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8

2019/04/26

이단과 사이비의 차이

   
‘이단’(異端)과 ‘사이비’(似而非)를 구분 없이 쓰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신흥 종교는 대부분은 이단이거나 사이비라서 “이단 사이비”라고 묶어서 불러도 대충은 맞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 둘은 다른 개념이다. 이단은 처음에는 정통 교리와 같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통 교리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가리킨다. 사이비는 정통 교리의 이름을 빌렸지만 아예 정통 교리와 관계없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유학자가 자신의 사상적 근원이 공자라고 믿지만 정통에서 많이 벗어났다면 그 사람은 이단이고, 유학자도 아닌 사람이 유학자인 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사이비다.
  
이단이라고 해서 꼭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해 일부러 이단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순수하게 교리 해석이나 철학의 차이로 이단이 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사이비는 대체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정통 교리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정통으로 위장한다는 것은 숨기고 싶은 검은 속내가 있다는 것이다.
  
- 이단의 사례: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합시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밀고 겉옷을 빼앗기면 속옷까지 내어줍시다. 이게 모두 인성 없이 신성만 존재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 사이비의 사례: “이 성도가 내 성도가 됐는지 알아보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옛날에 쓰던 방법 중 하나는 젊은 여집사에게 빤스 내려라, 한번 자고 싶다, 이렇게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야. [...] 만약에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안 찍는 사람은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 생명책에서 안 지움을 당하려면 무조건 이명박 찍어. 알았지?”
  
  
(2019.02.26.)
    

2019/04/24

나는 과학적 실재론자인가 반-실재론자인가

   
어떤 대학원생이 석사 논문 작성을 앞두고 학회 대학원생 분과에 발표 신청을 했다. 발표자는 과학적 실재론을 비판하는 반-실재론자 레이의 주장을 실재론자들이 반박할 수 있다는 글을 썼다. 논평자인 나는 발표자의 주장을 반-실재론자들이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지 썼다. 사실, 실재론이 맞는지 반-실재론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논평은 발표문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비슷한 것이라서 그렇게 쓴 것이다.
  
발표 전날, 발표자와 같이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전철역으로 나가면서 내가 석사 논문 쓰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반-실재론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석사 논문을 썼다. 반-실재론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면 논문을 더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쓰면서 계속 생각하니까 실재론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실재론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논문을 쓰려면 졸업하는 데 최소한 한 학기는 더 걸릴 것이었고, 이미 나는 석사 과정을 꽤 오래 다녀서 그 학기에 졸업하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반-실재론을 옹호하는 논문을 써서 졸업했다.
  
사람이 사는데 실재론자냐 반-실재론자는 거의 안 중요하다. 그러나 학사냐 석사냐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대가들 중에 실재론자도 있고 반-실재론자도 있지만 석사 학위도 없는 사람은 크립키 빼고 없다. 과학적 실재론에 관하여, 나는 실재론자도 아니고 반-실재론자도 아니고 흑묘백묘론자인 것 같다.
  
  
(2019.02.24.)
   

2019/04/23

[과학사] Eisenstein (2005), Ch 5 “The Permanent Renaissance: Mutation of a Classical Revival” 요약 정리 (미완성)

   
[ Elizabeth L. Eisenstein (2005/1983), The Printing Revolution in Early Modern Europ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pp. 123-163. ]
  
  
  1. 르네상스와 인쇄술
  
[p. 124, 114-115쪽]
교과 과정이나 논문 등에 나타나는 학술적 분류로는 중세 장인 기술이 막을 내리고 근대 초기 유럽의 전문 기술이 대두된 시기는 15세기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많은 르네상스 연구자들은 인쇄술이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출발점이라고 간주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다고 한다. 근대로의 이행은 15세기 초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고전 부활과 함께 시작되고 있었고 이는 구텐베르크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의 일이다. 주요한 문화적 변용은 이미 필사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pp. 124-125, 114-115쪽]
정설은 재생(rinascita)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것은 마인츠에서 인쇄술이 개발되기 전이라는 것이다. 호이징가가 1920년에 제기한 의문인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문화적 변용은 실제로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것으로 성립하게 되었으며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115-116쪽]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호이징가는 중세와 르네상스, 르네상스와 근대의 문화를 비교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고, 퍼거슨은 중세와 근대의 본질적인 차이와 이행기에만 보이는 특징을 계통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아이젠슈타인은 “이행기에만 나타난 특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이행기에 등장한 새로운 것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인쇄술이다.


  2. 인큐내뷸러: 인쇄술의 요람기

  
[116쪽]
‘근대’(modern)나 ‘중세’(medieval)라는 표기에 적절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에 비해 필사본과 인쇄본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필사에서 인쇄로 전환된 것은 일련의 변화들을 일으켰고 이러한 변화는 비교적 단기간에 유럽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117쪽]
1500년대에는 이미 필사의 시대가 끝나고 인쇄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새로운 제본술은 무식한 대중에게 의미가 없었고 피상적인 지식만을 갖춘 엘리트층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15세기의 문해력 보유자 비율에 대한 잘못된 데이터에 근거한 것이었다. 인쇄술의 등장이 인류의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지지만 시대를 구분할 때 인쇄술의 등장을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패러독스를 이해하기 위해 인쇄술의 등장에 대한 양태를 상세히 규명해야 한다.
  
[118쪽]
인쇄술의 등장이 일으킨 변화는 필사 문화의 산물을 없애버려서 생긴 변화가 아니라 대량으로 재생해서 생긴 변화이다. 인쇄인은 처음 얼마 동안 새로운 작품을 판매한다기보다는 개별 독자들에게 더 많은 작품과 접할 기회를 제공하여 학문의 진흥에 기여했다. 산출(output)의 변화는 개인의 투입(input)의 성격을 바꾸었다. 읽을거리가 풍부해졌으며 지적 자극도 촉진되었다는 점에서 16세기 독자의 독서 메뉴는 14세기 독자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118-119쪽]
아이젠슈타인은 과학 기술상의 변화와 문화적 변용의 관계를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별개의 시간대에 일어난 것으로 인정한 다음, 양자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검토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이탈리아에서 문화 부흥이 진행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필사에서 인쇄로 전환한 것은 문화 부흥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119쪽]
미술사학자 어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은 “중세의 두 가지 부응은 한정된 것과 일시적인 것이지만 르네상스는 전적으로 영속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인쇄술이 등장한 이후의 부흥은 인쇄술이 등장하기 이전의 부흥과 유사한 것이었으나 차츰 다른 길로 갔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전의 부흥보다 영속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속성은 활판 인쇄술의 정착에 적용되지 못한다. 중세의 고전 부활이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것보다 왜 일시적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3.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필사체

  
[120쪽]
파노프스키는 고대 양식에 대한 중세의 관점과 근대의 관점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중세의 학자들은 과거의 고전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지 않았고 오늘날 우리처럼 역사학에 대한 수련도 쌓지 않았으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고전의 모형대로 부활하는 것과 고대 작품들의 재생, 수집, 조사에 열정을 기울이고 암흑 시대가 자신들을 고대로부터 분리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아이젠슈타인은 이러한 사고 방식에 대하여 논의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121-122쪽]
인쇄술이 등장한지 한 세기 이상 지나서야 자료 개정과 정리를 위한 통일된 체계를 정비할 수 있었고 그 이전에는 지식인이 공유하는 시간・공간적 표준 틀이 없었다. 중세 라틴어와 키케로 시대의 라틴어 등에 대한 시대 구분이 있었으나 현대의 구분과 달리 막연한 구분이었다. 16세기 호사가들이 기원 전 5세기 고대 아테네의 석주와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하니, 그리스-로마 시대의 어느 부분은 15세기가 지난 뒤에도 상당히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당시 예술 작품이 고대 작품과 혼동되거나 기독교의 주제에 이교의 형식이 채용되거나, 중세 필사생의 서체가 고대 작품으로 잘못 인식되는 일도 있었다.


  4. 필사본의 확산
  
[123-124쪽]
고대 저술가의 책을 베끼고 주석을 다는 일은 고대와 당시 라틴어 문법의 차이 등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되었고, 르네상스의 필사를 접한 학자들 중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 같은 사람들은 문헌학적 접근을 통해 문서의 연대를 추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은 기억술 훈련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 당시 상황에서는 크게 성장할 수 없었다. 아이젠슈타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전에 대한 ‘전체를 조망하는 이성적인 전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인쇄술이 등장한 후 100년이 지난 뒤였다는 것이다.
  
[124-125쪽]
고전 양식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게 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가 아니라 인쇄술과 목판 교정쇄가 등장한 이후의 일이다. 파노프스키는 우리가 사용하는 필기체와 활자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글자체의 흐름을 담고 있으며, 이 글자체는 카롤링거 왕조나 12세기 활자체의 모형을 취한 것이며 12세기 글자체와 카롤링거 왕조의 글자체는 고전 시대의 것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딕 초서체는 중세 문예부흥의 일시성을 상징하며 현대의 활자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속성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활판 인쇄술은 15세기 필사생 서체에 영향을 미쳤는데, 르네상스의 활자체가 소멸되지 않고 발자취를 남긴 것은 특별히 어느 하나의 자체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활자로 인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등장하기까지 고전의 부활은 그 규모가 작았고 영향도 일시적인 것이었다. 필사본의 주요 중심지가 확산된 것은 학문의 부활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어 필사본의 주요한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이 이방인에게 넘어간 뒤에도 그리스 연구가 왕성하게 행해졌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5. 근대 저널리즘의 아버지 아레티노
  
서구에서 헬레니즘 문화 연구가 계속 된 것은 활판 인쇄술이 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음을 나타내는 것 중 하나이다. 고대 언어의 부활은 고대 텍스트의 부활과 똑같은 길을 갔다. 어떠한 발견이 인쇄 기록으로 영구 보존될 수 있으면 그로 인해 끊이지 않은 발견의 연속과 연구 방법의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와이스(Roberto Weiss)는 고고학은 르네상스에서 고대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했기 때문에 탄생했다고 말한다. 상실된 텍스트나 사어가 된 언어에 대한 발견이 늘어나고 있었던 점은 15세기 이탈리아에 형성된 특별한 에토스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 기술이 광범위하게 파급되었기 때문이다.


  6. 표제지에 인쇄된 저자의 얼굴
  
인쇄술은 개인의 업적에 대한 평가 상승에 깊은 관계가 있었다. 출판인들이 저자를 선전하거나 저자가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일도 생겼다. 필사 문화에서는 발명 특허나 문학 작품의 판권을 보호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지적재산권이라는 사고도 통용되지 않았다. 개성의 흔적을 보존한다든가 개인의 의견을 공표한다든가 하는 자아 의식은 필사 문화에서 그다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셈이다. 인쇄술이 등자하기 이전에도 개인 예술가나 저명한 시민이 특출한 칭찬을 받았으나 필사 문화에서는 개성의 예찬은 종종 그 토대가 흔들렸다. 개성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인쇄술의 등장 이후이다.
  
15세기 이전에는 화가들의 자화상에서도 개성이 빠져 있었고 이는 저자들의 초상화에도 적용된다. 반복해서 필사를 하면서 어느 저자의 얼굴이 다른 저자의 텍스트에 삽입되거나 단순히 저자를 나타내는 몰개성적인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몰개성적인 상징은 인쇄술이 필사를 대신하게 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표준화되어 목판이나 동판 교정쇄로 대량으로 인쇄되었다. 그러나 표준화가 진행되면서 개성에 대한 평가도 높아졌고 점차 분명한 얼굴에 분명한 이름이 고착된다. 그래서 16세기 에라스무스, 루터 등의 초상화가 수많은 역사책에서 복제되면서도 식별 가능하게 되었다.


  7. 신성한 기술
  
모든 필사본은 개인의 업적이지만 개성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서로 다른 개성이 동료나 집단에서 분리되어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규격화된 판권장이 개인의 서명을 대신한 이후의 일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다양한 집단들에서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을 연결시키려고 시도했는데 이러한 연계가 완성된 것은 인쇄술의 등장 이후이다. 이는 예술뿐만 아니라 해부학까지 직업의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인쇄술은 학자와 장인, 이론과 실천 사이의 새로운 연계를 설명할 수 있다. 인쇄술은 장인들이 서적을 가까이 하게 만들었고 학자들이 실천적인 안내서와 친해지게 했고 예술가나 기술 전문가들이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촉진시켰다. 새로운 서적 생산 방식은 장인과 철학자가 상대방에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학자와 기계공들이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동료로 만들기도 했다. 인쇄술의 아버지들은 서적 편집, 지적 집단 형성, 화가나 저작자들의 선언, 새로운 형태의 자료 수집이나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의 연구를 추진했고 기계 조작이나 서적 판매에도 정통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16세기 이름을 떨친 인쇄회사는 지적이며 실천적인 다채로운 활약상을 펼쳤다.


  8. 필사문화의 불연속성
  
아이젠슈타인은 필사 문화에 내재한 불연속성에 주목했다. 전달 경로가 제각각이었던 것은 정보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될 때 희미해지거나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다. 필사 문화의 시대에서는 여러 가지 지식이 비밀리에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수집된 기록도 흩어지거나 손상되기도 했는데 수세기에 걸친 시행착오에서 배운 기술을 전수하는 데는 오염을 피하여 은밀히 보호되어야만 전승될 수 있었고 기술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기술뿐 아니라 신비까지도 전달되었다. 특별한 상징, 의식 등은 자료의 정리, 기술 보존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9. 신성한 비밀의 활자 조각 
  
필사의 시대에 마술과 기계 기술을 결합하는 것은 특정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직업상의 기술이 선발된 사람들의 폐쇄적인 집단 안에서만 전수되는 한, 기록으로 남지 않은 비법은 그것을 전수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비밀로 남겨졌다. 인쇄물은 과학 기술에 대한 인쇄물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러 마술적인 기술이나 비법들을 전수하게 되었는데 과학 기술과 마술을 구분할 수 있는 독자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적어도 한 세기 반 동안 혼란이 계속되었다. 넌센스 박물지(natural history of nonsense)라고 일컫는 책이 많이 쏟아졌고. 현자의 돌이나 만병통치법을 아는 자나 기적을 행하는 자들은 출판업에 등장했다.
  
장인들 사이에는 직업별 길드가 쇠퇴한 뒤에도 중세의 비밀주의적 태도가 계속 전승되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후 200년 후에도 활자 새기는 일은 손끝으로 하는 것이어서 세공들이 공개하지 않고 비밀리에 전수했다.
  
인쇄술 등장 이후 검열에 대한 우려가 전문가나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인쇄술 등장 이후 이전보다 이솝 언어(노골적이지 않은 풍자나 수수께끼 같은 말)이 더 널리 쓰였다.


  10. 인쇄술에 힘입은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들이 ‘새로운 시대에 속했다는 생각’을 부채질한 것은 맞다. 아이젠슈타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생각이 생겨난 이후 근본적인 방향이 바뀌었으며 이 때문에 현대의 연구자들이 그 미래의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엄청난 상상력의 비약을 필요로 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라는 용어는 인쇄술에 의해 일어난 여러 가지 변화는 나타내지 못한다. 인쇄술의 보존력은 복원의 과정을 연장시키며 중요한 영감의 요소를 복고적인 데서 빼앗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마이너스이다. 그러나 초기 인문주의자들이 문화 추진자로서 평가받는 것은 인쇄술이 일으킨 정보 산업 덕분이다. 인쇄술이 연속성과 점증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인쇄술은 초기 인문주의자들을 과거의 학자들과 달리 학문의 창시자로 불리게 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르네상스 문화의 융성은 초기 인쇄인들, 특히 베네치아 인쇄인들에게 힘입은 바가 컸다는 점이다.
  
  
(2018.05.29.)
   

2019/04/21

[인지과학의 철학] Sprevak (2009), “Extended Cognition and Functionalism” 요약 정리 (미완성)

[ Mark Sprevak (2009), “Extended Cognition and Functionalism”, Journal of Philosophy, 106(9): 503-527. ]

I. HEC

II. Criticism of HEC

III. Reply to RAA

IV. Functionalism Entails HEC

V. Radical HEC

VI. The Problem with Functionalism

VII. Metaphysical versus Explanatory Arguments for HEC

VIII. Conclusion

503

- 클라크와 차머스의 확장된 인지 가설(HEC)

- 이 논문에서 스프레박은 두 가지 논변을 제시하고자 함

- 논변(1): HEC는 루퍼트, 아담스, 아이자와가 생각하는 것보다 공략하기 힘들다.

마음의 본성에 관한 견해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능주의

루퍼트, 아담스, 아이자와도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임.

기능주의는 HEC를 함축한다.

HEC가 참이거나 기능주의가 거짓이다.

기능주의는 현실 세계에서 인지 과정이 정말로 확장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 논변(2): 기능주의가 함축하는 HEC의 버전은 클라크와 차머스가 제안한 버전보다 더 급진적이다.

그러한 결과를 막는 방향으로 기능주의가 수정되면 HEC는 루퍼트, 아담스, 아이자와의 원래 비판에 의해 무너진다.

- HEC 옹호자의 선택지는 두 가지

(1) 기능주의와 급진적 HEC를 받아들이기

(2) HEC를 완전히 포기하기

503

이 논문의 논변은 클라크와 차머스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그들의 입장을 반대하는 입장을 주장함.

논문 구성 [p. 504]

1절-3절은 클라크와 차머스의 논변, 루퍼트, 아담스, 아이자와의 비판, 스프레박의 대응

4절: 기능주의자 HEC를 함축한다는 것

5절: 클라크와 차머스가 제안한 HEC의 온건한 버전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

6절: 급진적 HEC를 발생시키는 기능주의의 특징을 분석

7절: HEC의 다른 주요 논변을 비판함.

I. HEC

504-505

클라크와 차머스는 두 가지 사고 실험을 제시함

사고실험(1): 테트리스

사고실험(2): 성향적 믿음

505

두 사례는 “동등성” 원리(“parity” principle)에 의존함

(스프레박은 “fair-treatment” principle이라고 부를 것임)

505-506

루퍼트, 애덤스, 아이자와(이하 RAA)는 이 원리를 받아들이지만 테트리스 사례와 오토/잉가 사례에 대한 클라크와 차머스의 조치는 거부함

RAA의 논변

이들 사례에 대한 fine-grained functional structure를 고려하면, 실제 확장된 과정들은 내적 인지 과정과 기능적으로 같지 않다.

II. Criticism of HEC

506

루퍼트는 오토의 공책이 부정적 전이(negative transfer)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내적 인지와 다르다고 함.

예) A-B, A-C

506

부정적 전이, 생성 효과

이러한 특징들은 인간 기억의 특징이지만 공책에 정보를 적을 때의 특징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오토-공책 체계의 모든 이러한 특징들을 자극하도록 수정했다면, 그 사람은 원래의 오토-공책 시나리오와 멀리 떨어져서 실제 인간 도구 사용에 대응하지 않을 것

그러므로, 루퍼트는 확장된 기억 과정들이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내림.

507

아담스와 아이자와

(T1)와 (T2)의 기능적・인과적 구조가 다르다는 논변

III. Reply to RAA

507

클라크는 RAA에게 강력한 대응을 함 (스프레박이 정교하게 만들고자 하는 대응이라고 함.)

RAA는 a fine-grained level에서 확장된 과정은 내적 인지 과정과 기능적으로 같지 않으며 그래서 인지적인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이에 대한 대응은, 인지적인 것과 비-인지적인 것을 이렇게 촘촘하게 경계 지으면, 화성인은 인지 과정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 된다는 것

(forthcoming이라고 했으나, 정확히 어느 논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음.)

507

화성인 직관은 인간과 물리적・생물학적 구성이 다른 생명체라고 해도 심적 상태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

지적 생명체가 뉴런 대신 초록색 점액을 포함할 수 있고 탄소 대신 실리콘으로 구성될 수 있고 신경계에서 연결이 다른 종류일 수 있고, 

507-508

화성인 직관은 생리학에 적용되는 만큼 fine-grained psychology에도 적용된다.

지적인 화성인이 우리와 같은 fine-grained psychology를 가질 이유가 없다.

508

RAA는 부정적 전이 같은 인지의 fine-grained features에 초점을 맞춤.

그러나 지적인 화성인이 부정적 전이를 보여줄 필요는 없음.

예) 부정적 전이, 반응 시간, 학습 곡선, 오류, 시각 체계와 운동 체계

RAA는 (T2)에서 사용된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춤

그러나..

508-509

신경 활동의 패턴들이 저장된 것이 아니라 잉크 자국의 연쇄들이 저장되는 기억을 가진 화성인을 상상할 수 있다.

기억할 때

회상할 때

이 경우, 화성인이 이러한 방식으로 기억한다고 해서 진정한 심적 기억상태와 과정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이 경우 내적 상태의 원인과 결과가 오토-공책 체계의 공책과 같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509

HEC에 대한 RAA의 반박은 인간 인지의 fine-grained features이 심성(mentality)에 필수적이라는 것

그러나 스프레박이 보기에 이는 틀린 것

화성인은 모든 종류의 fine-grained psychological ways가 우리와 다르지만 여전히 심적 상태를 가진다.

그러므로, 그러한 특질들은 mentality에 필수적이지 않다.

IV. Functionalism Entails HEC

509

기능주의는 세밀하게 조성이 다른(different fine-grained makeup)을 가진 생명체에게 mentality를 주지 않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설계됨

기능주의의 대부분의 버전은 화성인 직관을 지지함

기능주의가 화성인 직관을 지지하는 방식

유기체가 심적 상태를 가지게 만드는 것은 그 유기체의 기능적 조직(functional organization)이라는 것

이는 인과적 역할(causal role)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되며, 이는 거꾸로 유형적 원인과 결과의 패턴(pattern of typical causes and effects)으로 이해됨.

...

(인용구, 스탠포드백과)

...

기능주의에 따르면

실리콘 기반 화성인과 탄소 기반 지구인이나

510

기능주의의 모든 다양성은 기능적 역할들이 얼마나 finely or coarsely하게 특정되어야 하는지 통제하는 파라미터를 포함한다.(이는 얼마나 추상하거나 무시하는지와 관련됨)

스프레박의 주장은, 알갱이 파라미터(grain parameter)가 지적인 화성인을 허용하기에 충분히 거칠게(coarse) 설정된다면, 확장된 인지의 많은 경우도 허용된다는 것.

511

그 주장에 대한 정당화는 확장된 인지의 사례들이 가능한 화성인 사고 과정처럼 내적 인간 인지의 사례와 적어도 비슷하다는 점

예) 오토 공책 시스템

화성인의 사고 과정은 적어도 오토 공책 시스템 같은 인간의 내적 인지와 다를 것

그러나 그런 과정이 다르다고 해서 진짜 믿음(genuine beliefs)이 결여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이유는 없음.

이러한 경우라면, 믿음과 관련된 기능적 역할은 화성인이 믿음을 가지도록 허용할 정도로 충분히 거칠게 설정되어야 함.

예) 부정적 전이(negative transfer)를 보이지 않고 다른 학습 곡선과 반응 시간을 보이는 등

기능적 역할이 거칠게 설정된다면, 그러한 역할은 오토-공책 시스템에 만족할 것

그러므로, 오토의 공책은 확장된 믿음으로 간주됨.

511

또 다른 예

어떤 사람의 손가락으로 셈하기

계산할 때 머리 속의 혈관이 팽창하는 화성인

예) 2+3하면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이것을 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고 하자.

기능적 역할을 설정할 때 계산을 특징짓는 화성인의 이러한 것이 허용될 정도로 거칠게 설정해야 함.

그러나 기준을 거칠게 설정하면 인간 손가락 체계도 이를 만족한다.

511-512

논변은 더 강한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음

....

기능주의 이론은 grain parameter를 거칠게 만들 수 있다는 것

512

간단히 말하자면, 기능주의 이론이 두 과정이 기능적으로 동등하다고 여길 정도로 세밀한 기준을 통제할 수 있다면, 지적인 화성인은 허용되지 않고 HEC는 RAA가 제시한 이유로 거짓일 것이다.

기능주의 이론이 설정한 기준이 너무 거칠다면, 지적 화성인은 허용될 것이고 HEC는 참인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RAA가 마주할 문제는 다음과 같은 중간의 파라미터가 없다는 것이다.

(i) 화성인 직관을 보존하는 것을 허용하고

(ii) HEC가 거짓이라고 드러나게 하는 것

512

여기에 스프레박이 지적하는 일곱 가지가 나옴

첫째, 스프레박은 기능주의에 대한 grain parameter 설정이 유일하거나 올바른 설정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512

둘째, 

...

일곱째

V. Radical HEC

514

기능주의가 HEC를 함축하지만, 클라크와 차머스의 HEC 버전을 함축하는지는 불분명함.

클라크와 차머스가 기능주의에 추가한 조건

(H1) [외적] 자원은 신빙성 있게 이용가능해야 하고 전형적으로 지칭되어야 한다.

(H2) 다시 떠오른 정보는 어느 정도 자동적으로 승인되어야 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비판적 검토를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생물학적 기억으로부터 분명히 다시 떠오른 것만큼이나 믿을만한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H3) 외적 자원에 포함된 정보는 그것이 필요할 때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Clark and Chalmers 1998, 17; Sprevak 2009, 514에서 재인용)

클라크와 차머스는 (H1-3)이 HEC를 더 온건하고 그럴듯하게 만든다고 함.

문제는 온건한 HEC의 형태가 HEC에 대한 기능주의적 옹호와 양립불가능하다는 것

514

(H1) 

내적인 인지 자원을 신빙성 있게 이용가능하지 않고 전형적으로 지칭되지도 않는 화성인을 상상할 수 있다.

밤에 잠을 잘 잔 후에만 인지 자원을 가질 수 있음.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화성인은 잠을 잤을 때 이러한 자원은 진정한 인지로 간주될 수 있음.

다른 예

515

(H2)

이것은 두 가지를 요구함

(i) 다소간에 자동적으로 승인되어야 함

(ii)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됨.

(iii) 생물학적 기억으로부터 분명히 다시 떠오른 것만큼이나 믿을만한 것으로 여겨져야 함.

이 모든 조건들이 내적 인지의 실제 사례와 가능한 사례들에 의해 위반됨.

515

(H2/i) 위반 사례

화성인

사람

어떤 사람의 내적 과정들은 자동적으로 승인되지 않음.

예) 상상하기, 가정하기, 욕구하기

(H2/ii) 위반 사례

이것도 (H2/i)와 비슷한 이유로 실패

조심성 많은 화성인은 일상적으로 자신의 인지 자원들을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지만, 그러한 인지적 자원들은 비-인지적인 것이나 비-심적인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H2/iii) 위반 사례

인간의 내적 기억보다 덜 믿을만하지만 기억이라고 할 정도로 충분히 믿을만한 기억을 가진 화성인 내적 자원은 생물학적 기억보다 덜 믿을 수 있는데, 왜 외적 자원은 그러면 안 되는가?

515-516

(H3)

내적인 자원 접근이 어려운 화성인.

인간도 내적 인지 자원에 쉽게 접근하지 못할 수 있음.

시험 전 벼락치기 공부한 다음에 시험 때 너무 긴장해서 기억 안 나는 경우

516

왜 (H1-3)이 거부되어야 하는가? 

(H1-3)은 내적 인지 자원(internal cognitive resources)의 현실적이고 가능한 사례들에 위배됨.

- 이것이 HEC에 일으키는 문제

내적 원천들이 (H1-3)을 위반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왜 외적 원천들은 그것을 위반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가?

그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

(H1-3)의 문제는 동등성 원리를 위반한다는 것

동등성 원리는 외적인 사례가 비-인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면 그것이 단순히 외적인 것이어서 비-인지적인 것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요구함.

동등성 원리는 외적인 과정이 내적인 과정과 유관하게 비슷하다면 동등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

동등성 원리는 HEC에 대한 기능주의 논변이 작동하게 만듦.

HEC 옹호자가 동등성 원리를 위반한다면, 자신의 HEC 논증을 위반하는 것임

516

결과적으로, 기능주의는 HEC를 함축하지만, 클라크와 차머스가 제안한 온건한 HEC를 함축하지 않음.

그러나 HEC에 대한 기능주의 논변은 급진적 형태의 HEC를 함축함.

문제는 급진적 형태의 HEC는 확실히 거짓이라는 것.

517

극단적 HEC에 따르면, 단순히 책을 집는 것으로, 나는 그 책이 포함하는 것을 모두 믿게 된다. (H1-3이 작동하지 않아서 그런 듯)

정당화

4절에서 논의한 그 화성인

잉크 자국을 사용하여 기억을 인코딩하는 화성인

감각을 통하여 믿음을 획득하는 것만큼 내적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가능해보임.

더 나아가, 아직 시험되지 않은 내적 믿음을 가진 유기체도 가능해보임.

예) 발달 과정에서 데이터 도서관이 내장된 유기체. 이 유기체는 해당 데이터를 적용한 적 없음.

잉크 자국에 기반한 화성인은 내적 믿음들의 저장을 가지고 태어나고, 데이터 중 대부분은 선택되지 않았지만 원한다면 선택될 수 있음.

그 화성인은 머리 속에 잉크 자국이 있고 그 자국이 적절한 방식으로 그 화성인의 행동을 지도함.

나는 잉크 자국이 단지 머리 밖에 있고 내 행동을 적절한 방식으로 지도할 수 있음.

화성인과 나의 차이는 잉크 자국이 머리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의 차이

동등성 원리에 의하면, 화성인이 믿음을 가진다면, 나도 믿음을 가지는 것

517

같은 논변을 인지 과정에 적용함.

나의 데스크탑 컴퓨터는 미래에 대한 5000년짜리 마야 달력 날짜를 계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음.

나는 한 번도 그 프로그램을 구동하지 않았고, 심지어 컴퓨터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마야 달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컴퓨터의 자원을 활용하면 프로그램은 마야 달력 날짜를 확인할 수 있다.

기능주의 논변에 따르면, 마야 달력을 계산하는 심적 과정을 가지고 있다.

화성인의 능력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행할 때의 의도치 않은 부산물로서 나타날 수 있다.

화성인은 이런 인지 과정을 사용하지 않았을 수 있고 가지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래인 맨>의 래이먼드 배빗의 카드-카운팅처럼 화성인은 적절한 환경에서 그러한 인지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동등성 원리에 의하면, 나도 그런 인지 과정을 가진다.

518

다른 예

518

예를 정교하게 해보자

518-519

급진적 HEC의 결과는 틀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급진적 HEC는 거부되어야 한다.

온건한 형태의 HEC는 수용가능한가?

(H1-3)을 온건한 HEC에 추가하면 작동하지 않는다.

다른 조건을 추가할 수 없는가?

519

그러한 조건을 추가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유

첫 번째

그러한 조건은 동등성 조건을 만족할 수 없다.

그러한 조건은 현실의 확장된 인지 체계가 만족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모든 가능한 내적-외적 인지 체계가 만족할 수 없다.

519

두 번째

제약을 추가하는 것이 어떻게 급진적 HEC를 피하는 데 도움을 줄지 확실하지 않다.

520

온건한 HEC를 옹호하는 다른 선택지는 (H1-3)이 유지되어야 하지만, 인지에 대한 필요조건으로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합된 것으로서 유사한 기능주의 조건으로

...

VI. The Problem with Functionalism

VII. Metaphysical versus Explanatory Arguments for HEC

VIII. Conclusion



(2019.06.22.)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