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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용인대 유도학과

   

술 마시러 가는 길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바뀔 때까지 몇 초 정도 기다렸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등에 영어로 뭐라고 써 있었다.
  
‘어, 왜 대학교에 용이 살지? 그런데 용은 YONG이 아니고 DRAGON인데. 요즈음은 대학에서 저런 것도 가르치나? 음주 동아리인가?’
  
용인대 유도학과의 과 코트였다. 용이 대학에 사는 것이 아니라 “YONG IN UNIVERSITY”였고 동아리에서 주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과에서 유도(JUDO)를 배우는 것이었다. 2초 정도 헷갈렸다. ‘YONG’과 ‘IN’을 대쉬(-)로 이었다면 순간 헷갈리지 않았을 텐데.
  
낙성대 역 근처에 ‘효심당 한약국’이라는 한약국이 있다. 간판은 작은데 글씨는 커서 ‘효심당한약국’이라고 여섯 글자를 모두 붙여놓았다. 마을버스 타고 지날 때마다 ‘효심당한 약국’이라고 읽고 ‘아, 효심당 한약국이지’ 한다. 4년째 그러고 있다.
  
  
* ‘효심당하다’의 용례
  
- 김 노인: “그거 들었어? 윤씨네 아들이 윤씨한테 겨울에 추우니까 따뜻한 데 있으라면서 한 달 정도 동남아로 여행 보내버렸대.”
- 이 노인: “아이고, 그 노인네 아들한테 효심당해버렸구만.”
  
현대 한국어에 이런 용례는 없다. 고대 한국어나 중세 한국어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2016.12.31.)
    

2017/02/26

문학 작품을 왜 읽어야 하는가?

     

나는 소설을 잘 못 읽는다. 다른 책이라고 딱히 잘 읽는 건 아닌데 소설은 특히나 더 못 읽는다. 억지로 읽어봐야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어쩌자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씩 소설 읽기를 시도하기는 했다. 소설 몇 권 읽는다고 딱히 사람이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학 작품을 아예 안 읽으려니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 같아서 가끔씩 소설 읽기를 시도하기는 했다. 대부분 실패했다.
  
며칠 전에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등장인물이 다 비정상이고 이해하지 못할 행동만 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고기를 안 먹지 않나, 가족들은 억지로 고기를 먹이지 않나, 그런다고 자해를 하지 않나, 형부라는 사람은 예술한답시고 몸에 꽃 그리고 처제하고 이상한 짓이나 하지 않나, 정신병원 들어가서 자기는 식물이라고 밥 안 먹지 않나, 하여간 시작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억지로 끝까지 읽기는 했는데 무슨 재미로 읽는지,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왜 감동받는지, 왜 문학계에서 이 작품에 주목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외국에서 상을 준 것을 보면 이 작품에 뭔가 있긴 있나 본데, 왜 나는 이런 작품을 못 읽거나 읽어봐야 불쾌하기만 할까? 내 수준은 잘해봐야 <심슨가족>이나 『삼국지연의』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인가?
  
궁금해서 문학적인 소양이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았다.
 
“제가 어차피 현대 소설이든 그 이전 소설이든 어차피 못 읽는 건 마찬가지라서 잘 모르는데요, 사람들은 정신 나간 사람이 정신 나간 소리하는 이야기를 읽고 무슨 감동을 받을까요? 먹고사는 것만 해도 힘들고 어려운데 굳이 여가시간에 그런 것을 읽는다는 건 뭔가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일 텐데 도대체 읽어서 무슨 좋은 점이 있을까요?”
  
그 사람은 내 말을 듣고 배를 잡고 웃었다.
 
“현대소설을 정신 나간 사람이 정신 나간 소리 하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부조리한 현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든 현대인을 다룬다고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나는 그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서 똑같은 대상을 서술하면서도 이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도 우아하고 품위 있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감탄했다. 이래서 사람이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하는가보다 싶었다.
  
  
(2016.12.30.)
    

2017/02/25

중년 여성의 정서

     

일본 중년 여성 중에는 한국 연예인이 좋아서 남편한테 연예인 누구 만나고 올 테니까 며칠 동안 찾지 말라는 쪽지를 남겨놓고 무작정 한국에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연예인을 별로 안 좋아해서 일본 중년 여성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아주머니는 왜 그랬을까?
 
중년 여성의 정서를 나에게 설명해준 것은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중년 여성이었다. “연애할 때 아무리 좋아서 죽고 못 살아도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가면 남편이든 부인이든 서로 별 느낌도 없어요. 그래서 40대가 넘어가면 부부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지내요. 남편이 옆에 있어도 외롭고 혼자인 것 같고 연애 같은 게 하고 싶고 그런 거지. 그래서 연예인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 분의 남편은 옆에서 그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다른 40대 여성은 자기 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첫사랑이었던 오빠가 생각나서 그 오빠를 찾아갔다고 한다. 물어 물어 겨우 찾아서 만나고 보니 그 오빠가 너무 볼품없었다고 한다. 기억 속의 오빠는 정말 멋있고 잘 생겼는데 30년이 지나 자기 눈 앞에 있는 오빠가 그렇게 볼품없으니 마음이 안 좋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 오빠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빠, 오빠가 제 첫사랑이었어요.” 그러자 그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네가 첫사랑이 아닌데?”
  
  
(2016.12.29.)
      

2017/02/24

뇌까지 섹시해하는 한국인

   
피터 노왁이 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전 세계 포르노 시장은 970억 달러에 이른다. 늘 이 정도 규모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 중국, 한국, 일본은 포르노 매출이 가장 높은 3대 국가다. 반-포르노 규정이 엄격한 중국은 포르노를 소비하는 데서 나오는 수익보다는 DVD와 섹스토이 같은 상품을 제조하고 얻는 수익이 크기 때문에 수치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약 130억 달러를 포르노 산업에 쓰는 미국이 4위고,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이 각각 20억 달러로 그 뒤를 잇는다.(35쪽)
  
중국, 일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국이 미국보다 포르노 시장이 크다는 건 이해가 안 간다. 미국은 한국보다 인구가 여섯 배 많고 1인당 소득은 두 배 많고 포르노 제작과 유통이 합법인데, 어떻게 한국이 3위고 미국이 4위인가. 통계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한국인이 변태 종족이라서 그런 건가.
  
어쩌면 한국인은 변태 종족일지도 모른다. 세계 기억력 대회에서 여덟 번 우승한 도미니크 오브라이언이 쓴 책 중에는 <How to Develop a Brilliant Memory Week by Week>(2014)라는 책이 있다. 한국에서 이 책은 『뇌가 섹시해지는 책』(2015)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기억력 늘리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한국에서는 뇌가 섹시해지는 책이 된다. 한국인들은 신체 부위에서 섹시함을 느끼다 못해 뇌에서도 섹시함을 느낀다.
  
   
* 참고: 피터 노왁,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 이은진 옮김 (문학동네, 2012).
  
  
(2016.12.27.)
   

2017/02/23

연애에서의 벼랑 끝 전술

     

jtbc <비정상회담>에 반려견과 결혼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애인 때문에 고민이라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고 한다. “개가 우선이냐 자기가 우선이냐”며 애인을 압박하는 것은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다. 개를 키우는 게 결혼을 포기할 만큼 치명적인 문제는 아닐 텐데 그런 일에 벼랑 끝 전술을 쓰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애인이 개를 선택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가? 벼랑 끝 전술은 가진 패가 하나뿐일 때 쓰는 막장 전술이라 아무 때나 쓰면 안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수시로 벼랑 끝 전술을 쓰는 사람은 가진 것이 쥐뿔도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그런 사람과는 빨리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매사에 벼랑 끝 전술을 펴는 사람과 연애했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애인은 사사건건 “◯◯이야 나야?”라고 압박했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도박하는 것도 아니고 마약하는 것도 아닌데 사소한 것을 가지고 매번 그랬다고 들었다.
  
어느 날 그 남자가 애인한테 담배를 끊기로 약속만 해놓고 담배를 못 끊자 그 여자는 평소처럼 “담배야 나야?”라며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고 한다. 사람이 웬만큼 매혹적이지 않고서는 담배보다 중독성이 높기 힘든데, 벼랑 끝 전술을 일삼는 사람이 매력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었겠는가? 결국 남자는 담배 대신 애인을 끊었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그 남자는 아직도 담배를 계속 피우고 있다.
  
  
* 링크: [허핑턴포스트] “반려견과 결혼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애인”에 대한 타일러의 명쾌한 한 마디
  
  
(2016.12.23.)
    

2017/02/22

고대 과학도 과학인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는 <과학사통론1>과 <과학사통론2>를 개설한다. <과학사통론1>은 르네상스 이전의 과학을 다루고 <과학사통론2>는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을 다룬다. 어떤 철학 전공자가 물었다.
  
- 철학 전공자: “그런데요, 고대의 과학이라고 하는 것도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요? 현대 과학하고 너무 달라서 둘을 같은 과학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요?”
  
- 나: “탈레스도 철학자잖아요.”
  
- 철학 전공자: “아.”
  
  
(2016.12.22.)
    

2017/02/21

어떤 패션 잡지를 읽고

     

동료 대학원생이 패션 잡지를 샀다. 잡지를 읽으려고 산 건 아니고 부록으로 주는 다이어리 때문에 샀다고 한다. 군대에 있을 때 그 잡지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서 웬만큼 기대를 하고 잡지를 펴봤는데 읽을 만한 내용도 거의 없고 사진조차 너무 이상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미적 감각이 별로 없는 내가 봐도 사진이 이상해보였다.
  
폐지함에 버리려는 것을 달라고 하여 잠깐 그 잡지를 읽어보았다. 그런 패션 잡지에는 어떤 글이 실리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잡지에는 정말 별 내용도 없었고 글도 엉성했다. <대학 내일>은 공짜니까 보는 것이지, 그런 잡지를 7천 원씩이나 받고 판매한다니 약간 놀랍기도 했다. 잡지사들이 다들 어렵다고 하면서 그것이 마치 사회문제라도 되는 듯이 언론에서 다루기도 하는데, 그런 잡지들이 몇 개 없어지는 것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런 잡지들이 유지되어서 사회에 득이 되는 것이라고는 약간의 고용 창출밖에 없는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잡지에 글 쓴 사람들의 이름 옆에 모두 ‘에디터’라고 써놓았다는 것이다. 기자면 기자고 작가면 작가지 왜 모두 에디터인가. 요즈음은 잡지에 글 쓰는 사람을 모두 에디터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아, 가수라고 하기에는 노래를 못하고 연기자라고 하기에는 연기를 못하니까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기자라고 하기에는 취재를 못하고 작가라고 하기에는 글을 못 쓰니까 에디터라고 부르는 건가요?” 동료 대학원생은 “어, 그런데 그런 이유로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에요”라고 답했다.
  
  
(2016.12.21.)
     

2017/02/20

뮤직비디오를 보고 든 생각

     

<PPAP> 뮤직비디오를 보고 든 생각은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 나라의 문화적 우수성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어떤 외국인이 나한테 “Do you know PIKO TARO? Do you know PPAP?”라고 묻고 <PPAP>를 안다는 내 대답에 그 외국인이 어깨를 으쓱거린다면, 아마도 나는 ‘저 나라는 어지간히 보잘 것이 없나보다’ 하고 생각할 것이다. 외국인을 만나는 그 나라 사람들이 죄다 그런다면 나는 ‘저 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한테 인정받고 싶어 죽겠나보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가 보다’ 하고 생각할 것이다.
   
<PPAP> 뮤직비디오를 보니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떠올랐고, <강남스타일>을 두고 유난을 떨던 한국인과 한국 언론이 생각나서 부끄러웠다. 나와 같은 한국인인 싸이가 외국에 나가서 돈 많이 버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가지고 한국 문화의 우수성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유치하고 수준 낮은 짓거리인가. 심지어 어떤 동양철학 교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강연에서 <강남스타일>의 장단이 굿거리장단이고 드디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이 세계에 통하게 되었다고까지 말했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도 집필했던 사람이 그러고 다니고 있는 판이다.
  
  
(2016.12.20.)
    

2017/02/17

지도교수의 매력

     

협동과정에서 송년회를 했다. 아직 입학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학기 신입생이라 송년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지도교수님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이 물어봐서 나는 의사소통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지도교수님은 제자들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는다. 보통 “이 것은 이런 측면도 있고 저런 측면도 있지만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당사자의 의사가 중요하지 않겠나 싶네만은...”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의 면담 결과를 해석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별 문제 없이 의사소통한다. 선생님께 나는 “이 일은 이런 측면도 있고 저런 측면도 있어서 A안과 B안과 C안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A안이 최선일 수도 있겠지만 B안과 C안도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네”라고 하신다. 그러면 그 다음 면담 때 선생님은 “지난 번에 B안으로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맞는 건가?”라고 하시고 나는 “네, B안으로 처리했습니다”라고 한다.
  
의사소통 이야기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괜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사람들 앞에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사람들한테 내 지도교수님이 매력이 있지 않으냐, 고양이 같은 매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는 깨끗한 곳에서 조용히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잡으려고 하면 어디론가 사라져서 잡을 수 없지만 언제 왔는지 옆에 와서 스치듯 비비고 지나간다. 어디 있나 보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혼자서 어딘가를 바라보는데 앉아 있던 곳을 다시 보면 또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아무 소리도 안 내고 한참 가만히 앉아있는데, 어쩌다 울면 크게 울지도 않고 들릴 듯 말 듯 하게 가만히 소리를 낸다, 가만히 고양이를 보면 신비롭지 않느냐.” 그러면서 화천이와 새끼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 말에 사람들이 의외로 격렬하게 반응했다. 어떤 과학사 선생님은 “세상에, 짚신도 짝이 있다더니!”라며 놀라워하셨다. 그 동안 내 지도교수님의 제자들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나 같은 이야기를 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것이었다. 과학기술학 전공자 중 한 분은 지도교수를 이렇게 시적으로 묘사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제가 인문대 출신이어서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2016.12.17.)
    

2017/02/16

미래 인문학

     

나는 과학도 모르고 철학도 모르면서 과학철학을 전공하겠다고 대학원을 왔다. 과학철학 하겠다고 대학원 오는 사람은 대체로 철학을 잘 몰라도 과학을 잘 알든가, 과학을 잘 몰라도 철학을 잘 알든가, 둘 다 잘 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대학원에 오는 미친놈은 나 말고는 못 봤다. 나는 왜 그랬나?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대학원 와서 불벼락을 맞고 회심하여 지금은 새 삶을 살고 있지만(이를 두고 “아카데미즘의 승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대학교 때만 해도 나는 진중권처럼 이상한 놈들이나 대충 욕하면서 편하게 먹고 살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개나 소가 욕을 해서는 아무도 들을 체를 안 해준다. 똑같은 말이라도 권위가 실리면 사람들은 멋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권위는 학위에서 온다. 그렇게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항상 그렇듯이 재앙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대학원에 지원하려면 자기소개서를 써내야 했는데 자기소개서 항목 중에 대학원에서 무엇을 전공할지 밝히라는 부분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다 가르쳐주는 게 아니었다니, 나는 학부 때 배운 것도 없고 공부한 것도 없는데 대학원 들어갈 때 전공을 정해야 한다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학부 동기한테 물어보았다. 내 상황이 하도 막장이라 답이 안 나왔다.
  
답이 안 나오자 나는 여느 때처럼 동기한테 실없는 소리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날도 미친놈들 흉내를 냈다. 그 날 한 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철학’을 붙이는 놀이였다. 개도 철학, 소도 철학, 다 철학, 그러면서 놀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내가 ‘경제 철학’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듣자 듣자 하니 못 들어주겠네. 미친놈아, 경제 철학이 어디 있어?” 사실, 나도 별다른 생각 없이 막 지껄인 것이었다. 그런데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경제 철학이라는 것이 정말 있었고 과학철학의 한 분과라고 했다. 그 때 나는 결심했다. “그래, 경제 철학이다.” 동기가 옆에서 말렸다. “미친놈아 적당히 좀 해. 네가 교수면 경제 철학 한다고 하는 놈을 받아주겠냐? 딱 봐도 정신 나간 소리인 것 같은데?”, “그래? 그러면 그냥 과학철학 한다고 하지 뭐.” 그렇게 나는 과학철학 전공자가 되었다. 그리고 석사 논문을 경제학에서의 과학적 실재론에 관련해서 썼다. 사례로 국제경제학의 중력 모형도 나온다.
  
얼마 전에 내가 다녔던 학부에서 ‘미래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이 다룬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래 인문학? 그러면 역사학은 과거 인문학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홍보자료를 보니 아무 사물에나 ‘철학’을 붙이면서 미친놈들 흉내 내던 학부 때가 기억나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저 사람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사는구나 싶었다.
 
 
 
 
 
  
  
(2016.12.16.)
     

2017/02/15

재승박덕

   
동료 대학원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재승박덕”이라는 단어를 썼다. 동료 대학원생이 물었다. 
  
- 대학원생: “그런데 재승박덕이 무슨 말이죠?”
- 나: “재주가 뛰어나지만 덕이 없다는 말입니다.”
- 대학원생: “덕이 무슨 뜻이죠? 탁월함 같은 건가요?”
  
한문을 잘 모르더라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덕’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강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료 대학원생은 중세철학 전공자다. 고대철학이나 중세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부터 덕을 德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arete의 번역어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 나: “여기서 덕은 arete가 아니고 동아시아적 맥락의 덕이죠.”
- 대학원생: “아, 도덕적 탁월성이네요!”
  
고대철학 선생님이나 중세철학 선생님들 중에는 한국어를 사용하기는 하는데 어순만 한국어인 분들이 있다고 한다. 그 선생님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한국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번역어라는 것이다. 일종의 파일 덮어쓰기와 비슷하다.
   
이러한 덮어쓰기 때문에 수업 중에 학부생들이 혼란에 빠지는 일도 있다. 선생님들은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려고 덕, 지혜, 사랑, 용기 같은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뜻으로 사용되는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런데도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그 일상생활이 21세기 한국인의 일상생활이 아니라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의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2016.12.15.)
   

2017/02/14

화천이도 어미가 되니

     

화천이한테 밥을 주면 화천이 새끼들이 빼앗아 먹는다. 고양이 마릿수만큼 밥그릇을 놓았고 똑같은 사료를 똑같은 양으로 주는데도 화천이 새끼들은 화천이 밥을 빼앗아 먹는다.
  
눈 노란 놈과 눈 파란 놈은 자기 밥그릇에서 자기 밥을 몇 입 먹다가 다 먹지도 않고 화천이 밥그릇에 머리를 들이민다. 화천이는 눈 노란 놈과 눈 파란 놈이 자기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을 멀건이 보기만 한다. 어차피 밥그릇은 세 개니까, 화천이 새끼들이 화천이 밥을 먹는 동안 화천이가 새끼들 밥을 먹으면 되는데, 화천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밥을 먹는 새끼들을 보기만 한다. 화천이 새끼들은 화천이 밥을 다 먹고 나서 자기 밥그릇에 있는 사료를 마저 먹는다. 새끼들이 하도 화천이 밥을 빼앗아 먹으니까, 어머니는 고양이 밥을 줄 때 화천이 옆에 붙어서 화천이 새끼들이 화천이 밥을 못 먹게 지킨다.
  
화천이는 어려서 어른 고양이들이 있거나 말거나 제 마음대로였다. 그런데 이제는 화천이가 새끼들 눈치를 본다. 크게 울지도 않는다. 현관문을 열면 화천이의 두 새끼들이 “아-아앙 우아-앙” 하고 시끄럽게 울면 화천이는 구석에서 “에-에옹” 하고 조용히 운다. 화천이도 어미가 되어서 그런 것인가.
  
지난 주말에도 화천이는 새끼들이 자기 밥을 빼앗아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한참 가만히 있다가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검은 털에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두더지 한 마리를 잡아왔다.
   
  
(2016.12.14.)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