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을 추석 특선 영화로 보았다. 영화를 제때 본 사람들이 조선 과학사를 두고 이러네 저러네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장영실과 세종이 서로를 바라보는 미묘한 눈빛 같은 것이었다. 혼천의와 간의로 하려고 한 것이 조선의 하늘을 나타내는 것이든, 완벽한 유학적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든, 그런 것은 적어도 영화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허진호 감독은 장영실과 세종의 관계를 브로맨스에 한정 지어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건 개뻥이다. 왜 그런가?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조선의 역법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장영실은 세종이 원하는 것을 할 뿐이고 세종은 그런 장영실을 아낄 뿐이며,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고, 세종은 그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장영실과의 애정 관계를 지키고자 한다. 그러니, 세종이 원한 것이 조선만의 독자적인 역법을 가지는 것이든, 조선을 유교 질서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국가로 만드는 것이든, 영화에서 주가 되는 것이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혼천의를 부수게 만든 것이 명나라든 조선의 사대부든 영화상으로는 큰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둘 중 어느 세력이든 세종과 장영실의 애정 관계만 방해하면 되기 때문이다. 영화 <천문>에서 주된 구도는 세종과 장영실의 신분을 뛰어넘을 사랑과 이를 방해하는 조선 사대부와 명나라이다. 여기서 조선의 천문학이 어떤 성격을 띠는지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아닌 것 같은가? 이게 아니라면, 왜 세종은 잘해봐야 부하직원에 불과한 장영실을 불러서 근정전 앞에서 같이 술을 마시는 것이며, 왜 남자 둘이서 밤에 벌렁 누워서 별 타령이나 하는 것이며, 오밤중에 비가 오는데 왜 세종은 장영실에게 별이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며, 왜 장영실은 멀쩡한 창호지에 먹물을 칠해서 이벤트를 하는가? 우리는 이미 15년 전에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보았다.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이 전도연을 데리고 과수원에서 같이 별을 보는 장면이 그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조선 과학사와 관련된 어떤 구체적인 내용이 추가되었더라도, 영화에 대한 감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이 조선 과학사에 대해 견해를 가졌든, 극 중에서 장영실이 손재주로 하려는 것이 무엇이었든, 장영실과 세종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독이 장영실과 세종으로 무엇을 표현하려는가이지, 관객이 어떤 사전 지식을 가지는지도 아니며, 감독이 얼마나 과학사에 정통했는가도 아니다. 설사, 세종대에 대한 감독의 지식이 최신 과학사 연구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너는 내 운명>의 멜로에 상응하는 브로멘스를 표현하려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20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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