.31.)
     

2017/10/30

[과학기술학] 홍성욱 (2016), 2장 “네트워크로 보는 테크노사이언스” 요약 정리



[ 홍성욱, 「2장. 네트워크로 보는 테크노사이언스」,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동아시아, 2016). ]

1. 미 항공모함이 쿠웨이트까지 가려면

2. 실험실 속 제왕나비

3. 네트워크로 읽는 세상

4. 패러다임

1. 미 항공모함이 쿠웨이트까지 가려면

■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 정부의 도량형 개량 [120-122쪽]

- 도량형의 조건: 합리적, 자연에서 얻은 것, 속일 수 없는 것, 쉽게 복제해서 전파가능한 것

- 1미터: 적도에서 북극점까지의 자오선 길이의 1천만 분의 1

- 자오선의 길이를 실측하는 데 문제가 발생함.

- 당시 진자를 이용하여 길이의 표준을 얻는 방법이 있었으나, 프랑스 과학자들은 진자가 영국 과학을 대표하는 뉴턴의 중력 이론과 밀접하다는 이유로 이 방법을 채택하지 않고 탐사를 고집함.

- 탐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프랑스 내부도 불안정함.

■ [122-124쪽]

- 1790년 프랑스 정부는 미터법에 대한 표준을 공포함.

-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 미터법 전파함.

- 과학자들이 ‘미터는 자연에서 얻은 표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임.

- 그런데 당시 프랑스 과학자들이 실측한 것은 프랑스 지역에 국한된 최대 자오선

- 백금자가 정말 자오선의 1천만 분의 1인가?

- ‘1미터’라는 표준은 자연에서 얻어서 권위 있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10년 동안 동원한 다섯 개 위원회, 과학자 수십 명, 탐사 경비 30만 리브르 때문에 권위를 가진 것

■ 자연이나 추상적인 단위를 표준으로 삼는 어려움 [125-127쪽]

- 예(1): 저항의 단위인 옴

- 예(2): 세슘 원자의 진동을 이용한 세슘 시계

■ 표준은 의무통과지점 [127-131쪽]

- 쿠웨이트에서 미국 전투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쿠웨이트 내에 미국 표준연구실과 비슷한 연구실을 만듦.

• 미국 항공모함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표준을 지켜야 함.

- 19세기 영국과 식민지 인도는 해저 전신을 통해 연결되었음.

• 인도의 엔지니어들은 전신을 수리하기 위해 영국의 표준 저항과 전압을 사용함.

• 표준은 인도의 전신과 영국의 전신을 이어주는 인터페이스이자, 네트워크의 마디(node)

- 의무통과지점

• 의무통과지점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계속 관리하고 조정하고 검토하는 일이 필요함.

• 보편성은 과학의 성공 원인이 아니라 성공 결과임.

2. 실험실 속 제왕나비

■ [132-133쪽]

- 실험실은 자연의 일부를 떼어오거나 무질서한 자연을 질서 잡힌 환경으로 인위적으로 바꾸어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할 수 있게 함.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을 교란시키지 않는 관찰만이 과학의 정당한 방법이며 실험은 자연을 망치므로 과학의 방법이 될 수 없다.”

- 실험은 17세기에서야 과학의 적법한 과정으로 인정 받음.

- 실험이 자연을 얼마나 근접하게 재현하는가의 문제

• 예) 피뢰침을 둘러싼 물리학자 올리버 로지와 현장 엔지니어 윌리엄 프리스의 논쟁

■ 실험과 자연을 섬세하게 구별해야 할 필요성 [136-149쪽]

- 자연과 실험실 간 조건의 차이

• 예(1): 시험관에서 잘 되는 실험이 세포 상태에서 잘 안 되는 경우

• 예(2): 동물 실험에서 성공한 실험이 임상 실험에서 잘 안 되는 경우

- 자연과 실험실 간의 조건의 미묘한 차이가 불확실성의 원천이 되고, 불확실성이 위험에 대한 인식을 증폭시킴.

• 예(1):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영국 컴브리아 지역의 목양업 사례(목양업자 vs. 과학자)

• 예(2): 미국에서의 꿀벌 개체수 감소의 원인 (양봉업자 vs. 과학자)

• 예(3): 제왕나비와 유전자 변형 옥수수와 제초제와 온실효과

- 실험은 항상 실제 자연과 조금씩 다르고, 자연에서의 관찰과 통계적 분석은 인과 관계를 잘 드러내지 못함.

3. 네트워크로 읽는 세상

■ 테크노사이언스의 국지성과 기술 [157-160쪽]

- 테크노사이언스의 네트워크는 국지적(local)임. 어떤 것이 어느 네트워크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그것의 속성이 달라짐.

- 예(1): 남미에 수출된 증기 기관

• 남미로 수출된 증기 기관은 유럽에서처럼 잘 작동하지 못해서 폐기 처분됨.

• 증기 기관이 잘 작동하려면 석탄, 석탄의 수송 체계, 고장난 기관을 고칠 수 있는 엔지니어, 증기 기관을 사용하는 대규모 공장 등을 갖추어야 함.

• 유럽의 증기 기관은 이러한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매듭의 역할을 하면서 발전했지만 남미 사회에는 이러한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아서 증기 기관이 잘 작동하지 않음.

- 예(2):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부시 펌프’

• 1930년대 개발, 1960년대 정부가 개량, 1980년대 엔지니어 피터 모건이 다시 개량. 부품 수가 줄고 더 견고해지고 사용자가 더 쉽게 조작하고 수리할 수 있게 발전함.

• 간단한 고장은 주민들이 고치고, 심각한 고장은 지방 행정구역에서 파견된 숙련된 엔지니어가 고치고, 어디에 설치할지는 중앙정부에서 결정하고, 펌프를 놓는 일에 마을 구성원이 동원됨.

• 부시 펌프는 엄격한 표준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지역 상황과 필요에 맞게 조금씩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고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유지・보수함

• 규격과 표준이 없는 ‘유동적인’ 부시 펌프는 국지적 상황(저개발 국가의 시골 마을이라는 취약한 네트워크)에 민감한 기술

■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네트워크 [161-165쪽]

- 다윈은 남미에서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동식물 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 받음.

• 제한된 공간에서 유한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종들 사이의 관계의 핵심이 ‘생존 경쟁’이며 이것이 진화의 메커니즘인 ‘자연 선택’이라고 결론지음.

- 동인도제도에서 동식물을 관찰한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는 종이나 개체 간의 경쟁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이 종의 분화를 일으킨다고 봄.

- 러시아의 식물생리학자 티미랴제프는 다윈의 진화론과 생존 경쟁을 분리하여 생존 경쟁 대신 ‘조화’라는 단어를 써서 자연 선택을 서술함.

• 시베리아 같은 곳에서는 생명체들이 환경과의 투쟁 속에서 서로 협력한다고 봄.

- 생존 경쟁 개념에 대한 비판은 러시아・독일・프랑스 생물학자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함.

- 다윈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분류학, 동식물학, 지질학 등 연관된 과학을 이해해야 함.

• 관련 학문들이 없는 상태에서 다윈 이론의 중요성과 설득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시아 국가들은 다윈 이론을 받아들일 때 실제로는 스펜서의 ‘사회 다윈주의’를 받아들임.

• 유럽과 미국에서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의 관계는 논쟁적이었고 두 이론이 다르다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했으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서양과 같은 과학 전통이 부재하여 특별한 반대 없이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진화론과 같은 것으로 간주함.

■ 네트워크와 비-본질주의 [165-169쪽]

- 네트워크로 세상을 보는 것은 어떤 사물의 맥락성에 주목하는 것. 같은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존재론적 해석이 달라짐.

- 본질주의: 사물의 본질이 그 속에 스스로 존재한다는 관점

- 네트워크식 사고는 비-본질주의를 지향함

• 예) 여성은 여성이 맺는 관계에 의해 정체성이 바뀌고 새롭게 정의됨 – 자전거 등

- 네트워크로 어떤 대상을 본다는 것은 존재를 맥락적으로 이해하고, 그 속성과 본질을 그 것이 맺는 관계로 파악하고 개별 존재자들의 특수성에 주목한다는 것

4. 패러다임

■ 패러다임 [172-174쪽]

-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틀

• 패러다임은 추상적인 세계관이라기보다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이끌어주는 모범적인 문제 풀이 방식 같은 구체적인 것

• 패러다임에는 모형, 이론, 법칙, 가설 같은 이론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실험의 방식, 기구, 표준 같은 물질적이고 실험적인 요소도 얽혀 있음.

- 정상 과학: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과학

- 패러다임은 어떤 문제가 의미 있는 과학적 문제인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어떤 답이 더 훌륭한 답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함. 정상 과학은 패러다임을 완벽하게 하고 확장한다는 점에서 퍼즐 풀이와 비슷함.

- 과학 혁명: 패러다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칙 현상들이 연이어 등장하여 정상 과학은 위기를 맞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해서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것

- 패러다임을 습득하는 것은 과학자 사회에서 공유되는 일종의 암묵지를 익히는 것

• 예) 표준적인 실험, 교과서에 나오는 연습 문제

- 문제를 잘 풀려면 이론을 응용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론과 문제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상상력이나 통찰이 필요함. 연습 문제를 푸는 것은 패러다임을 체화하는 것이고 전문 - 과학자에게 필요한 연구 능력을 익히는 훈련 과정의 일부가 됨

- 패러다임과 연구 주제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데는 상상력과 도전 정신이 항상 필요하므로 많은 과학자들은 평생 정상 과학 활동을 해도 자신의 일에 흥미를 느낌

■ 패러다임에 기초한 정상 과학의 특징 [174-177쪽]

- (1) 패러다임과 잘 안 맞는 사례들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무시되거나 패러다임 안으로 포섭된다.

- (2) 두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과학 혁명기에는 옛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과학자와 새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과학자 사이에 합리적인 소통이 어렵다.

- 쿤: “정상 과학 시기에는 패러다임이 복수로 존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패러다임의 공존이나 경쟁은 과학 혁명기에나 가능하다.”

■ 테크노사이언스와 패러다임 [185-194쪽]

- 여러 전문 분야들이 한 주제를 연구할 때 각 분야가 받아들이는 패러다임이 달라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놓기도 함.

• 예(1): 갑상선암

• 예(2): 의약분업에 대한 약사와 의사의 패러다임 차이

• 예(3): 치매에 대한 치료 패러다임과 돌봄 패러다임의 차이

- 패러다임의 재해석: 과학자 집단이 공ㅇ한 테크노사이언스 네트워크

- 새로 등장한 기술은 기존 기술에 비하여 조야하고 단순하고 더 비싸거나 불안정적

- 시장을 장악한 기존 기업들은 신기술에 주목하지 않고 기존 기술을 발전시켜서 이윤을 창출하는 전략

- 과학에서의 패러다임 전환과 기술 혁신에서의 변화는 비슷함.

(2017.11.05.)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