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덜 그러는 것 같은데,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언론들은 우리는 언제 노벨상 타냐고 안달복달하고 사탕 달라고 조르는 애새끼들마냥 보채기나 했다. 혁신해야 노벨상을 받는다는 식의 영양가 없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었다. 어떤 혁신을 해야 연구가 혁신적으로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연구를 잘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노벨상 자체가 혁신적이라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본 것 같다. 왜 그런가?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노벨상의 최대 수혜자는 노벨일지도 모른다. 노벨상이 아무리 권위 있다고 해도 전체 노벨상 수상자들 중 우리가 아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해의 노벨상 수상자를 모두 아는 사람은 사실상 얼마 없을 것이고, 그 이전년도의 노벨상 수상자는 관심 분야가 아니고서는 거의 모른다.(영화평론가 최광희가 그러겠다. “노벨상은 그 정도 상입니다”라고.) 그렇지만 노벨은 거의 모든 사람이 안다.
구글에 “노벨상의 경제 효과”라고 치면 노벨상을 받는 쪽의 경제적 효과는 나오는데 노벨상을 주는 쪽의 경제적 효과는 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노벨상 때문에 스웨덴이 얻는 경제적인 이득이 있을 텐데, 이런 건 잘 나오지 않는다. 노벨도 상당히 성공한 기업가니까 경제 신문 같은 데서 노벨 같은 기업가를 기르자고 할 법한데 그런 기사도 여간해서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노벨은 어떻게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는 상을 만들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다루면서, 브랜드 가치라든지, 기업의 사회적 공헌 같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도 역시나 하지 않는다.
노벨상이 혁신적인 것이라면 아마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이름을 따서 기여자의 공을 기념한다는 것이다. 내가 서양사를 잘 몰라서 서양에서는 언제부터 상에 사람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전-근대 시기에 그런 식의 상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황희가 명재상이라고 해도 조선시대에 장기 근속한 벼슬아치에게 황희 메달이나 맹사성 훈장 같은 것을 수여하지는 않았고, 아무리 군공이 높은 사람에게도 을지문덕 상이라든지 강감찬 상 같은 것을 주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매년 상을 준다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보다 중요한 것이 두 번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매년 상을 줄 생각을 했을까? 고대나 중세에는 매년 한 번씩 꼬박꼬박 상을 준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도 어쩌다 한 번 있는 것이고, 그래서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사람에게 비단 몇 필, 식읍 몇 호 하는 식으로 상을 주었을 것이다. 연구도 마찬가지다. 학자로서 명망이 높으면 문묘에 배향하는 것이지 매년 한 명씩 연구업적이 뛰어난 유생을 뽑지는 않았을 것이다. 매년 상을 주고 그것도 생존자에게만 준다는 것은 그만큼 상 줄 업적이 매년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건 전-근대 시기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을 것이고, 아마도 유럽이든 동아시아든, 아랍이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노벨상의 조건은 성장과 진보가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내가 역사를 잘 모르니까 자신 있게 말은 못하겠지만, 노벨이 노벨상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을 즈음에는 아마도 상이나 보상체계에 관한 유럽 사람들의 생각이 이전 시대의 사람들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고, 아마도 노벨은 동시대 사람들의 그러한 변화를 포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노벨상만큼 두드러진 근대적 산물도 드물 것이다.
노벨상 자체의 혁신성과 관련된 연구가 있을 법해서 한국어 논문을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했다.(영어 논문을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영어를 아직 잘 못해서 취미생활을 위해 굳이 영어 논문을 찾아서 읽지는 않았다.) 내가 관련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기는 하지만, 누군가가 (노벨상이 혁신에 미치는 영향 말고) 노벨상 자체의 혁신성에 대해 연구한다면, 적어도 근대성 같은 소리나 하면서 개뻥 치는 것보다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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