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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아르바이트 가서 고등학생들에게 하는 말



내가 고등학교에 아르바이트 가서 학생들에게 내가 한 육체노동의 결과물을 보여줄 때가 있다. 한 학교에 1회나 2회 정도로 짧게 가면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만 전달하는데, 4회나 5회 이상 가는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결과물을 보여준다.

육체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뿌리째 뽑아 옮긴 나무, 배수로 작업, 성토 작업, 콘크리트 제거 작업, 만들고 있는 꽃길 같은 것들이다. 별 거 아니긴 한데 보여주면 학생들이 놀라는 경우도 있다. “이걸 사람 손으로 했다구요?”라고 하면서. 나는 피라미드도 사람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하면서 몇 가지를 설명해 준다. 하루에 인부 한 명을 쓰면 얼마가 들고 기계를 빌리면 얼마가 드는지, 흙이나 돌의 무게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이 작업에서 흙을 어느 정도의 깊이로 몇 미터 팠으니 파낸 흙이 몇 톤이고, 이 작업에서 깨부순 콘크리트가 몇 톤이고, 그걸로 무엇을 만들고 등등.

나는 학생들에게 결과물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나는 10대 때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모를 수밖에 없다. 몇몇 분야의 영재들은 10대 때 계획한 대로 살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후 맞닥뜨리는 일에 대응하면서 인생의 경로가 바뀌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아직 미장이나 포크레인을 배워야 할 상황은 아닌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필요하다면 학원을 다녀야 할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 내가 한 번 꺾는다. 학생들 중에 자신이 앞으로 국영수가 필요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때에 국영수가 필요한 일이 생길 수가 있다고. 물론, 그런 경우에도 어떻게든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국영수를 익히는 데는 미장이나 포크레인 조작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래서 본인이 공부에 소질이 없고 공부 못하는 게 유전이고 집안 내력이더라도, 어차피 지금 상태에서 성적이 올라도 웬만큼 올라서는 진학가능한 대학이 유의미하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어차피 공부해야 하는 거 좋게 좋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나는 말한다.

참고로, 내가 고등학교에서 아르바이트로 하는 것은 학생들이 대학 가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에 피곤하면 자도 된다고 말해준다. 단, 떠드는 것은 나의 노동 강도를 높이기 때문에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2024.02.26.)


2024/04/22

학부 강의를 하기는 해야 할 텐데



나는 아직 학부 강의를 해본 적이 없다. 교수 임용에 학부 강의 경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어차피 학위 받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어서 논문이 급하지 학부 강의 경력이 급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지도교수님 방침도 졸업이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웬만하면 학부 강의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쪽이다.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학부 수업을 처음 하면 강의 준비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학위논문 작업이 웬만큼 진척되지 않는 경우 학부 강의를 추천하지 않는다. 수업 자료 제작, 과제나 시험 채점 등에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생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학부 강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지도교수님도 이를 말리지는 않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학부 강의가 아니더라도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학부 강의를 고집하지 않았다.

그런데 학부 강의를 하기는 해야 할 상황이 된 것 같다. 졸업이 가까워서는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에 학부 강의 경력이 없어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를 놓친 적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위해서라도 학부 강의를 해야 할 상황이다.

작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하는 고등학생 대상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올해는 그 아르바이트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며칠 전에 서울시교육청의 연락을 받았다. 제출 서류 중 하나를 빼먹은 것 같으니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학부 강의를 한 적이 없어서 제출할 자료가 없다고 답했다. 교육청에서는 작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해당 사업을 할 때는 시범적으로 하는 거라서 대학원 재학증명서나 수료증명서나 졸업장만 있으면 되었는데, 올해는 시 의회 등의 감사 때문에 학부에서 강의했다는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학사는 학부 강의 경력이 없더라도 다음 학기에 강의할 예정이라는 증명서도 유효하니 내년 사업이 열리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선생님들이 학부 수업 처음 할 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강의할 때는 선배들의 수업 자료를 여러 개 받아서 참고하고 고치면서 수업 자료를 만드는데, 어차피 나중에는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시간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문학 쪽에도 표준 교재 같은 것이 있고 그에 맞게 만든 수업 자료도 있다면 학위를 못 받거나 학위는 받았지만 논문 실적이 모자라는 강사들이 수업에 시간을 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경제학 교재 중에는 출판사에서 강의 자료까지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해당 교재가 그 분야의 표준 교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철학 분야 교재는 판매량 자체가 적기 때문에 표준 교재가 생기더라도 출판사에서 수업 자료까지 만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2024.02.22.)


2024/04/18

웹소설 제목



학부 동기와 후배가 요새 웹소설에 빠져 있다고 한다. 둘이 사귄 기간이 10년이 넘는지 안 넘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하여간 둘은 꽤 오래 사귀었고, 최근에는 결혼을 앞두고 같이 살고 있다. 동기가 웹소설에 기반한 웹툰을 후배한테 소개해 주었고, 후배는 웹툰을 보다가 웹소설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600회가 넘는데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재미있고 몰입도가 상당하다고 한다.

웹소설 제목은 논문으로 치면 논문 초록 같은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이미 제목에 다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웹소설로 성공하려면 장인이 작품 제목을 묻더라도 답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제목을 말하자마자 벌써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정도여야 하고, 또 그에 상응하는 내용과 구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부 동기와 후배가 자신들이 설 연휴 때 읽은 웹소설의 제목이 무엇인지 맞춰보라고 했다. 웹소설 중에는 회귀물이 많고, 그래서 “깨어나 보니”로 시작하는 제목이 많다. 깨어나 보니 무엇이었을 때 웹소설 제목을 말하면서 부끄러울까? 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깨어나 보니 대장내시경 중이었다”였다. 이런 제목의 웹소설이 있다면 아마도 범죄추리물이어야 할 것 같은데, 하여간 제목만 생각했는데도 부끄러웠다. 동기와 후배가 읽은 웹소설은 “깨어나 보니 아이돌이 되어 있었다”였나, 하여간 그와 비슷한 제목이었다.

웹소설 제목을 말했을 때의 부끄러움에 대해 내가 잘못 이해했었다. 성공하는 웹소설 작가의 웹소설 제목을 말할 때 부끄럽다는 것은 그런 소설을 쓰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었고, 내가 생각한 제목을 떠올렸을 때 부끄럽다는 것은 그 소설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2024.02.18.)


2024/04/15

연휴 때 도랑에서 진흙을 퍼내며



설 연휴 때는 도랑에 쌓인 흙을 퍼냈다. 재작년 말에는 도랑 아래쪽에 쌓인 모래흙 위주로 퍼냈다면, 이번에는 도랑 위쪽에 쌓인 진흙 위주로 퍼냈다. 도랑 위쪽은 전반적으로 진흙이 죽처럼 되어 있었다. 내가 밭을 손대기 전까지 배수로가 정비되지 않아서 밭의 일부에 빗물에 쓸려 파이거나 무너져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재작년 말에는 도랑 아래쪽 모래흙 퍼내느라 힘들어서 도랑 위쪽 진흙은 제대로 퍼내지 못하고 물꼬만 트는 식으로 처리했는데, 올해는 아예 작정하고 진흙을 다 퍼냈다. 물풀 뿌리 때문에 삽이 진흙에 들어가지 않아서 낫으로 뿌리를 잘라가며 진흙을 퍼내어 옆에 쌓았다. 그렇게 하니 진흙에서 물이 빠지면서 흙이 말랐다. 흙은 말라야 쌓인다. 1년에 한 번씩 이런 식으로 흙을 퍼내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무너진 곳은 나무를 심어도 될 정도로 복구될 것이다.

도랑에서 흙을 퍼내면서 근처에 있던 억새 줄기를 모두 낫으로 베었다. 다른 나무가 안 자라면 억새라도 잘 자라야 흙이 안 무너지는데, 죽은 억새가 계속 쌓이면 새로 억새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여 흙이 무너지게 된다. 이번에 손대는 김에 억새 줄기를 모두 제거했다. 어머니는 도랑 근처 억새 줄기를 모두 잘라낸 것을 시집와서 처음 본다고 하셨다.

내가 일하는 동안 연동이는 내 주변에 와서 놀았다. 원래 같으면 연동이가 내 다리에 붙어 있으려고 했을 텐데, 내가 진흙탕에서 일하고 있으니 연동이는 억새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졸았다. 한참 조용히 있다가 깨어나서는 내가 있는 진흙탕에 들어오려고 도랑 쪽으로 내려오다가 진흙에 앞발 한 번 대보고는 이게 아니다 싶었는지 원래 있던 곳으로 곧바로 올라갔다.

(2024.02.15.)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