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04

'안녕들 하십니까'를 고까워하지 말자

어떤 후배가 “안녕들 하십니까”를 보니 씁쓸했다고 써놓은 글을 보고,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한몫을 잡겠다든지 취업에 도움이 된다든지 등등 공적 조직으로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놈들이 학생회 대표자나 집행부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총학생회 선거를 보면서 느낀 건데 아무래도 못된 놈들은 타고나는 것 같다), 내가 본 사람들은 어쩌면 다들 그렇게 올바르고 궁상맞은지 모르겠다. 나는 학부 내내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학교를 다녔다.

가시적인 사적 이익을 위해 학생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할까. 나름대로의 신념이나 자존감 때문 아닐까? 어떤 정치적인 신념, 또는 약간 어정쩡한 신념+공동체에 대한 이타심, 또는 ‘그래도 나는 옆의 놈이 죽든 말든 아무렇지 않아하는 개돼지는 아니야’라고 하는 도덕적 우월감(?), 또는 ‘저 새끼들(학생회로 사적 이익들 도모하는 놈들)이 활개 치는 꼴을 볼 수 없어’라고 하는 적개심, 이런 게 아닐까? 어쨌거나 이런 게 아니라면 돈도 안 되고 열심히 활동할수록 가난해지며 그다지 재미도 없을뿐더러 취업에도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학생회를 한다고 막상 학생들이 알아 주냐?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도와 주기라도 하느냐? 도와주는 사람은 정해져있다. 그런데 괜히 딴지나 걸고 불평이나 하는 사람, 학생회가 뭐하는지 모르겠네 하면서 뒤에서 욕하는 사람,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입장 좀 논의하려 하면 선동하지 말라하고 너네가 무슨 근거로 정치적인 입장을 내냐고 하는 사람, 말 좀 통하겠네 싶으면 계몽하려 하지 마라 가르치려 하지 마라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선거 좀 하려고 하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표정으로 투표 안 하고 지나가는 사람, 애절한 목소리로 “학우님 투표 좀 하세요” 하면 안 한 거 뻔히 아는데 했다고 뻥치는 사람, 이런 사람도 숱하게 많다. 어떻게 가까스로 투표율 50%로 넘기면 앞에서 말한 것은 다시 반복된다. 그 와중에 몸은 고단하고 물질적으로도 가난하고 학점도 가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내면적인 이유로 버티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안녕하시냐면서 평상시에 아무 것도 안 하던 사람들이 원래부터 올곧고 의식 있고 양심 있고 이타적인 사람인양 나타난다. 그걸 보면 속이 쓰릴 수 있다. ‘언제부터 그렇게 깨어있는 학우님이셨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성인군자가 아니라 그런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학생회에서 정치적인 쟁점이나 사회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 일이나 하고 자기 앞길이나 사람들도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이라면, 지금 일어나는 일은 충분히 바람직한 일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더욱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음으로 양으로 돕는 게 낫지 않을까.

아기가 걸음마를 걸을 때 부모들은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아기가 자꾸 걷도록 한다. 아기가 정말 잘 걸어서 잘한다고 하는 게 아니다. 잘 걸으라고 잘한다고 하는 거다. 태어나서 처음 대자보를 쓰는 사람들한테 잘한다 잘한다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거나 부당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어쨌거나 아무나 대인배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물증이 없어서 그렇지, 사실 나는 대인배도 타고나는 것 같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KTX 민영화니 밀양 송전탑이니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나는 기말보고서 때문에 안녕하지 않다. 기말보고서나 마저 써야겠다.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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