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1

대학원생의 병명 진단

같은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몸이 아프다고 한다. 나는 그 대학원생에게 “혹시 병명이 <물리학의 철학>인가요?”라고 물었다. 그 대학원생은 “그런가 봐요”라고 답했다. 옆에 있던 다른 대학원생이 “아닌 것 같은데. <과학사통론2>인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2018.10.31.)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다”라는 속담의 생성 연대

한국 속담 중에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다”라는 말이 있다. 태도가 분명하지 않음을 비꼬는 말이다. 이 속담이 언제 생겼는지 정확한 연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한국에 ‘폭탄주’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전에 생긴 말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8.10.30.)


2018/12/29

욕망 타령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컬투쇼>에 나오는 똥 사연 정도인 것 같다. 왜 사연남은 동굴 안에서 바지를 내렸는가? 똥을 싸려는 욕망 때문이다. 욕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는 이 정도가 적절하다. 그런데 세상만사를 욕망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고, 정말 많이 배운 사람들 중에도 그런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왜 똥 사연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가.

우선, 욕망 타령이 얼마나 똥 같은 소리인지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욕망으로 세상만사를 설명하는 것 중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경제 현상일 것이다. 요즈음 주가가 심상치 않은데 언젠가 금융위기가 다시 온다면 이게 다 욕망 때문에 벌어졌다면서 설레발치며 돌아다닐 사람들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금융위기마다 그것이 다 욕망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치고 다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다음 번 금융위기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A라는 마을에 4억 원짜리 집 한 채가 있다고 치자. 돈에 눈이 뒤집힌 놈들이 몰려들어서 그 집을 8억 원까지 만들어놨다가 거품이 꺼지는 바람이 집값이 4억 원으로 떨어졌다고 한다면, 이 경우는 욕망이 문제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B라는 마을에는 모두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만 있다. 4억 짜리 집 주인은 집을 4억 1천만 원에 처분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았다. 4억 1천만 원에 그 집을 산 사람은 4억 2천만 원에 집을 팔면서 1천만 원을 고아원에 기부했다. 4억 2천만 원에 집을 산 사람은 4억 3천만 원에 집을 팔면서 1천만 원을 자식 학비에 썼다. 이렇게 8억 원까지 집값이 올라갔다가 4억 원으로 떨어지면서 동네가 치명타를 입었다고 하자. 두 마을의 주택 가격 하락은 다른 현상인가? 아니다. 둘은 같은 종류의 현상이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욕망 같은 것을 설명항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떤 이점을 지니는가? 전혀 이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욕망과 관련된다. 그래서 욕망 같은 소리를 하면 어떤 현상이든 다 걸려들게 되어 있다. 살려는 욕망, 먹으려는 욕망, 자려는 욕망, 싸려는 욕망, 많이 아는 체 하고 싶은 욕망 등 어떻게든 이 중에 하나에는 걸려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 욕망과 무관한 것을 찾아보자. 불수의적 움직임이 아닌 이상 욕망과 무관한 행위는 거의 없다. 그래서 ‘욕망’이라는 마법의 단어만 쓰면 어떤 사안이든 끼어들어서 한두 마리 해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욕망 가지고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어떤 건물이 무너진 이유를 물었을 때 중력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력 때문에 건물이 무너진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건물 붕괴의 원인을 물을 때는, 어떤 놈이 철근을 빼먹어서 건물이 무너진 건지, 원래 설계했던 대로 하면 안 무너질 건데 설계 변경을 해서 무너진 건지, 지진이 일어났는데 내진 설계가 안 되어서 무너진 건지, 폭격을 맞아서 무너진 건지를 묻는 것이다. 건물 붕괴 원인이 중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아무 내용 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중력 때문에 건물이 무너졌다고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점이 있다. 건축공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도 뭔가 통찰력 있는 한 마디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그딴 소리를 듣는 사람도 역학 문제 단 한 개도 안 풀고도 건축에 대해 뭔가 심오하고 본질적인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욕망으로 금융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도 비슷할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 한 번 펴보지 않고도 경제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이 되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2018.10.29.)


2018/12/28

[중국사] 사마천 『사기』 권96 「장승상 열전」 요약 정리 (미완성)

      

[ 사마천, 『사기열전』,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5). ]
  
  
■ 
- 승상 장창(張蒼)은 양무현(陽武縣) 출신
•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고 음률과 역법에 능했음.
- 진나라 때 어사(御史)가 되어 항상 주하(柱下, 궁전의 기둥 아래)에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문서와 책을 관리하다가 죄를 짓고 고향으로 도망침.
 
- 패공이 양무를 공략하고 지나갈 때 장창은 빈객으로 종군하여 남양(南陽)을 공격함.
- 장창은 죄를 지어 참수형에 받게 되었고, 형을 집행하기 위해 옷을 벗긴 후 참수대에 엎드리게 했는데 장대한 신체에 피부가 마치 박 속처럼 희었음.
• 왕릉(王陵)이 보고 참으로 아름다운 피부를 가진 선비라고 감탄하고 패공(沛公)에게 말하여 참수형을 면하게 함.
- 패공이 진나라를 공략하려 서진할 때 종군하여 무관(武關)을 지나 함양에 입성함.
- 패공은 한왕으로 책봉된 후 한중(漢中)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돌아와 삼진(三秦)을 평정함.
- 그 무렵 진여(陳餘)가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를 공격하자 장이는 패주하여 한나라에 귀의함.
• 한나라는 장창을 상산군 태수로 삼고 조나라를 치는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을 따라가 진여를 사로잡음.
• 조나라가 평정되자 한왕은 장창을 대(代)의 재상으로 삼아 변방의 흉노를 막게 함.
• 얼마 후에 조나라 재상으로 임명되고 조왕으로 다시 책봉된 장이를 도움.
• 장이가 죽은 뒤 조왕의 자리를 그의 아들 장오(張敖)가 물려받자 장창은 그 아들을 돕다가 다시 벼슬을 옮겨 대나라 왕을 도움.
- 연왕 장도(臧荼)가 반란을 일으켜 고조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진압할 때 장창은 대나라 재상의 신분으로 종군하여 장도를 치는데 공을 세움.
• 장창은 그 공으로 한 고조 6년에 북평후(北平侯)에 봉해지고 식읍 1200호를 받음.

- 계상(計上)으로 자리를 옮긴 지 한 달 만에 장창은 다시 열후(列侯)가 되어 4년 동안 주계(主計)의 일을 맡음.
• 승상 소하는 장창이 진나라 때 주하사(柱下史)의 직에 있으면서 전국의 도서, 재정, 민적에 통달했고 산학(算學)과 율력(律曆)에 능통했으므로 그로 하여금 열후로서 승상부에 근무하면서 군국의 재정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들을 관장하도록 함.
- 경포(黥布)가 모반하여 죽자 한 조정은 막내아들 유장(劉長)을 회남왕(淮南王)으로 봉하고 장창을 그의 상국으로 임명함.
• 14년 후에 직을 옮겨 어사대부가 됨.
- 주석
• 계상(計相): 전한 때 승상의 별칭이다. 승상은 군국(郡國)이 올리는 회계와 지방정부 관리들의 고과를 관장하는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생긴 명칭.
• 주하사(柱下史): 주(周)와 진(秦) 왕조 때의 어사(御史)의 별칭. 직무가 언제나 궁전의 기둥 밑에서 시립하여 직무를 봤기 때문에 붙은 직명.
 
■ 
- 주창(周昌)은 패현(沛縣) 사람
- 주창은 그의 사촌형 주가(周苛)와 함께 진나라 때 사수군(泗水郡)의 사졸이 됨.
- 고조가 패현에서 일어나 사수군의 태수와 군감(軍監)을 공격할 때 주창과 주가는 사졸의 신분으로 패공을 따름.
• 패공(沛公)은 주창을 직지(職志)로 삼고, 주가를 객으로 삼음.
• 둘은 패공을 따라 관중(關中)으로 들어가 진나라를 이김.
• 패공이 한왕으로 책봉되자 주가는 어사대부(御史大夫), 주창은 중위(中尉)가 됨.
- 주석
• 직지(職志): 깃발을 관리하는 군졸
 
- 한 고조 4년(기원전 203년) 초패왕이 한왕을 형양(滎陽)에서 포위하여 사세가 위급하게 됨.
- 한왕은 몰래 탈출하면서 주가에게 형양성을 지키게 함.
• 초패왕이 형양성을 함락시키고 주가를 부하 장수로 삼기 위해 회유함.
• 주가는 오히려 한왕에게 항복하라고 초왕을 꾸짖음. 주가는 초왕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한왕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말함.
• 항우가 대노하여 주가를 가마솥에 삶아죽임.
- 한왕은 주가 대신 주창을 어사대부로 삼음.
• 주창은 언제나 고조의 뒤를 따라다니며 항우를 쳐부숨.
- 한 고조 6년(기원전 201년) 주창은 소하, 조참 등이 책봉될 때 분음후(汾陰侯)에 봉해졌고 주가(周苛)의 아들 주성(周成)은 주가의 공으로 고경후(高景侯)가 됨.
 
- 주창은 강직하고 바른말을 했기 때문에 소하와 조참 등 모든 신하가 그를 두려워함.
- 주창이 고조가 연회를 열었을 때 일을 상주하려고 연회석상에 들어감.
• 그때 고조는 곁에 척희(戚姬)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주창은 뒤돌아 달아남.
• 고조가 뒤따라가 주창의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 물음. “나는 누구와 같은 임금이냐?” 
• 주창이 고개를 곧추세우고 말함. “폐하께서는 걸주(桀紂)와 같은 폭군이십니다.”
• 고조가 웃으며 지나갔지만 그 후로 고조는 주창을 더욱 꺼리게 됨.
 
- 고조가 태자를 폐하고 척희의 소생 여의(如意)를 세우려고 하자 대신들이 완강히 반대했으나 고조의 뜻을 꺾을 수 없었음.
• 고조는 유후(장량)의 계책으로 태자를 바꾸려는 생각을 잠시 접음.
• 주창이 조정에서 가장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고조가 불러서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함.
• 주창은 원래 화가 나면 말을 더듬는 병이 있는 데다 주상의 명을 받자 더욱 화가 나서 말을 더듬으며 대답함. “소신은 원래 말주변이 좋지 않습니다만, 저는 폐하께서는 그와 같은 일은 기...기...기필코 행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비록 태자를 폐하신다고 해도 소신은 기...기...기필코 폐하의 령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 고조가 주창의 하는 말을 듣고 매우 기분이 좋아서 웃음.
• 고조와의 접견이 끝나자 동상(동쪽 쪽방)에서 대화를 엿들은 여태후가 달려 나와 주창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의 말을 함. “그대가 있는 힘을 다하여 간하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태자가 폐출될 뻔했습니다.”


(2021.11.13.)
    

2018/12/26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정책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에 참여한 과학기술학 선생님과 저녁식사를 할 자리가 있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고 위원들의 의견이 내인설과 외인설로 나뉘자 위원회에서는 과학철학자를 모셔오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양측 모두 그 의견에 찬성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실행되지 않았고 결국 두 가지 결론을 모두 담은 종합보고서가 나오게 되었다. 한국에 리처드 파인만 같은 학자가 있었으면 합의된 결론을 도출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양측에서 나왔다고 한다.

파인만은 챌린저호 폭발사고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 청문회에서 챌린저호의 폭발 원인이 고체추진로켓의 설계 결함임을 설명할 때, 파인만은 고무링이 낮은 온도에서 탄성을 잃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얼음물에 고무링을 넣었고, 그 장면은 미국에 생중계되었다. 파인만의 직관적인 설명은 권위 있는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나는 옆에 있던 과학사 전공자한테 “파인만 같은 사람이 위원회에 참여했으면 과학철학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을 텐데...”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파인만이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과학자에게도 과학철학이 도움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실 파인만이 언제 어디서 그런 말을 했는지 출처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평소 파인만의 태도로 보았을 때 그러한 말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과학사 전공자는 과학철학자인 장하석 선생님의 말을 인용했다. “과학자에게 과학철학이 도움이 안 된다면 과학사는 더 도움이 안 된다. 과학철학이 현재 살아있는 새들을 연구하는 조류학자라면 과학사는 고생물학자이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선생님을 모셔오려고 했다는 과학기술학 선생님 앞에서, 과학철학 하는 사람 불러봐야 소용없다는 과학철학 전공자와 과학사는 더 쓸모없다는 과학사 전공자가 누가 누가 더 쓸모없는지 경쟁을 벌였다. 그 때 동양과학사 선생님이 이렇게 물어보셨다. “과학정책은 어떤가요?” 과학정책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과학정책은 새총으로 새를 쏩니다.”

여기서 새총으로 새를 쏜다는 것은 중의적인 의미다. 하나는 날아가는 새를 새총으로 쏘아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새를 새총에 담아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 중에는 과학정책에 우호적인 사람이 많으며, 적어도 과학정책 하는 사람을 적으로는 만들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깔려있다고 한다.

(2018.10.26.)


2018/12/25

유럽 교육 이야기는 믿을만한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자고 말했을 때 많은 한국 사람들은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잘 모른다면서 비웃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 상당수는 유럽 교육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끄덕이며 유럽 교육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바마가 한국 교육을 언급했을 때는 나름대로 분석한 것을 토대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냥 한 나라의 대통령도 아니고 미국의 대통령인데 <오늘의 유머> 같은 것을 보고 밑도 끝도 없이 한국 교육을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한국 고등학생의 마음을 오바마가 알았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믿을 만한 분석을 토대로 하여 한국 교육을 언급했을 것이다. 분명히 전문가들이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보고서로 제출했을 것이며 오바마는 분석 자료에 기반한 토의를 거친 다음에야 한국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럽 교육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무슨 자료에 근거하여 유럽 교육을 본받자고 주장하는 것인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프랑스 교수가 어느 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 과학기술학 전공자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그 프랑스 교수는 프랑스 교육을 있는 대로 욕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왜 프랑스 교육을 본받자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 교육을 칭송하는 사람들 중에 프랑스에서 자기 자식을 그랑제콜에 보내려다 실패한 사람 말고, 파리에서 택시 운전 하던 사람 말고, 방문교수나 교환교수 같은 걸로 가서 물 몇 모금 먹고 온 사람 말고, 유럽 교육에 대해 믿을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2018.10.25.)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