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9

자존감이 그렇게 중요한가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연 이게 정상적인 일인지 모르겠다. 무슨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허구헌날 자존감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가?

한국어 단어 ‘자존감’에 대응하는 영어 단어는 ‘self-esteem’이다. 그런데 ‘자부심’도 ‘self-esteem’이고, ‘자존심’도 ‘self-esteem’이다. 영어권 사람들이 자존감과 자부심과 자존심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퉁 쳐서 self-esteem이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영어권 사람들이 self-esteem이라고 대충 퉁 치는 것을 한국 사람들이 굳이 세세하게 자존감과 자부심과 자존심을 구별하며 느끼는 것인가.

기분이 좋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고,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것이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조마조마하며 신경 쓰는 것은 과연 정신건강에 좋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못 생겼다고 하자. 정상적인 경우라면 거울을 보고 “아이씨, 못 생겼네” 하고 기분 좀 나쁘고 말면 그만이다. 여기에 자존감이 개입한다고 해보자. 거울 보고 기분이 좀 나쁘고 말 것을 ‘나는 자존감이 떨어졌다’로 이어지고 ‘못 생겼다고 자존감이 떨어지다니 나는 자존감이 낮아서 문제야’ 라고 생각하고, 자존감이 낮으니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자존감이 고양되었다고 자기암시를 하고, 그래도 거울을 보면 나는 여전히 못 생겨서 기분이 나쁘고, 그래서 자존감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원래는 하나만 문제인데, 자존감 같은 소리에 현혹되어서 결국 문제가 두 개가 된다.

정상적인 심리학자나 심리상담가가 자존감에 대한 언급이나 처방을 한다면 또 모르겠다. 자존감 같은 소리를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주로 무자격자인 자기계발 강사들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고 삶이 나아진다면 무자격자여도 괜찮은 것 아닌가? 안 괜찮다. 기분 좋은 것은 순간이고 결국 안 좋은 감정을 자가발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게 마약상이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하다. 마약중독자들은 마약을 할 때만 기분이 좋고 마약을 안 하는 내내 기분이 안 좋게 되어서 결국 마약상에게 계속 돈을 가져다바치게 된다. 허구헌날 책 같지도 않은 자기계발서적 읽고 말 같지도 않은 자기계발 강사들 강의나 듣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자존감 타령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는 자존감을 내내 입에 달고 다니는 자기계발 강사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 강사가 강연에서 직접 하고 다니는 이야기다. 그 강사는 그렇게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해놓고도 아들이 고등학교를 자퇴하자 세상이 망한 듯 슬퍼했던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자존감이 중요하다면서, 아들이 감옥에 간 것도 아니고 안구나 고환을 잃은 것도 아닌데, 그깟 고등학교 자퇴한 것을 가지고 자기계발 강사는 그렇게 상심했다. 고등학교 자퇴하고 멀쩡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으로 상심하는가? 해당 사례는 자존심을 고양하든 자존감 강화훈련을 하든 개인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데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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