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13년이었을 것이다. 이수역 근처에 있는 <막걸리학교>라는 술집에서 전통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다. 그 막걸리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간 일반 상점에서 파는 막걸리와 맛이 달랐다. 달지 않고 약간 떫고 신맛이 나지만 목 넘김이 좋았다. 가게에서는 감미료와 보존료를 첨가하지 않고 전통 방식대로 쌀과 누룩으로만 술을 만들었기 때문에 막걸리에서 그런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인간문화재가 만든 술이고, 소량 생산이라 일반 소매점에서는 팔지 않으며, 생산자에게 주문하면 택배로 배송해준다고 했다. 그 인간문화재가 강원도 영월인가 정선인가에 산다든가 어쩐다던가.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와중에도 가게 사장님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 1년 정도 셋째 이모부 집에 얹혀살았던 적이 있다. 같이 살면서 보니, 이모부는 일을 끝내고 매일 저녁마다 막걸리를 한 병씩 드셨다. 소주나 맥주는 몸에서 안 받는다고 하면서 안 드시고 막걸리만 한 병씩 드셨다. 셋째 이모부가 막걸리를 좋아해서 <막걸리학교>에서 마셨던 그 막걸리를 나중에 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절 때마다 명절 다음 날에 외가 친척들이 우리집으로 온다. 우리 집이 농가라서 고기 구워먹기도 편하고 해서 우리집으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명절에 전통 막걸리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 내가 항상 까먹고 주문하지 않았다. 미리 전통 막걸리를 주문했어야 했는데 항상 명절에 셋째 이모부 얼굴을 보고서야 전통 막걸리가 생각났다. 그때마다 다음 명절 때는 사오겠다고 하고, 또 까맣게 잊고 있다가 그 다음 명절에 셋째 이모부 얼굴을 보았을 때 또 그때서야 막걸리 생각이 나고, 또 다음 명절 때 전통 막걸리를 사오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매년 설날, 추석 때마다 전통 막걸리를 사오겠다고 약속만 하자, 셋째 이모부는 “도대체 그 막걸리는 언제 사온다는 거냐?”고 물었다.
열 번 넘게 까먹다보니, 이번 추석에는 안 까먹고 전통 막걸리를 주문할 수 있었다. <송명섭 막걸리>라고, 인간문화재 송명섭이라는 분이 전북 정읍에서 만드는 막걸리가 있다.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입금 전에 미리 전화로 연락해야 한다. 최소 구매단위는 한 상자(20병)이다. 주문-입금하고 상품 발송까지 확인했다. 주문한 막걸리가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집에 도착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막걸리를 김치냉장고에 다 넣어둔 상태였다. 한 병 꺼내서 맛을 보았다. 7년 전 그 맛이었다. 괜히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면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어머니는 셋째 이모부가 막걸리를 좋아해서 내가 전통 막걸리를 주문했다는 사실을 다른 이모들에게 알렸다. 특히나 셋째 이모부가 그 소식을 듣고 감동했다고 한다. 그 즈음에 이모부가 큰아들하고 싸웠고 이모가 이모부 편을 안 들고 아들 편을 들어서 기분이 크게 상했는데, 조카가 이모부를 위해 막걸리를 주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했다는 것이다.
추석 다음 날이 되었다. 외가 친척들이 우리집에 왔고, 나는 불을 피우고 고기와 생선을 구우면서 회 한 점을 집어먹고 다른 친척들에게 술을 권했다. 특히나 이모부의 표정이 밝았다. 밝은 얼굴로 나에게서 막걸리를 한 잔 받아서 들이켰다. 그런데 곧바로 이모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거 좀 신데... 상한 거 같은데...” 나는 답했다. “상한 게 아니고 원래 이런 맛입니다.” 이모부는 여전히 표정이 안 좋았다. “좀 떨떠름한데...” 나는 답했다. “아스파탐이 안 들어가서 그렇습니다.” 이모부는 한 모금 더 마셨다.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단맛이 전혀 없는데...” 나는 답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모부는 의문을 표했다. “어렸을 때 먹었던 막걸리도 단맛이 났는데...” 나는 답했다. “그 때는 사카린을 넣어서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식품첨가물의 역사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셋째 이모부의 입맛에는 전통 막걸리가 안 맞았다. 결국 이모부는 근처 가게에서 지역 이름이 들어간 탁주를 사오셨다. 감동은 감동이고 입맛은 입맛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셋째 이모부를 제외한 다른 친척들은 전통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외숙모는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키자마자 “오, 이거 괜찮다”라고 반응했다. 외숙모는 외가에서 술을 제일 잘 마시고 많이 마시는 분이다. 첫째 외삼촌은 술을 잘 못 드시는데 목 넘김이 좋다면서 계속 마셨다. 둘째 이모부는 “맛이 (시중에서 파는 막걸리와) 좀 다른데 괜찮은 것 같다”면서 드셨다. 둘째 이모부가 걷다가 휘청하는 모습을 몇 년 만에 본 것 같다.
(202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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