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30

한끗에 5억을 태워?



대학원에서도 영화 <타짜>의 곽철용이 인기다. 대학원생들도 곽철용의 대사를 약간씩 변형하며 따라한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누군가가 영화 속 곽철용의 대사 중 하나인 “한끗에 5억을 태워?”를 하자 다들 그 대사를 약간씩 변형하며 따라했다. 변형된 대사 중 식사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가장 크게 웃은 것은 내가 한 대사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석사? 석사 하나에 2천을 태워?”





왜 사람들은 내가 한 대사에 가장 크게 웃었을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말한 여러 상황 중에서 석사 학위에 2천을 태운 것이 한끗에 5억을 태우는 것에 가장 근접해서 그럴 것이다.

(2019.09.30.)


2019/11/29

사과 껍질 깎기



교회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할 때, 사모님이 칼이 이상해서 사과가 잘 안 깎인다고 하셨다. 주방에서 식당으로 반찬을 나르던 나는, 사모님의 말을 듣고 정말 칼이 이상한가 싶어서 그 칼로 사과를 깎아보았다. 칼이 이상하기는 했다.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보던 사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 사과 껍질을 정말 얇게 깎네요!” 내가 사과 껍질을 얇게 깎기는 한다.

내가 사과 껍질을 얇게 깎기 시작한 것은, 성철 스님이 사과 껍질 두껍게 깎았다고 제자를 꾸중한 이야기를 듣고서부터다. 성철 스님은 제자가 사과 껍질을 종이장처럼 얇게 깎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가 만석꾼이냐며 화를 냈다. 껍질째 먹으면 될 일이지만 그건 또 안 될 일이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제자 중 사과를 잘 깎는 사람은 하도 껍질을 얇게 깎아서 사과 깎아놓은 것을 멀리서 보면 푸른색 사과처럼 보였다고 한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될 줄 몰랐다.

내가 20대 후반에 이모댁에 1년 정도 얹혀 살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모는 손에 힘이 없는지 사과 껍질을 깎는다기보다는 사과 살을 베어낸다고 해도 될 정도로 사과 껍질을 두껍게 깎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이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모는 그렇게 과일을 못 깎으니 나중에 며느리가 사과 껍질 두껍게 깎는다고 트집도 못 잡겠구만.” 그러자 이모가 이렇게 답했다. “그런 걸로 며느리 구박하면 못 써.” 새삼스럽게 맞는 말이었다.

(2019.09.29.)


2019/11/28

나는 정의당원인데



대학원 석사 졸업생과 저녁식사를 했다. 무슨 대화를 하다가 그런 말이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나는 정의당원이며 매달 당비를 낸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졸업생이 깜짝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레드홍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레드홍은 홍준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졸업생은 내가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 같은 당을 지지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졸업생이 그런 판단을 한 근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같이 다니는 사람 중에 정치 성향이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다니는 정치 성향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다른 하나는 과학철학 전공자 중에 마초에 보수적인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그런 사람이 다녔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 대학원에 다니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와 내가 정의당원이라는 사실에 졸업생이 놀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른 대학원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한 석사과정생은, 과학철학 하는 사람들은 선배가 정의당원인 거 다 아는데 다른 전공자들은 자유한국당 당원으로 아는 것 아니냐, 다른 방에도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웃었다. 다른 대학원생은 “그런데 과학철학 하는 사람 중에 마초가 많아요? 아닌 것 같은데. 남들이 볼 때 마초인데 이미 익숙해져서 우리끼리는 모르는 건가?”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마초도, 좀 키가 한 185센티 정도는 되고 몸에 근육도 많고 신체 능력도 좋아야 마초 할 맛이 나지 않을까? 키도 작고 근육도 없고 힘도 없는 것이 왜 마초를 해?” 내 말에, 석사과정생이 이렇게 말했다. “선배가 그러니까 자유한국당 지지자로 오해받는 거예요.”

(2019.09.28.)


2019/11/27

[과학사] Gillispie (1960/2016), Ch 7 “The History of Nature” 요약 정리 (미완성)



[ Charles Coulston Gillispie (2016), The Edge of Objectivity: An Essay in the History of Scientific Ideas (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

Charles Coulston Gillispie (1960), The Edge of Objectivity: An Essay in the History of Scientific Ideas (Princeton University Press).

찰스 길리스피, 「제7장. 자연의 역사」, 『객관성의 칼날』, 이필렬 옮김 (새물결, 2005), 299-344쪽. ]

장 밥티스트 드 라마르크(1744-1829)

[313-]

그렇다면 무엇으로 인해 생물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는가?

라마르크의 철학에 의하면 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함.

첫째는 생물에 내재해 있는 힘이며, 둘째는 물리적 환경의 영향

그리고 생물과 무생물(환경)의 투쟁의 결과로 다양한 종이 발생함.

생명의 힘은 생물이 끊임없이 복잡한 형태로 변하도록 작용함.

물리적 환경의 영향은 이 자연스러운 연속적 변화를 깨뜨리고 불연속을 일으킴.

이 불연속으로 인해 종 사이의 간극이 나타남.

라마르크는 한 종류의 광물이 환경의 작용에 의해 다른 종류의 광물로 변한다는 사실로부터, 광물에는 항구적인 종이 없다고 생각하게 됨.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생물계에 적용하여 생물종도 환경의 영향 아래 다른 종으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됨.

생물종이란 고정된 것이라는 당시의 견해와는 다르게 라마르크에게 종이란 생명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형태로 생각했던 것.

환경의 변화는 요구의 변화를 불러일으킴.

요구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낳음.

행동의 변화는 새로운 습관이 되고 특수한 기관을 변화시켜 마침내 생물체 일반을 바꿈.

그는 두 가지 법칙을 끌어냄.

기관은 사용 여부에 따라 발달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그리고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획득한 형질은 유전된다는 것.

오늘날 획득 형질의 유전은 옳지 않은 것으로 밝혀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마르크는 생물학의 연구 방향에 큰 전환점을 가져옴.

당시에는 현재 보이는 자연의 모습만을 연구하고 있었던 반면에 라마르크는 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연의 추이, 즉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것.

즉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생물이 변화되어 왔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개척했던 것.

라마르크의 생물학은 객관적 과학으로 편입되지는 못했지만 생물학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함으로 다윈을 위한 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 의의가 있음.

조르주 퀴비에(1769-1832)는 라마르크(1744-1829)와 동시대를 살았던 박물학자이자 프랑스의 과학 행정가.

퀴비에와 라마르크의 주요 업적은 박물관의 멋진 수집품을 배열하는 방법을 수립하고 출판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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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세기 천동설의 프톨레마이오스와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가 달랐던 것처럼 라마르크와 퀴비에도 서로 달랐음.

라마르크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었으며, 그의 생물철학은 자연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었음.

그는 각 생물종은 영화의 한 순간 장면과 같은 것으로 다른 장면들 즉 다른 생물종과의 연속적인 흐름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함.

퀴비에는 라마르크와 반대편에 서 있었음.

퀴비에는 라마르크와는 달리 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음.

퀴비에는 생물종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며,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함.

즉 각 생물종은 불연속군을 이룬다고 주장함.

[321-]

오늘날 자연사 박물관에 가보면 거대한 공룡의 골격을 볼 수 있음.

고생물의 화석을 발견할 때는 대부분 불완전한 모습으로 발견됨.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완전한 형태의 공룡들을 다시 조립할 수 있는가?

어떨 때는 아주 당혹스러울 때가 있음.

수백 개의 뼈들이 흐트러진 채 발견되었는데, 그 뼈들이 20종에 달하는 동물들의 뼈라면 어떨까?

하나 하나의 뼈에 대해 그것이 어떤 동물의 것이었는지를 정해야만 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322-]

여기에서 퀴비에의 분류학적 방법이 빛남.

고대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의 겉모습을 보고 분류하였지만, 퀴비에는 더 나아가 비교해부학이라는 방법으로 접근함.

퀴비에는 커다란 업적이 바로 비교해부학에 있음.

부분들의 상호관계성 원리와 비교해부학의 결합은 불가능하게 보였던 그러한 조립을 가능하게 함.

동물의 한 부분으로부터 그 동물 전체를 추정함.

다시 말하면 유기체 내부의 형태들은 상관성을 지닌다는 것.

각 생물은 종합체를 형성함.

그것은 독특한 폐쇄체계이고 어느 부분이나 서로 대응하며, 상호 작용을 통하여 공동으로 일정한 활동을 함.

어떤 동물의 내장이 신선한 고기만을 소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면 그 동물의 턱은 포획물을 잡아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그 발톱은 움켜쥐고 잡아 찢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함.

그 동물의 전 체계는 추적하고 포획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

이러한 논리하에 고생물학이 수립됨.

사멸된 종, 화석만 남은 그 생물들을 다시 복원하여 박물관에 멋있게 전시할 수 있게 됨.

[333-]

독일의 광산학교의 광물학 교수였던 아브라함 고틀로프 베르너(1749-1817)는 어떻게 다양한 암석들이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을 내놓음.

모든 암석들은 지구 전체를 덮고 있던 원시 해양의 침전물로부터 생성됨.

이를 베르너설 또는 수성론이라고 부름.

[344-]

제임스 허튼(1726-1797)은 화성론을 주장함.

그의 저술 <지구의 이론>에 의하면, 과거의 사건은 현재도 작용하는 과정으로부터의 귀납적 유추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으며, 암석이 나타내는 증거에 의해서만 기술될 수 있었음.

지각은 화성 작용에 의한 것과 수성작용에 의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수성작용에 의해 침전된 퇴적층은 지구 중심의 고압 고열의 작용에 의해 단단한 암석으로 변화되었으며 그 팽창력은 해저에서 대륙을 융기시킴.

[335-]

이후 다양한 지층이 발견되면서, 이 지층들 사이에 체계를 세우는데 고생물학의 화석이 열쇠를 제공함.

영국의 무명 측량기사 윌리엄 스미스(1769-1839)는 1791년 특정 종의 화석은 특정 그룹의 지층들에만 존재하고, 다른 지층에는 없다는 것을 발견함.

그는 이 사실을 이용하여 주요한 암석계를 확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으며, 1815년 <잉글랜드 및 웨일즈의 지층의 개요>에서 고생물학적 지표를 이용하여 지층을 분석함.

[337-]

지층의 이름을 짓는 데는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방법, 즉 석탄이 발견된 지층을 석탄기, 백악이 발견된 지층을 백악기로 부르는 경우와, 데본기, 쥐라기, 페름기처럼 그 지층이 처음 발견된 지방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었음.

1820년대에 로드릭 머치슨(1792-1870)이 실루리아기를 발견하였고, 에덤 세지위크(1785-1873)이 조수로 데리고 간 그의 학생 찰스 다윈과 함께 캄브리아기 지층을 발견함.

[340-]

1830년경에 찰스 라이엘(1797-1875)의 <지질학 원리>가 출판되면서 지질학은 이전의 아마추어적인 면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함.

<지질학 원리>는 지질학이 참된 과학으로 발달하는 것을 방해했던 장애물을 제거함.

현존하는 질서와는 다른 질서에 의하여 지구가 형성되었다고 하는 비-학문적 전제를 제거했던 것.

<지질학 원리>에 의하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음.

현재 작용하고 있는 힘에다가도 충분한 시간만 주게 되면, 인간의 거처인 지구에 관찰 가능한 변화가 초래된다는 것.

그는 모든 변화가 균일하며 시간 속에서 주기적으로 진행된다고 주장함.

[341-]

<지질학 원리>를 면밀하게 연구했던 다윈은 이 책의 영감을 받아 획기적 과학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지질학자들은 고생물학적 지표와 화석 형태의 연속을 가지고 지구의 연대를 수립함.

반면에 생물학자들은 지질학적 시대 구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음.

라이엘이 종의 변이에 대해 단호한 반대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증거를 확인하지도 않고 종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은 균일설의 이론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임.

(2024.01.01.)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