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9

농생대에서 먹은 떡볶이



나는 입맛도 까다롭지 않고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지만, 시중에서 유통되는 떡볶이에 몇 가지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 떡볶이는 달면 안 되는데 꽤 많은 분식점에서는 물엿을 너무 많이 넣는다. 너무 달아서 쓴맛이 나는 집도 있다. 단 것만 쳐넣으면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음식이 그렇게 달면 안 된다. 어떤 분식집에서는 동남아 쪽 고추가루를 쓴다. 동남아 쪽 고추가루를 쓰면 떡볶이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향이 난다. 아마도 동남아 쪽 고추가루가 국내산 고추가루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그러는 모양이다. 어떤 분식점에서는 뻘건 떡볶이 국물에 떡만 볶는다. 떡볶이 국물에 파, 양파, 어묵 등이 국물에 우러나서 감칠맛이 나야 하는데 그런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학생식당에서 만드는 떡볶이에는 물엿도 그렇게 많이 넣지 않고 고추가루도 국내산을 쓴다. 별미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정상적인 떡볶이다. 메뉴에 떡볶이가 끼어있으면 항상 두 번씩 받아먹는다.

같은 음식도 학생식당들마다 약간씩 맛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떡볶이도 그런 음식이다. 언젠가 농생대 식당에서 반찬으로 떡볶이가 나왔던 적이 있다. 농생대 떡볶이는 맛이 어떤가 하고 한 입 물었다. 학생식당들에서 나오는 떡볶이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면서도 이 식당의 떡볶이는 맛이 어떤가 하고 한 입 베어 문 것인데, 그 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맛이어서 순간 놀랐던 적이 있다. 내가 그런 떡볶이를 먹었던 것은 아마도 16년 전이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16년 전에 먹었던 것은 떡볶이가 아니었다.

내가 학부를 다닐 때 학교 근처에 <종로분식>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다. 이름은 <종로분식>인데 이름만 분식집이고 분식점에서 파는 것은 하나도 팔지 않는 이상한 음식점이었다. 떡볶이도 안 팔고, 어묵도 안 팔고, 순대도 안 팔았다. 그 대신 거기에는 ‘오돼떡’이라는 메뉴가 있었다. 오징어와 돼지고기와 떡을 넣고 볶은 음식이라 ‘오돼떡’이라고 불렀다. 그 동안 내가 갔던 어떤 분식점에서도 오돼떡 같은 음식은 팔지 않았다. 농생대 식당에서 먹은 떡볶이 맛이 <종로분식> 오돼떡 맛과 비슷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오돼떡을 만들 때 일반적인 떡볶이 국물 대신 제육볶음 소스 같은 것으로 맛을 냈던 것 같다. 예전에 농생대 식당에서 먹었던 떡볶이는 그런 맛이 아니었는데 그 날 먹은 떡볶이에서 그런 맛이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떡볶이가 떨어져서 제육볶음 소스로 응급처방 비슷하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종로분식>은 과에서 행사가 있으면 끝나고 다 같이 저녁식사 하러 가는 곳이었다. 좁은 지하로 들어가서 신발을 벗고 장판이 깔린 바닥에 앉아 오돼떡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가게 벽에는 그 가게 사장님과 백기완 선생이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는 선반에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저녁식사를 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내가 신입생이던 2004년에 있었던 일이다. 벌써 16년 전이다.

내가 농생대 식당에서 오돼떡 같은 떡볶이를 먹은 그 날, 같이 저녁을 먹던 대학원생들에게 학부 때 갔던 음식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학부를 다닌 학교에는 정문이 있고 후문이 있고 옆문이 있고 쪽문이 있는데, 그 중 쪽문으로 나오면 <종로분식>이라는 음식점이 있었는데 어쩌고 저쩌고... 그 자리에 있었던 대학원생 중에 나와 같은 학부를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나는 나만 아는 이야기를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저 사람은 떡볶이 먹다가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노인들이 뜬금없이 옛날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비슷한 행동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외국에 살아본 적도 없고 유학가본 적도 없어서 외국에서 한국 음식 먹고 한국 생각을 했다는 것이 어떤 건지 몰랐는데, 농생대 식당에서 떡볶이를 먹고는 이런 게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일까 싶기는 했다.

돌이켜 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즐거운 일이 있기도 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 잊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학부 때 어떤 사람들과 만나 무엇을 했는지를 떠올리게 한 것은 책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고 떡볶이였다.

(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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