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ul White (2009), “Darwin’s Emotions: The Scientific Self and the Sentiment of Objectivity”, Isis 100, pp. 811-826. ]
다윈은 정서(emotion)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관찰자로서 자신을 관찰 대상과 거리를 두고 정서라는 대상(object)을 정서를 느끼는 주체(subject)에서 분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개발함.
그러나 다윈은 이러한 대상에 대한 접근을 실험실의 제어된 공간이 아닌 그의 집에서 수행함.
그는 정서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기술들을 사용한 반면, 그의 과학적 삶은 아버지로서, 지주 계급으로서, 유명한 저자로서의 정체성에서 쉽게 분리되지 않았음.
다윈에게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자신만의 노트가 있었음.
이 노트는 남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자신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
반면, 비글호에서의 일기는 이에 비해 다듬어진 정서 표현이 보이는데 이는 저자적 스타일(authorial style)을 공들여 만드는 매개체의 역할을 함.
결과적으로 이 일기는 Journal of Researches (1839)의 근간이 되어 다윈은 과학적 저자로 유명해짐.
또한 다윈은 정서의 표현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자신의 자식을 관찰하는 작업에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과학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게 됨.
그의 연구 대상으로서 정서가 기록되는 방식과 스스로의 정서를 기록하는 것 간의 차이는 과학자로서의 역할과 부성애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보여줌.
다윈의 글들에 의하면 아버지로서의 다윈과 과학적 관찰자로서의 다윈은 엄격히 분리되어 있었음.
더 나아가 다윈은 인간 전반에 걸친 정서 연구를 위하여 전 세계 식민지의 원주민들을 조사함.
다윈의 경우 기본적으로 이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음.
이 작업에서도 역시 다윈의 정서가 설문지, 편지, 영구에서 출판된 글과 같은 매체들을 넘나들며 변화하는 모습을 추적해 볼 수 있음.
이외에도 정서를 제거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동정심과 같은 정서를 유발시키기 위한 그림의 사용, 그리고 동물에 대한 동정심을 강조하는 다윈이 생체 해부에 지녔던 입장 등은 실험실 훈육(laboratory discipline)과 가정적 동정심(domestic sympathy) 사이에 연속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여줌.
(2017.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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