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30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라 불리어지는 것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계절 변화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계절 변화란 벚꽃이나 단풍 같은 게 아니라 단순히 “춥다” 또는 “덥다”로 인식된다고 한다. 김창옥의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다.

25살에 뒤늦게 음대에 들어간 김창옥은 열등감이 많았다고 한다. 집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귀가 안 들렸고 어머니는 글을 몰랐다. 동기들처럼 예고를 나온 것도 아니었다. 공고를 나와 삼수에 실패하고 해병대에 갔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 받으며 자란 동기들한테 기가 죽지 않으려고 김창옥은 대학에서도 해병대 군복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들은 “오빠는 언제 제대해요?”라고 물었다.

김창옥이 교수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르는 노래였는데 그는 해병대 군복을 입고 눈에 있는 대로 힘을 주고 군가처럼 그 노래를 불렀다. 교수가 노래를 멈추게 한 뒤 “다 놓고 해”라고 했다. 그가 말귀를 못 알아듣자 그냥 하라고 했다. 그는 다시 군가처럼 그 노래를 불렀다. 교수가 말했다.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야. 불리어지는 거지. 너는 지금 노래를 배워봤자 소용없다. 밖에 나가서 가을 보고 와라.” 그렇게 해서 본 게 김창옥의 첫 가을이었다고 한다.

<과학철학통론1>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지도교수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석사논문이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물으셨다. 내가 정신을 놓았다면 “선생님, 논문은 쓰는 게 아니라 써지는 것 같아요”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정신을 놓지 않은 나는 “12월 말까지 계획서를 내겠습니다”라고 했다.

어쨌거나 가을은 가을이다.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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