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6

고등학교에서 독서 지도 아르바이트를 준비하면서 생각한 것



어느 고등학교에서 독서 지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줌을 이용하여 비-대면으로 한다.

학교에서는 『멋진 신세계』, 『1984』, 『바이러스 쇼크』, 『홍길동전』, 『SF의 힘』, 『엄마의 말뚝』, 『국경시장』, 『금오신화』,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4차산업혁명 새로운 직업 이야기』,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중 하나를 골라서 학생들과 읽으라고 했다. 청소년이 4차산업혁명 같은 것을 알아봐야 개뻥 칠 때나 도움이 될 테니 필요 없고, 설민석 책은 제끼고, 그러면 소설 몇 권이 남는다.

나는 아직도 소설 읽는 것이 어떤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소설 읽는 게 교육적 효과가 없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읽은 소설이 『삼국지연의』 뿐이라서 소설의 교육적 효과를 정말 모르는 것이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억지로 소설을 읽게 만드는 것이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내가 알아서 책을 잘 읽을 텐데 왜 학교에서 생각 없이 한국 근현대 소설 같은 것이나 읽으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 죄다 우중충한 배경에 하나도 재미없는 이야기들인데 그런 것을 읽고 무슨 교양을 쌓을 것이며, 무슨 수로 독해 능력이나 자료 해석 능력이 길러진단 말인가?

어쨌거나 돈 받은 만큼은 일을 해야 한다. 소설책을 붙잡고 아무 이야기나 궁시렁 궁시렁 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런 아르바이트에서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RISS에서 한국어로 된 논문을 찾아 학생들이 쉽게 접하지 못할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왜 영어 논문이 아니라 한국어 논문인가? 내가 아직 영어를 잘 못해서 영어 논문 읽는 것은 여전히 힘들어서 일정 금액 이상을 받지 않으면 한국어 논문만 보는 것이다.

RISS에서 한국어 논문을 찾아보니 이번 아르바이트에서 내가 읽을 소설과 관련된 적절한 자료는 매우 드물었다. 내가 문학 까막눈이라서 뭐라고 말할 자격이 없기는 한데, 그래도 한마디 하자면 문학 쪽에는 왜 그렇게 이상한 논문이 많은지 모르겠다. 논문들 중 상당수는 소설에 대해서 말하는 척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그 소설의 어떤 측면이 현대 사회의 어떤 측면과 관련된다면서 그냥 현대 사회에 관한 글을 쓴다. 그렇다고 사회과학 쪽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 비평을 할 만한 전문성이 없어서 소설을 끼워 넣는 것 같다. 어떤 논문은 어떤 철학자를 빌려와서 그 철학자의 어떤 측면과 그 소설을 어떤 측면이 비슷해 보인다고 주장한다. 비슷해 보이는데 어쩌라고? 그 철학자가 그 소설을 읽었다는 증거도 없고 그 소설가가 그 철학자의 철학을 접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비슷해 보인다면서 아무 이야기나 하면 소설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는가, 철학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는가? 벽에 걸린 시계가 둥그런 것이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비슷하다고 하면, 시계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는가, 달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는가?

물론, 나는 그런 와중에도 독서 지도를 어떻게 할지 구상이 다 섰고, 해당 소설과 관련된 독서 토론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자료도 다 구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고등학교 독서 교과서에는 독서 토론의 예시가 나오는데, 이건 일과 끝난 직장인들이 하는 책읽기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나 만나서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말이나 하고 엉뚱한 놈한테 돈이나 갖다 바치는 책읽기 모임 말이다. 독서 토론 방법에 관한 논문도 있는데, 그 논문에서 말하는 독서 토론이라는 것도 결국 소설책을 읽고 소설 내용 관련해서 그냥 아는 대로 말하고 주워들은 대로 말하라는 것이다. 이게 학생들의 사고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고등학교 독서 토론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있는데 우수토론자를 뽑아서 학생부에 기록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 읽은 것이고 토론을 하면 토론을 한 것이지, 책 내용이 유익하면 일기장에 기록하든지 공책에 기록하면 되고 내용이 감명 깊었으면 가슴에 담아두면 되는 것이고 토론이 유익했으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면 되는 것이지, 굳이 스무 명 중에서 다섯 명에서 열 명을 우수토론자로 뽑아서 기록한다고 한다. 치사하게 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교사들이 소인배여서 이러는 것은 아니고 제도가 이상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차피 대학에서도 소설책 몇 권 읽은 것이 학생의 지적 능력에 대해 아무런 지표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뻔히 알 텐데, 왜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책을 읽는 것이 책 안 읽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꼭 이렇게 치사하게 해야 하는가?

어쨌거나 이것은 일이고 해당 학교에서 기대하는 것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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