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4

철학이 쉬워야 한다는 요구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일반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철학이 쉬워야 하고 대중이 접할 수 있도록 대중의 언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대중에게서 고립되어 나타난 당연한 귀결이고 그래서 대중의 언어로 인문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인문학의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인문학자의 위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논의 대상을 바꾸면 이게 얼마나 틀려먹은 소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론물리학은 쉬워야 하고 대중이 접할 수 있도록 대중의 언어로 해야 한다. 이공계의 위기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대중에게서 고립되어 나타난 당연한 귀결이고 그래서 대중의 언어로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해야 한다. 이공계의 위기는 자연과학자나 공학자의 위기다.” 자, 이게 말이 되는가?
  
이론물리학을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접하도록 하는 시도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러한 시도와 별개로 이론물리학의 가치는 의심받지 않는다. 일반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철학은 왜 그 가치를 의심받는가. 이론물리학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나 표현이 나오면 그 존재 가치를 의심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물리학은 전문적인 학문이라고 보지만, 철학은 전문적인 학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학문에서는 전문 용어를 쓰기 마련이다. 전문 용어를 쓰지 않으면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때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게 된다. 이 말이 의심스럽다면, 중학교 때 배우는 주어, 동사, to부정사, 정관사 같은 용어를 쓰지 말고 영어 문법을 설명해 보자.
  
대중의 언어로 과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공계의 위기의 본질을 벗어나는 것이라면, 인문학자들이 대중을 만나라는 것도 인문학의 위기의 본질을 벗어날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대책은 정부 지원을 늘리는 것뿐이다. 민간 재단을 만드는 방법이 있겠지만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다. 인문학에 세금 지원하는 것에 대해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것에 왜 국가가 지원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은, 이공계 대학원생들 보고 “너희가 좋아서 하는 연구니까 각자 알아서 입자가속기 만들어서 연구해라”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부터 생각하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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