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4

여자와 대화하는 법?



하드디스크의 자료를 정리하다가 몇 년 전에 다운받은 어떤 팟캐스트의 mp3 파일을 들어보았다. 해당 회차의 코너 중에는 ‘여자와 대화하는 법’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던 것이었고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도 자주 나오던 것이었다. 여자는 논리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여자가 대화에서 얻으려는 것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공감이다, 내용에 상관없이 여자 말이 끝날 때마다 감탄사를 내라, 몇 가지 감탄사를 돌려가며 반응을 보여라, 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몇 년 전에 여자와 대화하는 법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냥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여기고 별 생각 안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문제가 꽤 심각해 보인다. 이건 인간과 대화할 때의 반응이라기보다는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에게 할 법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 팟캐스트에서는 여자들은 직설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서, 해당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관한 퀴즈도 했는데, 이 또한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나 방송 등에서 유행하던 것이었다. 그러한 내용들에 따르면, 여자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교육을 받을 만큼 받고 사회생활을 할 만큼 하고도, 애인한테 원하는 바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그럴 법한 제안도 하지 못하고 논리적으로 말도 못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애새끼처럼 삐치기나 하고 애완동물처럼 달래줘야 하는, 그런 모자란 존재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당 팟캐스트에서 여자 게스트들은 그런 말을 듣고도 좋아 하면서 “여자들은 원래 그래요”라고 한다.

얼마 전에도 밥 먹으며 텔레비전 채널 돌리다가 연애 무슨 프로그램이 나오는데 거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고민 상담 내용은 남자친구가 회사에서 일할 때는 자기가 한 연락에 바로바로 답변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으로 나오는 여자는 어김없이 무직자이거나 무능력자다. 그런 프로그램은 어김없이 남녀 패널들이 편을 나누어 개소리를 하는데, 인상적인 것은 여성 방송인이 자기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여자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식으로 말한다는 점이었다. 여성 방송인이 자기는 하루 종일 일정을 소화하며 웬만큼 좋은 직장 다니는 남성보다 몇 배나 몇 십 배 많은 돈을 벌지만 틈틈이 애인한테 연락한다고 말한다면 그런가보다 할 텐데, 방송에서 그렇게 말하는 법은 없다. 그 방송인의 아는 언니 중에 현직 검사가 있는데 공판 때문에 바빠도 휴정할 때 틈틈이 애인하고 연락한다고 하든지, 아는 동생 중에 외과 의사가 있는데 하루에 심장 수술을 두 번 하지만 잠시 쉬는 시간에도 애인하고 연락한다든지 하는 식의 이야기가 있으면 또 모르겠으나 그런 법도 없다. 여자는 원래 그런다는 식의 이야기뿐이다.

출연자들은 대본대로 하니까 그런다고 치자. 방송 작가 중 상당수는 여성일 텐데, 그런 대본을 쓰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대본을 쓰는 것인가. 왜 매체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하나 같이 능력 없고 수다스럽기나 하고 멍청한가. 왜 매체에서 등장하는 여자들은 소꿉장난이나 할 줄 아는 어린아이 수준으로 나오는가. 경제학과 대학원 수업에 들어가서 보니 대학원생 중 3분의 1 이상은 여성인 것 같던데, 이미 세상은 많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는데, 왜 매체에서는 아직도 멍청한 여자들이 과대대표 되는가?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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