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8

세책소설 낙서로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엄마 욕



뉴스나 신문에서는 무슨 일만 터지면 대단히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자료를 찾아보면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 어느 신문에서는 아이들이 온라인상에서 엄마 욕하는 것을 전대미문의 해괴한 일인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는데,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후기에도 사람들은 엄마 욕을 했다.

국문학에서는 낙서도 연구한다. 낙서를 분석하다 보면 당대의 시대상 같은 것을 엿볼 수도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낙서가 많이 남아 있는 것 중 하나는 ‘세책소설’이라고 불리는 소설책이다. 세책소설은 도서 대여점인 세책집에서 빌려주는 소설책이다.

17세기 말부터 조선에서 소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필사본을 빌리는 방식으로 소설이 유통되다가, 소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18세기 초에는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집이 서울 중심부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18세기 중반에는 서울 부녀자들 사이에서 소설책 빌려보는 것이 유행했다. 18세기 세책집에서는 세책소설의 훼손을 막고자 패물이나 솥 등을 담보로 잡고 책을 대여했다.

19세기 말이 되자 기존의 세책집은 사양 산업이 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세책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세책집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하고 깨끗이 필사한 필사본이나 잘 찍은 목판본을 대여했다. 그와 달리, 새로운 세책집은 조악한 필사본과 저질의 목판본과 활자본을 조금 갖춘 영세한 가게였는데, 영세한 대신 기존의 세책집과 달리 서울 변두리와 지방에까지 퍼져나갔다. 세책소설의 낙서는 세책집이 영세화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대출 도서 관리가 잘 안 되면서 낙서가 늘어난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낙서 내용의 대부분이 책 주인 욕이고 가끔씩 책 주인 엄마 욕도 같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가와이 히로타미가 수집한 가와이 문고에 있는 『전운치전』에는 이런 낙서가 있다.

책 주인 보아라. 네 어미와 붙을 놈아, 이것이 글씨냐 무엇이냐. 시라는 식초는 아니 시고 시지 말라는 식초 병마개가 시구나. 어찌 이리 오자 낙자가 많은지 볼 수가 없으니, 보지도 못하고 천금 같은 돈을 주니, 어찌 원통치 아니랴. 그러나 오늘 밤에 네 어미가 나를 오라고 했다. (정병설, 159쪽)

돈 주고 책을 빌렸는데 책 상태가 좋지 않아 책을 못 읽고 돈을 버리게 되었다면서 책 주인과 그의 엄마를 욕하는 것이다. 가와이 문고에 있는 세책소설은 실제로도 책 상태가 안 좋다고 한다. 그런데 책 상태가 좋은 소설에도 낙서는 빈번히 나타난다. 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한 『화충선생전』 끝 장에는 책 주인의 당부 문구가 적혀 있다.

말이 비록 허무맹랑하나, 또 장난꾼이 보시기는 우스운 말이 많사오나, 착실히 보시고 낙장은 마옵소서 (정병설, 161쪽)

그런데 당부 문구 바로 밑에 저질 낙서가 있다.

책 주인 보라. 그간 평안하냐. 나는 잘 있다. 네 어미도 잘 있느냐. 들으니 네 어미가 씹에서 피 난다더니, 잊지 않았느냐. 전일 네 어미가 내게 오라 하거늘 일이 있어 한 번도 가지 못하였더니 금일은 부득이 가고자 하노라. 네 어미에게 요깃거리나 잘 차려 놓아라 일어라. 방이 찰 듯하니 불이나 뜨뜻이 때라 일러라. 임진년 7일 아무개 쓰다.(정병설, 162쪽)

글씨가 나쁘지 않은 책에도 낙서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던 것이다. 세책소설의 저질 낙서는 조선시대 사람들도 욕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욕하고 싶어서 욕했음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도 저질 낙서가 있었다는 것을 무엇을 시사하는가? 조선시대에도 그랬으니, 오늘날 어린 아이들이 온라인상에서 남의 엄마 욕하고 자기 엄마 욕하고 게임에서 상대방의 부모 안부 묻고 상대방 어머니가 현모양처임에 감탄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것인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쁘다면 옛날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나쁜 것이 아니라 옛날 사람들이 나빴던 것과 비슷한 정도로 나쁘다는 것이다.

근대인이 전-근대인보다 타락했고, 근대성이 그 타락의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믿는가?

* 참고 문헌

정병설, 『조선의 음담패설: 기이재상담 읽기』, 예옥, 2010.

(202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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