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30

[기타] 니콜라스 카, 5장 “가장 보편적인 특징을 지닌 매체” 요약 정리

[ Nicholas G. Carr (2010), The Shallows: How the Internet Is Changing the Way We Think, Read and Remember (W. W. Norton & Company).

니콜라스 카, 「5장. 가장 보편적인 특징을 지닌 매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2015) ]

-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터넷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미국인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남.

- 인터넷 사용이 늘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데 소요되던 시간이 줄었을 것이라 추측했지만 조사결과는 정반대.

- 미디어 활동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인터넷 사용이 증가하면서 텔레비전 시청시간이 예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 책과 신문은 소리나 동영상을 다룰 수 없었고, 영화와 텔레비전은 문자를 보여주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며, 라디오, 전화, 축음기, 테이프 플레이어는 소리를 송출할 수 있을 뿐. 그런데 정보가 디지털화되자 미디어 간의 경계가 사라짐.

- 새로운 미디어는 낡은 것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며, 새로운 미디어는 낡은 미디어들이 새로운 형태나 위치를 찾을 때까지 압박함.

- 콘텐츠 형태의 모든 변화는 우리가 해당 콘텐츠를 사용하고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바꿈. 종이에서 스크린으로의 변화는 문서를 살펴보는 방식만 바꾼 게 아님. 책장을 넘기는 것과 웹문서를 클릭하는 것은 서로 다른 신체적인 동작과 감각적 자극을 수반함.

- 하이퍼링크는 인용, 암시, 주석 등의 변주지만, 우리가 링크를 이용할 때 받는 영향은 이와 달리 일련의 문서 사이에서 들어갔다 나가기를 반복하게 함.

- 검색은 온라인 저작물의 분절화를 초래함. 검색 엔진은 우리가 찾는 내용과 연관이 있는 자료의 일부분을 보여주지만 이 저작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근거는 거의 제공하지 않음. 다른 종류의 정보를 한 스크린에 모으면서 인터넷은 콘텐츠를 더욱 분절시키고 우리의 집중을 방해함.

- 사람들의 사고가 웹 콘텐츠 조각들에 맞춰지고 집중력이 짧아지면서, 많은 제작자들은 이에 맞추어 생산물을 쪼개어 유통시킴. 이를 경제학자들이 콘텐츠의 가격분리(unbundl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이 방식은 미디어 소비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를 강화함.

- 인터넷의 영향은 전통적인 물리적 생산물도 온라인 미디어와 유사하도록 만듦. 잡지는 기사의 길이를 줄이고, 따로 내용을 요약하는 글상자를 도입하고, 보기 쉬운 안내문과 사진 설명으로 페이지를 채움. 신문도 마찬가지.

- 인쇄업계처럼 텔레비전쇼와 영화도 인터넷과 닮아 보이게 함. 방송국은 프로그램 화면에 자막과 정보를 담은 그래픽과 팝업 광고를 삽입함. NBC의 <지미 펠론 쇼>는 유튜브를 통해 유통될 수 있는 짧은 코너들로 분할을 강조함.

- 도서관도 달라짐. 뉴욕 공공 도서관은 도서관 내 주요 공간 네 개에서 서고를 구석에 배치하고 중앙의 거대한 공간 대부분을 컴퓨터에 할애함.

(2017.12.03.)

2017/11/29

[참고 문헌] 철학 - 데이비슨 (한국어 번역서)

     

도널드 데이비슨, 『진리와 해석에 관한 탐구』, 이윤일 옮김 (나남, 2011).
Inquiries into Truth and Interpretation

  
  
(2017.12.02.)
     

2017/11/27

[유니코드] 그리스 문자



Α / α 알파(alpha/άλφα) 

Β / β 베타(beta/βήτα) 

Γ / γ 감마(gamma/γάμμα) 

Δ / δ 델타(delta/δέλτα) 

Ε / ε 엡실론(epsilon/εψῑλόν) 

Ζ / ζ 제타(zeta/ζήτα) 

Η / η 에타(eta/ήτα) 

Θ / θ 쎄타(theta/θήτα) 

Ι / ι 요타(iota/ίωτα) 

Κ / κ 카파(kappa/κάππα) 

Λ / λ 람다(lambda/λάμδα) 

Μ / μ 뮤(mu/μύ) 

Ν / ν 뉴(nu/νύ) 

Ξ / ξ 크사이(xi/ξί) 

Ο / ο 오미크론(omicron/ομικρόν) 

Π / π 파이(pi/πί) 

Ρ / ρ 로우(rho/ῥώ) 

Σ / σ ς 시그마(sigma/σίγμα) 

Τ / τ 타우(tau/ταύ) 

Υ / υ 입실론(upsilon/υψῑλόν) 

Φ / φ 파이(phi/φί)

Χ / χ 카이(chi/χί) 

Ψ / ψ 프사이(psi/ψί) 

Ω / ω 오메가(omega/ωμέγα)


𝚨 𝚩 𝚪 𝚫 𝚬 𝚭 𝚮 𝚯 𝚰 𝚱 𝚲 𝚳 𝚴 𝚵 𝚶 𝚷 𝚸 𝚺 𝚻 𝚼 𝚽 𝚾 𝚿 𝛀

𝛂 𝛃 𝛄 𝛅 𝛆 𝛇 𝛈 𝛉 𝛊 𝛋 𝛌 𝛍 𝛎 𝛏 𝛐 𝛑 𝛒 𝛓 𝛔 𝛕 𝛖 𝛗 𝛘 𝛙 𝛚

𝜜 𝜝 𝜞 𝜟 𝜠 𝜡 𝜢 𝜣 𝜤 𝜥 𝜦 𝜧 𝜨 𝜩 𝜪 𝜫 𝜬 𝜮 𝜯 𝜰 𝜱 𝜲 𝜳 𝜴

𝜶 𝜷 𝜸 𝜹 𝜺 𝜻 𝜼 𝜽 𝜾 𝜿 𝝀 𝝁 𝝂 𝝃 𝝄 𝝅 𝝆 𝝇 𝝈 𝝉 𝝊 𝝋 𝝌 𝝍 𝝎

𝝖 𝝗 𝝘 𝝙 𝝚 𝝛 𝝜 𝝝 𝝞 𝝟 𝝠 𝝡 𝝢 𝝣 𝝤 𝝥 𝝦 𝝨 𝝩 𝝪 𝝫 𝝬 𝝭 𝝮

𝝰 𝝱 𝝲 𝝳 𝝴 𝝵 𝝶 𝝷 𝝸 𝝹 𝝺 𝝻 𝝼 𝝽 𝝾 𝝿 𝞀 𝞁 𝞂 𝞃 𝞄 𝞅 𝞆 𝞇 𝞈

𝞐 𝞑 𝞒 𝞓 𝞔 𝞕 𝞖 𝞗 𝞘 𝞙 𝞚 𝞛 𝞜 𝞝 𝞞 𝞟 𝞠 𝞢 𝞣 𝞤 𝞥 𝞦 𝞧 𝞨

𝞪 𝞫 𝞬 𝞭 𝞮 𝞯 𝞰 𝞱 𝞲 𝞳 𝞴 𝞵 𝞶 𝞷 𝞸 𝞹 𝞺 𝞻 𝞼 𝞽 𝞾 𝞿 𝟀 𝟁 𝟂

Α Β Γ Δ Ε Ζ Η Θ Ι Κ Λ Μ Ν Ξ Ο Π Ρ Σ Τ Υ Φ Χ Ψ Ω

α β γ δ ε ζ η θ ι κ λ μ ν ξ ο π ρ σ ς τ υ φ χ ψ ω 

𝛢 𝛣 𝛤 𝛥 𝛦 𝛨 𝛩 𝛪 𝛫 𝛬 𝛭 𝛮 𝛯 𝛰 𝛱 𝛲 𝛴 𝛵 𝛶 𝛷 𝛸 𝛹 𝛺

𝛼 𝛽 𝛾 𝛿 𝜀 𝜁 𝜂 𝜃 𝜄 𝜅 𝜆 𝜇 𝜈 𝜉 𝜊 𝜋 𝜌 𝜍 𝜎 𝜏 𝜐 𝜑 𝜒 𝜓 𝜔



(2018.10.18.)


2017/11/26

[심리철학] Lewis (1983), “Mad Pain and Martian Pain” 요약 정리 (미완성)

   
[ David Lewis (1983), Philosophical Papers, vol. I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pp. 122-130.
David Lewis (1980), “Mad Pain and Martian Pain”, in Ned Block (ed.), Readings in the Philosophy of Psychology, Volume I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pp. 216-22. ]
  
  
  I
  
122
-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의 원인과 결과가 우리와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음.
• 고통을 느끼지만 그 고통은 고통의 전형적인 인과적 역할(causal role)을 하지 않음.
• 예) 정상적인 위 운동에 고통을 느낀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다리를 꼬든지 손가락을 튕겨서 소리를 낸다.
- 루이스의 의견: 미친 사람(madman)이 우리의 고통과 같은 의미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친 사람과 일반인 모두가 느끼는 단순한 의미(straightforward sense)의 고통이 있음.

123
- 우리처럼 고통을 느끼지만 그 고통의 물리적 실현(physical realization)이 우리와 다른 화성인(Martian)을 생각할 수 있음.
• 고통을 느끼지만 그에게 일어나는 신체 상태나 그것과 동반하는 것은 우리와 다르다.
• 예) 화성인의 고통은 지구인이 느끼는 고통과 같지만, 그의 신체가 물로 되어있고 꼬집어도 C-섬유가 타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발의 작은 공간에 물이 찬다.
- 루이스의 의견: 화성인이 지구인의 고통과 같은 의미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화성인과 지구인 모두가 느끼는 단순한 의미의 고통이 있음.
 
 
  II
  
123
- 마음에 관한 믿을만한 이론은 미친 고통(mad pain)과 화성인의 고통(Martian pain)을 설명해야 함.
우선, 물리주의 이론은 이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철학자처럼 고통을 선험적으로 특징짓고자 하고, 물리주의자처럼 고통을 물리적 현상으로 특징짓고자 한다. 하지만 미친 고통은 고통이 그것의 인과적 역할(causal role)과 우연적으로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화성인의 고통은 고통이 오직 그것의 물리적 실현과 우연적으로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123
- 단순한 동일론은 미친 고통 문제는 해결하지만 화성인의 고통 문제는 해결하지 못함.
- 단순한 행동주의나 물리주의는 화성인의 고통은 해결하지만 미친 고통은 해결하지 못함.
- 이중 시험(twofold test)을 통과할 이론은 이 두 이론을 섞어야 할 것으로 보임.
미친 사람과 화성인이 모두 고통을 겪지만 그 이유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함.
미친 사람은 적절한 물리적 상태에 있고, 화성인은 인과적 네트워크(causal network)가 올바른 상태이기 때문.

123-124
- 두 이론을 섞는 방법
(1) 일반인과 미친 사람에 관하여 연구하는 이론을 찾는다. - 동일론
(2) 지구인과 화성인에 관하여 연구하는 이론을 찾는다. - 행동주의나 기능주의
(3) 이 두 이론을 분리한다. 고통을 느낀다(be in pain)는 말의 어떤 의미에서 동일론을 따르고 다른 의미에서 행동주의나 기능주의를 따른다는 용어의 다의성(ambiguity)을 말한다.


  III
 
124
- 암스트롱과 루이스는 마음에 관한 물리주의 이론을 (서로 독자적으로) 제시함.
이 이론은 행동주의자나 기능주의자가 고통 같은 정신 상태들(mental states)을 특징짓는 방법과 정신 물리학적 유형 동일론(type-type psychophysical identity)을 엮어서 주장한다. 루이스는 이 이론이 이중 시험을 통과한다고 믿는다.

124-125
- 우리는 고통 개념을, 특정한 인과적 역할을 하는 상태에 대한 개념이라고 본다. 상태 개념은 특정한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것과 특정한 행동을 일으키는 것에 적합하다. 상태들의 체계의 구성요소에 대한 개념은, 상식적인 심리학에서 말하듯 인과적 일반화들(causal generalizations)의 유형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125
- 고통 개념이 특정한 인과적 역할을 점유하는 상태에 대한 개념이라면, 그러한 역할을 점유하는 상태는 무엇이든 고통임.
뉴런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특정한 방식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어떤 것의 원인이 되고 다른 것의 결과가 된다면, 그 신경 상태는 고통이다. 하지만 고통 개념은 신경 상태(neural state)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그 개념은 내포 함수(intensional functor)다.)
- 신경상태의 개념과 달리, 고통 개념은 다른 상태에 적용할 수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것(occupant of the role)은 그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른 상태가 대신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고통이 아닌 것은 고통일 수도 있었고, 고통은 고통이 아닌 것일 수도 있었다.
- “The winner might have lost.”는 참이고 “It might have been that the winner lost.”는 거짓이다. 애매함이 전혀 없는 말은 없겠지만, 루이스는 자신이 한 말의 의미가 명확하다고 믿는다.(“고통이 아닌 것은 고통일 수도 있었다”는 말은 전자라는 뜻)

125
- 간단히 말하면, 암스트롱과 루이스가 이해한 고통 개념은 ‘비-고정적(nonrigid)’ 개념.
마찬가지로 “고통”이란 단어는 비-고정 지시어(designator).
고통이라는 개념과 단어를 어떤 상태에 적용하느냐는 것은 우연적인 문제이고, 이는 무엇이 무엇을 일으키느냐에 의존.
우리의 나머지 개념들과 정신 상태에 대한 평범한 이름들에도 이는 동일하게 해당됨.

125-126
- 고통이 특정한 신경상태와 동일하다면, 그 동일성은 우연적이다. 이것은 한 가능세계에서 다른 가능세계와 다른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우리가 고통과 어떠한 신경상태라는 두 상태를 가진다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상태가 아닌 한 상태를 가진다. 고통을 느끼는 신경 상태가 그 자체로 동일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느 세계에서도 이것은 그 자체로 다르지 않다.
- 고통이라는 개념과 이름은 이 세계에서 어떠한 신경상태에 우연적으로 적용되지만 다른 세계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브루스(Bruce)가 우리 고양이인 것은 우연적으로 참이지만, 브루스와 우리 고양이가 우연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리 고양이 브루스는 필연적으로 자기 동일적이다.


  IV
  
126
- 모든 현실성(actualities)은 가능성(possibilities)임.
그래서 다양한 가능성은 다양한 현실성을 포함한다. 어떤 가능성은 완전히 실현불가능 하지만, 다른 가능성은 화성 같은 다른 행성에서 발견될 수 있다.
- 고통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현실세계에서 어떤 상태를 지시(designate)하고 가능세계에서 상대역(counterpart)이 우리와는 다른 내적 구조를 가진 다른 상태를 지시한다면, 이는 또한 지구인의 어떤 상태와 화성인의 다른 상태를 지시한다고 할 수 있다.

126
- 우리는 어떤 상태가 한 개체군(population)에서 원인적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음.
그 개체군은 완전히 우리의 현실세계에 있을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현실세계에 있으면서 부분적으로 가능세계에 있을 수 있고, 완전히 가능세계에 있을 수도 있다. 고통 개념이 원인적 역할을 하는 상태에 대한 개념이라면, 우리는 그 상태를 그 개체군이 느끼는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구인의 고통과 화성인의 고통이 실현되는 물리적인 조건은 다를 수 있지만, 인간의 고통은 인간에게서 고통 역할을 하는 상태이고, 화성인의 고통은 화성인에게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상태이다.

126
- 어떤 상태가 한 개체군에서 원인적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개체군에 적용될 수 있을 때, 오직 그런 경우에만, 언제든 그 개체군의 구성원은 그 상태에 있다. 그 상태에 있는 것은 그 역할이 부여한 어떠한 종류의 원인과 결과를 가지는 것이다.
- 화성인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화성인이 고통의 원인적 역할을 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고,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고통의 그 역할을 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V
  
126-127
- 미친 사람은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이 원인적 역할을 하는 상태에 있지 않다. 뉴런이 타는 유형의 원인적 역할은 우리의 회로도(circuit diagram)에 의존하는데, 그는 그것이 잘못 연결되어 있다.
- 미친 사람과 그의 동료를 포함하는 개체군에서 고통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고 예외적이기는 더 큰 개체군의 구성원이다.
- 인류에서 소수인 미친 사람에 대하여 고통이 조금도 그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그 상태는 인류에 대하여 역할을 한다.
- 미친 사람은 고통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개체군에서 원인적 역할을 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미친 사람은 그 개체군의 예외적인 구성원이고, 그 개체군에서 원인적인 역할을 하는 상태는 그에게서 원인적 역할을 하지 않는다.


  VI
  
127
-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음.
X는 보편적으로(simpliciter) 고통을 느낀다 iff X가 적절한(appropriate) 개체군에서 고통의 인과적 역할을 하는 상태에 있다.
- 그런데 적절한 개체군은 무엇인가?
(1) 우리일 것이다. 고통 개념은 우리의 개념과 단어이기 때문이다.  
(2) X 그 자신이 속하는 개체군일 것이다.
(3) 그것은 X가 예외적이지 않은 것일 것이다.
(4) 적절한 개체군은 아마도 자연적인 종류인 종(species)일 것이다.

127-128
- X가 인간이고 예외적이지 않다면, 네 가지 기준이 모두 작동할 것.
이때 우리가 염두에 두는 사람은 네 가지 기준의 갈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 X가 화성인이라면, 기준 (1)보다 나머지 세 개가 더 중요하다. 이때 적절한 개체군이 X가 속하는 화성인의 종이기 때문이다.
- X가 미친 사람이라면, 기준 (3)보다 나머지 세 개보다 더 중요하다. 이때 적절한 개체군이 인류에서 취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미친 화성인(mad Martian)도 생각할 수 있다. 이때 기준 (2)와 (4)는 그 자체로 (1)이나 (3)보다 중요하다.

128
- 다른 경우는 덜 명확하다.
예) 우리에게 고통의 역할을 하는 상태가 인류의 특정한 하위 개체군에는 목마름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 우리 중 한 사람이 그 상태에 있을 때(우리에게는 고통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목마름인 상태), 그가 고통을 느끼는지 목마름을 느끼는지 해결할 수 없는 미결정에 있다.
기준 (1)에 따르면, 그는 고통 상태이고 그가 예외라고 볼 수 있다. 
기준 (2)와 (3)에 따르면, 그의 상태는 목마름 상태다.
기준 (4)에 따르면, 인류와 예외적인 하위 개체군은 같은 자연종이기 때문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128
- 고통과 목마름의 분기점은 역전 스펙트럼(또는 역전 감각질(inverted spectra))의 전통적인 문제와 평행한다. 루이스는 그 사람이 고통을 느끼는지 목마름을 느끼는지에 관하여 확정적인 사실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역전된 스펙트럼의 문제에 설득력 있는 해결책이 없는 것과 일치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색이 반대로 보이는 사람이 잔디를 빨갛게 보는 것을 분별(good sense)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사람은 일반인이 빨간색을 보는 것의 역할을 하는 상태에 있고, 그가 녹색을 보는 것의 역할을 하는 상태에 있다. 그리고 그는 작은 하위 개체군의 예외적이지 않은 구성원이라서 자연종으로 간주된다.

128-129
- 요약하자면, 암스트롱과 루이스가 제시한 틀(schema)은 고통과 다른 상태를 선험적인 것으로 특징지을 것이다. 원인적 사실들(causal facts)이 옳다면, 우리는 고통을 물리적인 현상으로 특징지을 것이다. 한 개체군의 예외적인 구성원을 허용함으로써, 고통은 그것의 원인적 역할과 오직 우연적으로만 관련된다. 그러므로 미친 고통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한 개체군에서 다른 개체군으로 변형(variation)을 허용함으로써, 고통은 그것의 물리적 실현이 우연적으로만 관련한다. 그러므로 화성인의 고통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게 된다.


  VII
  
129
- 일반적인 고통, 미친 고통, 화성인의 고통, 미친 화성인의 고통까지 다루었으나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이들의 고통은 무엇인가? 그는 미친 사람이거나, 화성인이거나, 미친 화성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고통 상태가 적절한 원인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면 무엇이 남는가?
- 루이스는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유일하게 의지할 것(recourse)은 그 경우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뿐이다.


  VIII
  
129-130
- 미친 사람, 화성인, 미친 화성인, 고통과 목마름이 바뀐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 상태의 현상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고통 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것의 원인적 역할이나 물리적 본성이 무엇이든 그것은 고통이다.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다.
- 고통은 느낌이다. 고통을 가지는 것과 고통을 느끼는 것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며, 이처럼 고통인 상태와 고통을 느끼는 것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우리가 고려하는 이상한 경우에 그 상태를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문제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루이스는 아무 것도 논의하지 않았다! 어떠한 상태와 관계없는 원인적 역할이나 물리적 실현을 고려하는 독립적인 기반을 믿는다면, 그것은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느끼는가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2015.11.18.)
    

[교양] Wilson (1998), Consilience 요약 정리 (미완성)

[ Edward Osborne Wilson (1998),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Alfred A. Knopf). 에드워드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