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에 현관문 앞에 뱀이 나타났다. 마침 집에 놀러 온 동네 할머니는 놀라서 도망갔고 어머니는 기절할 뻔 했다고 한다.
뱀은 평소 화천이가 앉는 자리에 있었다. 집에서 고양이들은 서열에 따라 앉는 자리가 다른데 현관문 앞에 자그마하게 장판을 깔아놓은 자리에는 화천이만 앉는다. 뱀이 그 자리에 있었다.
뱀이 현관문까지 오려면 대문을 지나고 잔디밭을 지나고 시멘트로 된 턱을 지나 나무로 만든 긴 발판을 지나야 한다. 굳이 뱀이 그렇게까지 해서 현관문 앞에 올 수 이유가 없다. 마침 뱀이 현관문 앞에 나타난 것은 화천이 새끼를 모두 분양한 직후였다. 그리고 화천이가 집에 오기 전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현관문 앞에 뱀이 있을 때 화천이의 태도도 수상했다. 화천이는 자기 자리에 다른 고양이가 있으면 앞발로 툭툭 쳐서 쫓아내는데, 뱀이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멀찍이 떨어져 앉아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는 못 본 척하고 있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어서 일단은 넘어갔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 현관 앞에 또 뱀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죽은 뱀이었다. 할머니는 “고양이는 영물이라는데 화천이가 자기 새끼 보냈다고 우리한테 저러나보다”라고 하셨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화천이는 또 새끼를 낳았다. 현관문 앞에 또 뱀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내가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 화천이가 뱀을 물고 있었다. 화천이가 뱀을 내려놓자 화천이를 닮은 하얀 새끼들이 뱀 주변에 오글오글 몰려들었다. 새끼들은 앞발로 뱀을 톡톡 치고 깡총깡총 뛰며 뱀 주위를 빙빙 돌았다.
집에서 난리가 났다. 나는 뱀을 집 밖에 버리려고 집게로 뱀을 집었다. 뱀은 아직 덜 죽어서 꿈틀거렸다. 뱀을 집게로 들어올리자 화천이는 그르릉 소리를 내며 뱀 꼬리를 물었다. 화천이를 혼내도 뱀 꼬리를 물고는 놓지 않았다. 화천이는 뱀 꼬리를 야무지게 씹었고 으득 드득 드드득 하는, 연골이 끊어지는 소리가 온 마당에 퍼졌다. 화천이에게 꼬리를 뜯긴 뱀은 피를 흘리며 점점 느리게 움직였다. 화천이는 맛있다는 듯이 앙앙- 하는 소리를 내며 뱀 꼬리를 질겅질겅 씹었다.
어머니는 뱀이라면 질색한다. “화천아, 이리 와!” 어머니가 부르자 화천이는 멋모르고 “앙-” 하면서 어머니께 다가갔다. 어머니는 신고 있던 슬리퍼 한 쪽을 벗어 손에 쥐고 화천이 머리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야 이놈의 화천아, (퍽) 늬가 미쳐갖고 (퍽) 어디서 뱀을 잡아와? (퍽) 뱀을! (퍽) 어? (퍽) 뱀 잡아 올 거야 안 잡아 올 거야? (퍽) 어? (퍽) 야 이놈의 화천아 (퍽) 어? (퍽) 내가 너 때문에 살 수가 없다. (퍽) 이게 뭐야? (퍽) 어? (퍽) 미쳤어? (퍽) 어? (퍽)”
그런데 화천이는 어머니가 그렇게 슬리퍼로 머리를 두들길 때 도망가기는커녕 머리를 들이밀며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있었다. 마치 때릴 테면 때려보라는 듯이. 나는 사춘기 때도 그러지 않았다.
다른 고양이는 어머니가 목소리만 높여도 도망가는데, 화천이는 그렇게 한참 맞고도 가만히 있었다. 다 맞고는 천천히 몇 걸음 걸어가더니 현관문 앞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아양을 떨던 화천이는 어머니를 못 본체 했다. 사료 달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던 화천이는 하루 종일 울지 않았다. 어머니가 사료를 줘도 어머니 앞에서는 고개를 돌린 채 사료를 먹지 않았다. 평소 화천이는 집 밖에 자주 돌아다녔는데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현관문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등을 돌리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3일이 지나도 화천이가 삐져있자 어머니가 먼저 화해를 시도했다. 어머니는 다정한 목소리로 화천이를 부르며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화천이가 고개를 돌리며 뿌리쳤다. 어머니는 다시 화천이를 끌어안았고 화천이는 마지못한 듯 안겼다. 그러고 나서 화천이는 마음이 풀어진 듯 다시 어머니께 아양도 떨고 사료 달라고 울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며칠 후, 현관문 앞에 또 뱀이 나타났다. 화천이가 삐질까봐 어머니는 화천이를 혼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올해 여름과 가을 사이에 내가 치운 뱀만 해도 일곱 마리 정도 된다. 구렁이 종류 빼고 웬만한 뱀은 종류별로 다 본 것 같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내가 없을 때에도 뱀을 잡았다고 하니 열 마리는 넘게 잡은 모양이다.
원래 우리집에서는 고양이한테 하루에 두 번만 사료를 주었다. 화천이가 우리집에 오고 나서는 규칙이 바뀌었다. 화천이가 사람을 본 척 만 척 하면 사료를 안 주고, 사료 달라고 울면 사료를 준다. 다른 고양이는 화천이가 사료 먹을 때 따라 먹는다. 화천이는 사료를 먹고 싶을 때마다 사료를 먹으니까 배를 채우기 위해 굳이 사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화천이는 집 밖에서 동물을 하나씩 잡아오기 시작했다. 화천이가 쥐를 잡아오자 어머니는 화천이가 기특하다면서 칭찬했다. 어느 날은 참새를 잡아왔다. 박새도 잡아왔다. 봄에는 두더지를 잡았다. 비둘기도 잡았다. 메뚜기 같은 건 간식으로 잡아먹었다. 올해는 심지어 꿩(까투리)도 잡았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뱀을 잡아 와서 사람을 놀라게 한 것이 문제였다.
이제는 화천이가 더 이상 뱀을 잡지 않는다. 겨울이라 뱀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화천이가 내년에 또 뱀을 잡아오면 쫓아낼 거라고 하지만, 화천이가 또 뱀을 잡아오더라도 어머니는 화천이를 쫓아내지 못할 것 같다.
(201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