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5

문제는 독서량이 아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도서관의 대출도서 순위를 밝히는 기사는 1년에 한 번씩 꼭 나온다. 서울대 도서관 대출 1위가 『해리포터』라는 기사가 나오면, 요즘 젊은 학생들이 교양서적을 안 읽는다는 둥 온갖 걱정을 하는 칼럼이 따라 나온다.
  
도서관에서 대출한다는 건 그 책을 돈 주고 사서 읽지 않는다는 거다. 학생들이 할 일이 없어서 『해리포터』나 읽으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건지, 교양서적은 돈 주고 사서 읽고 『해리포터』는 그러기에 돈이 아까워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 건지, 하도 학과공부에 치이다가 어쩌다가 『해리포터』 읽는 건데 2만 명이 빌리는 거라 집계에 그렇게 잡힌 건지 알 방법이 없다. 학생들의 독서 습관을 진단하려면 어떤 책을 읽는지를 조사해야 하는데, 그러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 받은 것을 적당히 기사로 만들어서 내보내는 것이다.
  
신문에 가끔씩 한국 사람들 책 안 읽는다, 책 좀 읽어라 하는 기사가 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1인당 연간 독서량을 중심으로 나라별로 비교를 하는데, 과연 그게 적절한 비교일까. 그들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지 모른 채로 1년에 책 몇 권 읽는 거 비교하는 게 그렇게 유의미한 비교일까. 가령, 이지성이 쓴 책을 읽은 것을 연간 독서량에 넣는 것은 유의미한가.
  
한국인 1인당 연간 독서량 관련된 기사에는 평균만 나와 있지 표준 편차가 얼마인지도 나오지 않는다. 상위 10%와 상위 50%의 독서량 차이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어떤 책을 읽는지도 알 수가 없다.
  
기사는 독서를 안 해서 국가경쟁력, 기업경쟁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다. 괜한 걱정이다. 이전 세대라고 해서 그렇게 독서량이 많다거나 지적으로 성숙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몇몇 어른들은 “옛날에는 책을 읽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하는데, 막상 만나보면 대학원생 빼고 교수 빼고 학부 졸업한 사람들만 놓고 볼 때 어른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젊은 사람이 나은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지식의 격차다. 과학고 출신에게 들으니, 요즘 어떤 과학고에서는 원서로 분석철학 서적을 읽는다고 한다. 웬만한 영어 책은 문제없이 읽으니 교재로 쓰는 영어 책의 난이도를 높이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 과학고 학생들의 독서 수준은 서울 시내 웬만한 대학의 학부생보다 높은 것이며 나처럼 엉성한 대학원생보다도 높다. 이런 차이는 대학 사이에도 나타나고 직업군 사이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그 차이는 재능의 차이 뿐 아니라 빈부격차나 생활환경도 반영한다.
  
기사에서 아무리 “책 읽어라, 안 읽으면 나라 망한다”고 겁을 줘도 책을 안 읽던 사람들은 책을 안 읽을 것이며 10년 후에 재앙이 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독서량 상위 20%와 하위 20%의 삶의 배경을 취재한다면 조금 더 설득력 있는 기사가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당분간 한국 언론에서 그런 기사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 링크: [머니투데이] 무식한 대한민국… “진지 빨지 말고 책 치워라”
  
  
(201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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