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5

한국 가요 속 고통받는 반딧불이



한국 가요에 등장하는 곤충 중에 가장 고통받는 곤충이 있다면 아마도 반딧불이(개똥벌레)일 것이다. 1980년대에 나온 신형원의 <개똥벌레>나 2020년대에 나온 중식이의 <나는 반딧불>에는 모두 고통받는 곤충으로서 반딧불이가 등장한다. 그러나 고통받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신형원의 <개똥벌레>에서 개똥벌레가 고통받는 원인은 공동체에서의 소외다. 집이 개똥무덤이라는 이유로 개똥벌레에게는 친구가 없고 새들도 노래하다가 도망간다. 개똥벌레의 요구 사항도 소박하다. 자신을 위해 노래를 해달라는 것(1절)과 손을 한 번 잡아달라는 것(2절)뿐이다.

중식이의 <나는 반딧불>에서 반딧불이 고통받는 원인은 자의식 과잉이다. 화자는 벌레인 주제에 자기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고, 심지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가 자기가 벌레라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니까 애초에 고통받을 이유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벌레가 벌레인 것이지 고작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화자가 자신이 벌레인 것을 깨달은 후에도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한참 동안 찾던 자기 손톱이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이 되었다고 하지 않나, 우주에 있던 별이 무주로 날아와 반딧불이 되었다고 하지 않나, 원래부터 벌레였는데 다시 태어났다고 하지 않나,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자의식 과잉이 이렇게 정신 건강에 해롭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저 말을 한 사람부터 좀 아픈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 가요에서 고통받는 반딧불이를 보면서 어쩌면 정말로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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