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는 <세바시>에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요구하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강연 서두에서 김누리 교수는 어떻게 아동 우울증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어떻게 아이 앞에 우울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느냐, 이건 검은 백마 같은 형용 모순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런데 그런 형용 모순은 김누리 교수의 강연 곳곳에서 보인다.
김누리 교수는 자신의 어렸을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저희도 어렸을 때 보이는 모든 것이 놀이였잖아요. 자치기부터 돌깨기 이런.. 그런 아이들이 우울한 게 어디 있어요? [...]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아이들은 기적적으로 우울하다는 거죠.”
곧 이어서 김누리 교수는 한국 교육 100년을 다음과 진단한다. 1919년부터 2019년까지 대한민국 100년이고 올해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데, 김누리 교수에 따르면 지난 100년의 교육은 “반-교육”(anti-education)이다. “교육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교육이 반하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일제시대 교육은 황국신민 양성 교육이고, 독재 정권의 교육은 반공 투사와 산업 역군을 기르는 교육이고, 민주 정부의 교육은 인적 자원 육성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100년 간 단 한 번도 인간을 키우고자 한 교육이 없었고, 성숙한 인간을 기르는 교육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김누리 교수의 진단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국 학생들은 교육 때문에 불행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지난 100년 간 반-교육이 행해졌는데, 김누리 교수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누리 교수가 150년 쯤 산 것도 아니니 분명히 지난 교육 100년에 포함되는 시기에 한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을 텐데 그 당시는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김누리 교수가 보는 한국 교육은 “연탄 공장에서 연탄 찍어내듯이 마빡에다 영어 몇 점 수학 몇 점 찍어내는 것”이다. 교육은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이 또 다른 개인과 타인과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고 교감하며 사는 능력, 사회적 자아를 가지게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교실은 생존 경쟁의 전쟁터이고 약육강식의 정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 교육과 대비되는 것은 역시나 독일 교육이다. 독일 교육에서 강조하는 학생의 핵심 역량은 저항하는 능력, 분노하는 능력, 교감하는 능력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교육의 목표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하나의 기능, 인적 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김누리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데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 대통령을 탄핵한 사람들인데, 또 전 세계가 코로나 때문에 정신없는 속에서 우리가 기품 있는, 성숙한 모습을 보인 민족이잖아요? 그런데 교육의 지옥에서 바꿀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아니겠죠? 광화문에서 교육 촛불을 들어야 한다 [...]”
그러니까 김누리 교수의 말을 정리하면, 한국에서는 지난 100년 간 반-교육을 하느라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불행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연대하고 교감하며 사는 능력을 키우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김누리 교수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한국 국민들은 그런 교육을 100년이나 받고서도 촛불을 들어 대통령을 탄핵하고 코로나19의 창궐에서도 기품 있고 성숙한 모습을 보인 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만 봐도 개인이 자기 경험에 비추어서 사회 문제에 대해 아무 근거 없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알 수 있다.
이와 별개로, 김누리 교수가 어떻게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는지를 추측할 만한 자료가 있다. 그 단서는 김누리 교수가 2003년 <교수신문>에 기고한 “담배를 입에 물고”라는 글이다. 당시 김누리 교수는 유시민 의원의 복장 불량 사건을 보며 유년 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시쳇말로 ‘범생’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별난 말썽꾸러기도 아니었지만, 학생주임의 눈엔 분명 ‘문제아’로 보였을 것이다. 보충수업 시간이면 우리 3인방은 일찌감치 가방을 챙겨 학교를 탈출하곤 했다. 몰려가는 곳은 늘상 집 뒷산의 ‘왕바위’였다.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우리는 이슬이 젖도록 밤을 지샜다. 캄캄한 밤 뿌연 별빛 속으로 김민기, 양희은, 송창식을 날려보냈고, 어설픈 입술에 릴케, 카프카, 니체를 실어 ‘인생이라는 괴물’과 씨름하곤 했다. 유신말기, 거대한 병영사회의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저항이란 고작 이런 하릴없는 모습이었다.
정규 수업도 아니고 보충 수업에 도망가는 학생이 문제아로 보일 정도의 학교가 어떤 학교일지 생각해보자. 이건 이과생이 수학 문제 푸는 대신 남몰래 시집을 읽으며 죄책감을 느꼈다는 식의 회상으로 보인다. 그 문제아들의 일탈 행동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하는 일탈이란 뒷동산에서 릴케, 카프카, 니체 같은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학교였길래 그랬던 것인가. 얼마 전 민사고 졸업생들이 동창회보에 쓸 글을 신문에 칼럼으로 실어가며 고등학교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겼던 것을 떠올려보자. 그런데 칼럼에서 더 놀라운 내용이 이어진다.
사실 내가 ‘범생’이 되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탓도 크다. 아버지는 나의 행동에 대해 도대체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셨다. 나에게 무어라 간섭을 하거나 핀잔을 준 적이 없었을 뿐더러, 심지어 나의 ‘불량’한 행동까지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담배만 해도 그렇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미 아버지 앞에서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선지 외국사람을 만날 때면 나를 데리고 다니곤 했는데, 한번은 무슨 대사의 집에 초대를 받은 자리였다. 대사는 식사가 끝나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서양식대로 돌아가며 담배를 권했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땡큐” 하며 담배를 뽑아 물었다. 꿀맛이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지나가는 말로 말씀하셨다. “세상은 네 뜻으로 네 방식대로 사는 거야.”
김누리 교수의 아버지는 외국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기 자식을 데려갈 만큼 자식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모양인데, 만나는 외국 사람이 미군부대에서 허드렛일 하는 노동자도 아니고 대사였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대사는 스님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 아닐 것이다. 주한 대사의 초대를 받는 아버지가 자수성가형 꼰대도 아니고 자식과 맞담배를 피우는 쿨쟁이였다니. 나의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다면 나도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 링크(1): [세바시] 1165회. 반교육의 나라에서 벗어나려면 / 김누리 중앙대 교수
( www.youtube.com/watch?v=1CDa8sCiwNs )
* 링크(2): [교수신문] 담배를 입에 물고 / 김누리
( 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062 )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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