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이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면 일단은 아무 데나 적용해본다. 가령, 아이들이 ‘똥꼬’라는 말을 배우면 엉덩이 비슷하게 생긴 아무 곳에나 똥꼬라고 하고, 이상하게 생긴 것에도 똥꼬라고 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도 똥꼬라고 한다. 그러면 어른들이 교정해준다. 이건 똥꼬가 맞고 저건 똥꼬가 아니다, 저 아저씨 얼굴이 똥꼬라고 하면 안 되고 아저씨가 못 생겼다고 해야 한다 등등.
어른들도 비슷하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면 일단은 아무 데나 적용해본다. 누군가 어디서 ‘폭력’이라는 말을 배웠다고 하자.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단어가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 단어의 새로운 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러면 마치 말 처음 배운 아이들처럼 아무데나 폭력이라는 말을 쓴다. 더워도 폭력, 추워도 폭력, 똥꼬가 가려워도 폭력, 약간만 기분 나쁘면 다 폭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과 어른들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잘 못 쓰면 누군가가 교정해주는데 어른들은 말을 잘못 써도 아무도 교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내가 조금만 불편해도 폭력이고 남이 조금만 기분 나빠도 폭력이면, 사람들이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크든 작든 다 폭력이다. 그렇게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차 있고 세상에 폭력이 아닌 것이 없으면, 도대체 폭력이라는 말을 왜 쓰는가? 어차피 사람이 하는 행위가 다 폭력이라면 그냥 행위라고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아무데나 폭력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섬세한 감각으로 미시적인 폭력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폭력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라고 하는 것은, 똥꼬들로 가득 찬 세계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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