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30

[한국 가요] 뱅크 (The Bank)



뱅크 - 가질 수 없는 너

( www.youtube.com/watch?v=iYDb1qCvsbE )

(2021.05.17.)


이준석은 왜 그럴까?

     

며칠 전에 시청 공무원 한 명과 설계사 두 명과 만났다. 그들을 만난 것은 내가 창고부지 건설과 관련하여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악성 민원인들은 대체로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내서 담당 공무원을 괴롭힌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과 다르게 보내는 민원마다 내용이 다 달랐고 질문과 요구사항이 구체적이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는 시청에서 답변하기 곤란한지 답변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뭉뚱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내가 민원 하나를 보내는데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민원 답변이 오는 데 한 달 보름 정도가 걸리기 시작했다. 결국 공무원이 면담하자고 했고 그 자리에 설계사 두 명을 동반했다.

 

설계사가 두 명이나 온 것은, 내가 연립주택 하수도 때문에 창고 배수로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물류창고를 설계한 설계사와 연립주택을 설계한 설계사를 모두 만났다.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 설계사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나의 어머니도 있었는데 나에게만 명함을 주고 어머니에게는 명함은 주지 않고 고개만 까딱 인사만 했다. 민원은 내가 보낸 것이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옆에 있는데 그들은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번 한 번이 아니다. 재작년에 옆집 아저씨가 행정사를 데려온 적이 있었다. 옆집 아저씨의 부인이 도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부인의 공무원 선배가 퇴직한 뒤 행정사를 새로 개업했다고 했다. 행정사도 전관예우나 있다나 뭐라나. 하여간 행정사도 처음 만났으니 인사를 나누는데 그 행정사 아저씨가 나에게만 명함을 주고 어머니한테는 고개만 까딱하고 명함은 주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설계사 놈은 50대쯤 되는 것 같았고 지난번에 만난 행정사 놈은 60대 쯤 되는 것 같았다. 두 놈 모두 속이 훤히 보이는 개수작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왜 멀쩡히 옆에 있는 어머니한테 명함을 주지 않았는가? 명함이 순금으로 된 것도 아니고 한 장 주나 두 장 주나 거기서 거기인데, 왜 아들인 나에게만 주고 어머니한테는 주지 않은 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두 놈의 싸가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 연령대 남성의 일반적인 경향이 싸가지 없는 두 놈에게서 조금 과하게 드러난 것인가?

 

내가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사회생활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어쩌다 들어보면, 패악질을 부린다든가 아니면 가시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위험한 놈들은 50-60대에 걸쳐 있는 것 같다. 50-60대 남성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쁘다 싶은 놈들은 그 연령대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그럴 것 같다.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것부터, 인사고과를 평가하는 것이며, 근무를 배정하는 등의 권한을 가진 사람이 모두 그 연령대에 집중되어 있으니, 나쁜 짓을 해도 그런 권한이 있는 사람이 나쁜 짓을 더 수월하게 할 것이다. 20대 남성이 나쁜 짓을 해봐야 데이트 폭력이나 기타 강력범죄 등 물리력에 의한 폭력을 저지를 수는 있겠지만, 위력에 의한 뭐시기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여성 차별이 옛날 이야기냐 요즈음도 일어나는 일이냐 하면서 싸울 때, 옛날 이야기와 요즈음 일어나는 일에 모두 등장하는 연령대가 50-60대라는 것이다. 가령, 예전에는 태아의 성별을 감별해서 여자아이면 낙태하는 일이 있었고 그래서 30대에는 성비가 안 맞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그건 옛날 이야기이고 그런 일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반박한다. 둘 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 태아 성감별해서 낙태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그런 짓을 했던 사람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연령대가 50-60대다. 이렇게 본다면, 옛날 일이 옛날 일로 끝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0대나 30대 여성이 겪는 차별이라든지 구조적 불합리 등과 관련하여 화살을 돌린다면 50-60대 남성에게 돌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효과적일 텐데, 이상하게도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싸움의 형태로 나타난다. 왜 그런가? 20대 남성으로서는 취업도 안 되어서 죽겠는데 할당제 같은 소리나 들리니 짜증이 나는 것이고, 20대 여성으로서도 취업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50-60대 남성의 쓴맛을 본 적이 없고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20대 남성에게나 화풀이를 하는 것인가?

 

상황이 이러하니, 내가 30대 보수 정치인이라면,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서 20대 남성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20대 남녀 중 일부 극렬분자와 선을 긋고 20대 남녀 대 50-60대 개저씨의 구도로 잡을 것 같다.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대결 구도로 잡으면, 20대 남성 중 일부의 지지를 받더라도 20대 남성 중 제정신인 사람과 20대 여성 대부분의 지지를 포기해야 한다. 50-60대 남성 중 상당수가 조국, 윤미향, 박원순, 오거돈, LH의 와중에도 민주당을 지지했던 것을 감안하면, 50-60대 남성을 적으로 돌리고 20대 남녀를 다 끌어안는 식으로 편을 갈라야 보수 쪽에 유리하다. 특히나 그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정치인이 30대라면 남녀가 아니라 세대로 갈라쳐야 자기 입지를 굳히는 데 유리할 것이다. 20대가 다 자기표인 것처럼 굴어야 지분을 확보할 때도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준석이 왜 세대로 가르지 않고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으로 가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제 20대 여성표는 적어도 이준석에게 가지 않는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데, 사회정의고 뭐고 다 떠나서 자기 정치적 입지를 굳히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2021.04.30.)

    

2021/06/29

윤김지영 박사가 국립창원대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윤김지영 박사가 국립창원대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보이루’가 ‘보*+하이루’라는 논문을 쓴 사람이 국립대 교수가 되었다니. 친구가 보겸 논문 가지고 분노할 때 나는 “강사는 돈을 얼마 못 받으니까 미친 짓 해도 그냥 그런가보다 해”라고 말했다. 그런데 윤김지영 박사가 국립대 교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분노하게 생겼다.

국립창원대 철학과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정말로 윤김지영 박사가 교수가 되어있었다. 비전임교원도 아니고 전임교원이었다. “윤지영 교수님은 유럽 현대 철학 분야 전공으로, 한국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한 분이며, 철학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신 분입니다”라고 소개한 글이 있었다. 홈페이지에는 윤지영 교수의 대외활동을 소개한 게시글도 있었다. 최근에 KBS 뉴스와 MBC 뉴스에서 인터뷰했다고 한다.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정신이 돌아왔다. ‘아, 보겸 논문은 윤지선 박사가 쓴 거지? 윤김지영 박사는 윤지선 박사의 언니고. 아, 순간 헷갈렸네.’ 잠시 안도했는데 생각해보니 윤지선 박사나 윤김지영 박사나 그게 그거 아닌가? 정신이 나갈 뻔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게 그렇게까지 분노할 만한 소식은 아니다. 윤김지영 박사가 국립대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나 같은 사람도 국립대 교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잘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잘 되었다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될 가능성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높다는 것에 희망을 찾는 것이 더 좋은 태도이다.

국립창원대의 홈페이지를 보고 나서, 대학원을 그만두지 말고 어떻게든 박사학위를 받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하는 게 잘 안 된다고 해서 주눅 들 것이 아니다. 가슴 한 구석에 야망을 품고 살아야겠다. 윤김지영 박사가 그러했듯 나도 야망자... 아니 야망 있는 자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2021.04.29.)


2021/06/28

[과학사] Daston and Galison (1992), “The Image of Objectivity” 요약 정리 (미완성)

     
[ Lorraine Daston and Peter Galison (1992), “The Image of Objectivity”, Representation, No. 40, pp. 81-128. ]
  
  
  1. The Talismanic Image
  2. Truth to Nature
  3. Objectivity and Mechanical Reproduction
  4. Objectivity Moralized


  1. The Talismanic Image

- 이 글에서 대스턴과 갤리슨은 과학적 객관성의 한 형식인 “기계적 객관성(mechanical objectivity)”의 등장과 그 특징을 다룬다. 이들은 과학에서의 객관성을 별개의 여러 가지 요소-관념들이 층위를 이루며 혼합되어 성립된 개념으로 본다. 즉, 이러한 객관성은 여러 가지 다른 형식의 객관성들이 섞여져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며, 이 중 기계적 객관성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나타난 객관성을 이루는 한 요소이자 또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다.
- 이를 보이는 과정에서 그들은 과학 도감(atlas)의 이미지들에 집중한다. 이는 도감에 실리는 과학적 이미지에 당대의 과학적 객관성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도감은 과학적 객관성의 새로운 조류에 대한 ‘선언서’이자 ‘지참인’이었다.
  

  2. Truth to Nature

- 19세기 중반 이후 도판에 나타난 새로운 객관성의 양식을 포착하기 위해, 대스턴과 갤리슨은 먼저 이 시기 이전 도감 제작자들이 도감 제작에 반영했던 다른 관념 및 관행을 제시한다.
- 18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의 도감 제작자들은 특정한 현상을 선택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자격 있는 도감 제작자의 선택과 판단을 중요시했다.
- 도감 제작자들은 폭넓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개별적인 개체들 이면의 본질과 보편적 진실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도감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도감에 그려 넣은 그림은 존재하는 개개의 개체들의 특징을 포괄할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나 개체가 지닐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훌륭한 이상적인 상, 또는 유사한 대상들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을 담는 상이었다. 이러한 ‘유형’을 결정하는 주체는 도감 제작자였으며, 그들의 주관과 해석은 그 과정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 도감의 이미지는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정받은 도감 제작자의 판단에 의해 개체를 대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들이 ‘자연에 충실함(truth to nature)’라고 표현한 이 시기의 경향이 결코 사실성을 저버린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실성을 엄밀히 추구하고자 한 결과임을 지적한다. 그들은 외양 변화 배후의 실재를 포착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자연의 사실적 모습에 충실한 태도라고 믿었다.
  

  3. Objectivity and Mechanical Reproduction

-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19세기 말에 도감 제작자들은 유형과 전형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데 내재한 주관성을 우려하고 그것을 부정하려 했다. 그들은 해석과 선택, 판단을 배제할 필요가 있는 주관적인 유혹으로 간주했으며 그와 같은 인간의 개입을 과학적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축출하고자 했다.
- 이러한 시도는 먼저 도감에 실릴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들에게 향했다. 카메라 옵스큐라나 유리판을 이용하는 등의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방식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도감 제작자들은 화가에 의한 주관적 변형의 여지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기계적인 방식을 통해 주관으로부터의 해석이나 개입 등을 차단하려는 태도는 곧 과학자 자신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 19세기 말 이후 자기 규율(self-discipline)과 극기(self- surveillance), 기계의 이용은 도감의 제작에 깊게 뿌리내렸다. 특히 기계는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해석에 오염되지 않는 영상을 기약해줄 수 있다고 받아들여져 인간의 의지를 보완할 수 있는 도구였다.
  
  
  4. Objectivity Moralized
  
- 저자들이 한 가지 강조하는 점은, 이 당시의 ‘기계적 객관성’은 주관의 개입을 저지하는 일을 상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이다.
- 사진이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은, 기계적 객관성의 상징이 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사진 그 자체는 실제와 완벽히 일치한다는 인정을 완벽히 얻지 못했고, 따라서 객관성에 대한 논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또한 한 장의 사진은 그것 자체로 자연의 수많은 변이를 대변할 수 없었으며, 개개의 사진만을 통해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별하는 일도 힘든 일이었다. 이로 인해 각각의 사진들의 패턴을 분석하는 능력을 독자에게 요구하는 또 다른 도감을 둘러싼 경향이 등장하기도 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진은 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자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개인적 판단을 배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기계적 객관성은 핵심은 과학 활동에서 주관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저자들은 자기 규율과 자기 절제에 대한 장기적인 요구가 이와 같은 주관성의 개입을 거부하는 기계적 객관성을 낳았으며, 이 객관성의 한 형식이 그 시대의 덕목(morality)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고 본다.
  
  
(2015.11.21.)
    

2021/06/27

[강연] 이기동 교수



[국제퇴계학회] 코ㄹ나 사태의 퇴계학적 극복방안 / 이기동 (국제퇴계학회 회장)

www.youtube.com/watch?v=Xkd4Pa_6H9o )


[배달의숙] 환단고기에서 얻은 지혜 / 이기동 교수

www.youtube.com/watch?v=ld7kulyIvRY )


[STB상생방송] 세계환단학회 2019 공동춘계학술대회 - 한국고대사상의 내용과 특징 / 이기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_(1) ( www.youtube.com/watch?v=XmRR8pUkN6M )

_(2) ( www.youtube.com/watch?v=1eYmsyriHq4 )


[STB상생방송] 세계환단학회 2018 공동춘계학술대회 - 행촌의 단군세기 철학적 배경 / 이기동 교수

www.youtube.com/watch?v=0sEdeOWvUWU )


[STB상생방송] STB청소년특강 마음자리 - 한국 사상의 기원 /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이기동 교수

_1부 ( www.youtube.com/watch?v=n4URIGOqonk )

_2부 ( www.youtube.com/watch?v=yzo40Xw7_iA )


[플라톤 아카데미] 논어 (이기동 교수)

www.youtube.com/watch?v=hRYgeub2fx0 )


[플라톤 아카데미] 중용,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기동 교수)

www.youtube.com/watch?v=6SeUPYSNmdA )


[플라톤 아카데미] 한국인의 정서와 사상 (이기동 교수)

www.youtube.com/watch?v=4MX14arqjGI )


[국회방송] TV특강 이제는 인성이다 - 제9회. 이기동 교수

www.youtube.com/watch?v=vrmOsLfzyPA )



(2021.07.26.)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