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vid Bloor (1991), Knowledge and Social Imagery, 2n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3-23.
데이비드 블루어, 「제1장. 지식사회학에서의 스트롱 프로그램」, 『지식과 사회의 상』, 김경만 옮김 (한길사, 2000), 51-82쪽. ]
1. 스트롱프로그램 (The Strong Programme)
2. 지식의 자율성 (The Autonomy of Knowledge)
3. 경험으로부터의 논박 (The Argument from Empiricism)
4. 자기반박성 논박 (The Argument from Self-Refutation)
5. 미래지식을 이용한 논박
(The Argument from Future Knowledge)
3, 51
이전까지 과학 지식은 지식사회학에서 예외적인 대상으로 남아있었음.
3, 51-52
기존의 사회학 연구는 과학의 제도적 구조와 성장률, 또는 성장 방향에 관계된 외적 요인에만 집중되어 있었음.
4, 53
사회학이 과학 지식(즉 ‘내적 요인’)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스트롱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비판들을 검토하면서 스트롱 프로그램의 의의를 보여주고자 함.
1. 스트롱프로그램 (The Strong Programme)
5, 53-54
- 지식에 대한 사회학자의 정의는 일반인이나 철학자의 정의와 다름.
지식을 참된 믿음이나 정당화된 참된 믿음에 제한하지 않고,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이 지식으로 간주하는 모든 것을 지식으로 봄.
그것은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지키며 생활하는 모든 믿음들로 이루어짐.
특히 사회학자는 당연시되거나 제도화된 믿음, 또는 집단에 의해 권위가 부여된 믿음에 관심을 가짐.
물론, 지식은 단순한 믿음과 구별되어야 함.
이것은, 개인적이고 특이한 것은 단순한 믿음으로 남겨두고 집합적으로 지지된 것을 지식으로 한정함으로써 가능해짐.
지식은 단순히 한 개인의 믿음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지지된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됨.
5, 54-55
이러한 일반 원칙은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인과적 언어로 표현됨.
사회학자는 지식이 창조‧유지‧전달‧변형되는 규칙, 일반원칙, 혹은 과정을 찾는 것에 관심을 가짐.
인과적인 언어로 구성된 이론이 최대한 일반적이기 위해서는, 이론이 가능한 동일한 형태로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 둘 다에 적용되어야 함.
55-57
지식 내용에 사회적인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선행 연구
선행 연구(1): 사회구조
선행 연구(2): 경제, 기술, 공업발달
선행 연구(3): 비과학적인 문화적 특성들
선행 연구(4): 사회화 과정
선행 연구(5): 철학관(?)이 과학 지식과 이론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주장은 스트롱 프로그램의 네 가지 원칙으로 구체화된다. 아래 네 가지 원칙이 스트롱 프로그
램이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 스트롱 프로그램의 네 가지 원칙 [p. 7, 57-58쪽]
과학지식 사회학이 고수해야 할 네 가지 원칙
원칙(1): 인과성(causality)
과학지식 사회학은 믿음이나 지식 상태를 낳은 조건과 관련하여 인과적이어야 함.
물론 사회적 원인과 함께, 믿음을 만들어내는 데 작용하는 사회적 원인과는 별개인 다른 유형의 원인도 존재할 것임.
원칙(2): 공평성(impartiality)
과학지식 사회학은 참과 거짓, 합리성 또는 비-합리성, 성공 또는 실패에 대하여 공평해야 함. 이 양분된 것의 두 측면이 모두 설명되어야 함.
원칙(3): 대칭성(symmetry)
설명 양식에서 대칭적이어야 함.
같은 유형의 원인이 이를테면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을 설명해야 함.
원칙(4): 성찰성(reflexivity)
원칙상 과학지식 사회학의 설명 형태는 사회학 그 자체에도 적용할 수 있어야 함.
대칭성의 요건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일반적 설명을 추구해야 할 필요에서 나온 반응임.
이는 꼭 필요한 원칙인데, 그렇지 않으면 사회학은 자기 이론을 언제나 반박해야만 함.
이러한 네 원칙이 지식사회학에서의 스트롱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정의함.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뒤르켐, 만하임, 츠나니에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임.
2. 지식의 자율성 (The Autonomy of Knowledge)
8, 58-59
지식사회학에 대한 중요한 비판은 어떤 믿음은 아무런 설명도 필요하지 않거나, 인과적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확신에서 유래함.
8, 59
우리가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의 행위는 합리성이나 논리의 요구에 따라 지배받는다고 말하기 쉬움.
왜 일군의 전제들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가에 대한 설명은 논리적 추론 그 자체의 원리 안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것임.
만일 그렇다면 믿음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공하는 사람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가 아니라 논리학자임.
8, 59
어떤 사람이 추론에서 실수할 때는 논리 그 자체가 실수를 설명할 수 없음.
그러나 우리는 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는가에 대해서는 원인을 찾을 필요가 없음.
8-9, 59-60
라일, 『마음의 개념』(The Concept of Mind)
“왜 우리가 속는가를 심리학자로 하여금 우리에게 말하도록 하자.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왜 속지 않는가를 우리 자신과 심리학자에게 말할 수 있다.”(p. 308)
9, 60
이러한 설명은 행위나 믿음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두 유형 중 부정적인 쪽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회학적 원인이나 심리학적 원인들에 호소함.
논리, 합리성, 참은 그 자체로 설명됨. 여기에서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들에 호소할 필요가 없음.
9, 60
이러한 관점은 지식을 자율적인 영역으로 만듦.
이에 따라 지식은 자기-설명적(self-explanatory)이고 자기-추진적(self-propelling)인 것으로 보이게 됨.
9, 60-61
라카토슈의 이론은 과학사회학에도 함의를 지님.
합리적 재구성(rational reconstruction) 또는 내적 역사(internal history)
이런 식으로는 실제로 다양한 과학 실천의 모든 것을 포착하는 것이 불가능함.
그래서 라카토슈는 내적 역사는 항상 외적 역사(external history)에 의해 보충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함.
이는 과학의 비-합리적인 잔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10, 61
라카토슈의 접근에서 주목할 점
주목할 점(1): 내적 역사가 자족적이며 자율적
주목할 점(2): 합리적 재구성은 자율적일 뿐만 아니라, 외적 역사 또는 사회학에 비하여 더 중요한 우선권을 가짐.
10, 62
라카토슈는, 외적 역사나 사회학의 기능은 파생적일 뿐이며, 최상의 과학철학은 그 역할을 최소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함.
과학철학의 진보는 합리적인 것으로 펼쳐 보일 수 있는 실제 역사의 양으로 측정할 수 있음.
인도하는 방법이 좋을수록, 실제 과학은 경험적 설명의 비-합리성에서 더 벗어날 수 있음.
11-12, 64
자연적인 것은 올바르게, 즉 참을 경유하거나 참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
여기서도 목적론적 모형이 작동함.
12, 64-65
목적론적 지식 모형은 스트롱 프로그램의 원칙들을 위배함.
인과적 지향을 포기
오류에 대해서만 원인을 찾음. 지식사회학은 오류의 사회학으로 제한됨.
대칭성과 공평성의 원칙을 위반함.
어떤 믿음이 자명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또는 인과적 설명이 필요한지 결정하기 전에 믿음의 진리값이나 합리성에 대한 선험적 평가가 요구됨.
목적론적 모형이 참이라면 스트롱 프로그램이 거짓임.
12, 65
목적론적 관점과 인과적 모형은 대립되는 형이상학적 관점임.
스트롱 프로그램이 목적론적 관점이 틀렸다는 것에 의존하는 상황을 경계함.
목적론적 관점을 선험적으로 틀렸다고 주장하는 대신, 블루어가 선택한 전략은 상이한 이론들의 내적 일관성을 검토하고, 그에 기초한 실제 연구와 이론화를 행할 때 일어나는 일을 살피는 것임.
이론이 맞는가를 결정하는 일은 이론을 채택하여 사용한 이후이지 그 전이 아님.
13, 66
인과적 과정은 지각된 오류의 패턴을 도려냄으로써 진리와 합리성의 형상을 뚜렷이 부각시킬 것임.
자연은 진리와 옳음을 지지하고 구체화하는 도덕적인 중요성을 떠맡을 것임.
그리하여 비-대칭적인 설명들을 제공하려는 경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연시 여기는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표현할 모든 기회를 가지게 됨.
3. 경험으로부터의 논박 (The Argument from Empiricism)
14, 68
다음 이론을 고려해 보자.
사회적 영향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왜곡되지만, 지각 능력과 우리의 감각 장치를 자유로이 사용한다면 참된 믿음을 획득할 것임.
베이컨의 시장의 우상
14, 68-69
이러한 주장에 입각한다면, 사회학자의 역할은 다시 지각의 오류를 만드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탐구로 제한될 것임.
그런데 경험주의 지식개념으로 참/거짓을 나눌 수 있는가?
두 가지 이유로 불가능함.
14-15, 69-70
첫째, 감각 작용 자체의 오류 가능성이 있음.
우리가 지닌 동물적 자원의 자연적 작동이 항상 지식을 생산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되었음.
15, 70
둘째, 더 중요한 요인으로, 경험주의가 가진 개인주의적 특성임.
사실상 공유된 가정, 기준, 목적, 의미의 기본틀 안에서 개별적 경험이 일어나지 않는가?
사회는 개인의 마음에 이런 가정들의 틀을 공급하고, 또한 그것이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듦.
개인이 이를 잘 파악하지 못하면 그것을 일깨워주는 요소가 있고, 또 그의 세계관이 일탈하기 시작하면 재정렬을 장려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함.
그래서 자연세계에 대한 개인의 감각경험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험을 넘어서서 그것에 기본적 틀을 제공하고 더 광범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어떤 것이 존재함.
그것은 총체적 실재(Reality)가 무엇인가에 대한 개인의 의미를 완성시켜주며, 따라서 그의 경험이 ‘어떤 실재적 대상’에 대한 것이 되게 함.
15-16, 71
지식은 행위자가 개별적인 감각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님.
지식은 그 자체가 집단 구성원들에게 공유되고 인정되는 집단적인 견해이기 때문임.
지식은 경험보다는 문화에 더 가까운 것임.
16, 71
따라서 사회학적 관점으로 볼 경우, 경험을 진리에, 사회적 요인을 오류에 놓는 경험주의는 기각됨.
지식은 사회적인 요인과 감각적인 요인이 혼합되어 있는 것임.
16, 71-72
혼합적인 지식의 특성을 설득시키기 위해, 블루어는 ‘이론’을 언급함.
보통 지식은 ‘이론적’
이론은 경험의 토대가 되고 그것을 연결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공함으로써 경험에 의미를 부여함.
그러나 이론 자체는 경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님.
이론이 경험에 반응하기는 하지만, 이론은 자신이 설명하는 경험에 의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경험에 의해서 유일하게 뒷받침되는 것도 아님.
이론적 지식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물리 세계로부터 동떨어진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함.
지식의 이론적 구성요소는 사회적 요소이며, 그것은 단순한 오류의 표시가 아니라 참의 필수적인 부분임.
4. 자기반박성 논박 (The Argument from Self-Refutation)
17, 72-73
과학 지식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면, 사회학자들 자신의 의견도 마찬가지로 구성된 것 아닌가?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일반성이나 진리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것은 아닌가?
17, 73
블루어는 이런 주장은 인과성이 오류, 일탈, 한계를 내포한다는 그들의 중심사상을 그 주장의 전제로 취한다고 반박함.
18, 75
이 모든 주장의 근거가 되어온 “인과성이 오류를 내포한다”는 전제를 밝혔고, 그것은 거부되었음.
따라서 그러한 주장들은 그 기반이 된 전제와 함께 기각되었음.
하나의 믿음이 참 또는 거짓으로 판단되는지 아닌지는 그것이 원인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와는 관련이 없음.
5. 미래지식을 이용한 논박
(The Argument from Future Knowledge)
19, 76
포퍼에 의하면, 미래지식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함.
그 이유는 어떤 예측도 바로 그 지식의 발견에 해당되기 때문임.
우리가 행위하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의존하며, 따라서 미래행위는 이 예측 불가능한 지식에 의존할 것이며, 이것 또한 예측할 수 없을 것임.
그것은 원인과 법칙에 대한 탐구를 하는 스트롱 프로그램의 열망은 잘못된 것이고, 조금 더 겸허한 수준의 경험적 연구가 요구된다는 것을 암시함.
20, 77
블루어는 제한된 지식을 통해 반박함.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이 작용하고 있는 한 우리의 예측이 실패할 수 있으나, 이것이 자연 현상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음.
그러므로 사회 세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한 예측은 실패할 것이나, 예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님.
20, 77-78
사회 세계에서 나타나는 ‘규칙성’이 이론적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줌.
20-21, 78
미래 지식을 통한 또 다른 비판은, 사회 과학의 규칙성이 자연 과학의 ‘법칙적 규칙성’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표면적인 ‘추세와 성향’이라는 것에 있음.
블루어는 법칙성에 대한 이와 같은 구별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함.
한다(78). 실제로
블루어는 자연 세계의 외관도 ‘성향’에 의해 지배받음을 말함.
21, 78-79
중요한 것은 현상 뒤에 있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는 사회 세계에서 나타나는 성향에도 해당됨.
그러므로 이는 사회 세계의 법칙을 찾아낼 수 있느냐에 대한 경험적 분석의 문제가 됨.
21-22, 79-80
블루어는 과학사회학도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의 법칙을 가진다고 주장함.
과학사회학에서의 경험적 연구는 전형적이고 되풀이되는 사건들을 찾아낼 것임.
선행하는 이론, 암묵적 기대의 위배, 실제적 필요들이 그런 경험적 연구를 촉진시킴.
경험적 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론을 만들어내야 함.
이것은 일반적 원칙을 만들어내거나 사실들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어낼 것임.
이렇게 함으로써 이론은 일반적 원칙의 정식화나 사실을 설명하는 모형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해 주고, 따라서 사실 자체의 인식을 예리하게 할 것임.
(202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