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어머니가 집에 며느리가 잘 들어와야 한다면서 그게 걱정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마흔을 코앞에 두고 이 모양으로 사는 게 훨씬 큰일인데, 어머니는 며느리가 잘못 들어올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는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집이 위기에 처한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었다. 어머니는 드라마에 심취하여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 하는 아주머니들을 무식한 여편네들이라며 멸시하는 분이라서 항상 실제 사례를 자기 주장의 근거로 든다. 어머니가 든 사례는 어머니가 아는 사람이나 한두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의 사례였는데 정말로 며느리가 잘못 들어온 것이었다. 어느 집 며느리는 능력 없고 게으르고 살림을 못 하고, 어느 집 며느리는 능력 없고 게으르고 살림을 못 하면서 못 생겼고, 어느 집 며느리는 인물은 괜찮은데 낭비벽이 있고 등등. 정말로 하나같이 문제가 있는 며느리들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문제 있는 며느리들의 사례를 듣다가, 무언가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며느리를 아내로 맞이한 아들들은 멀쩡한 건가? 남자가 잘 나고 매력이 있으면 어쩌다 운 없이 상태 안 좋은 여자를 만나도 금방 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 아들들은 별 볼 일 없거나 별로 매력이 없는 남자이지 않을까? 어머니는 그 집들의 아들들이 어떤지 떠올려 보았다. 실제로 아들들 중 대부분은 별 게 없었다. 며느리가 못 생겼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한 시어머니는 정작 자기 아들이 못 생긴 건 신경 쓰지 않았고, 며느리가 능력 없고 게으르다고 욕한 시어머니는 정작 자기 아들도 능력 없는 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다 운이 안 좋아서 며느리가 잘못 들어왔는데 남자가 멀쩡해서 사태를 잘 수습한 사례도 있지 않을까? 있었다. 어머니가 아는 사례 중에는, 외도나 도박 등 치명적 요소 없이 며느리의 무능과 게으름만으로 집안을 말아먹은 사례와 그렇게 될 뻔했는데 아들이 잘 수습한 사례가 있다. 전자의 경우, 아버지가 횡령과 사기 등으로 거액의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비슷한 수준으로 무능하고 게을러서 집은 작살났지만 어쨌든 화목하게 지내고, 후자의 경우, 아들이 부인과 금방 이혼하고 괜찮은 여자와 재혼하여 재산을 지키고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후자의 경우, 해당 아들에게는 형제가 있었기 때문에 부인과 결혼이 지속되었다면 자신의 형제에게 가업이 넘어가 자신이 받지 못할 것이었는데 결단력 있게 빨리 이혼하여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잘못 들어올까봐 걱정했지만, 정작 어머니가 취합한 사례는 그러한 걱정이 기우임을 보여준다. 며느리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 대부분은 아들에게도 문제가 있어서 그런 며느리를 데려온 것이며, 아들에게 문제가 없는데 단지 운이 안 좋아 며느리를 잘못 데려온 경우 아들이 결단력 있게 사태를 수습하여 집을 보존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애먼 며느리를 미워할 게 아니라 애초에 아들을 잘 낳았어야 했고, 안타깝게도 아들을 시원치 않게 낳았거나 잘못 키웠다면 상태 안 좋은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을 기본 설정으로 받아들였어야 했고 어쩌다 상태 좋은 며느리가 들어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다.
어머니는 이러한 나의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얼마나 훌륭한 며느리를 데려오는지 두고 보자.”
(2023.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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