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1

학과별 맞춤 과학학 교양 수업 구상



얼마 전에 공대 학부생 한 명을 알게 되었다. 학부 후배였다. 대학원 진학 관련해서 나에게 문의를 한 것이었고, 나는 “과학철학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개인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다”고 했다. 어쨌거나 나는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했다.

공대 학생이 왜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내가 다닌 학부는 문과 캠퍼스와 이과 캠퍼스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공대 학생이 인문사회 쪽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교양 수업이 있다고 해도 쥐뿔이나 지적 자극을 할 법하지는 않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 10년 동안 교양 수업이 크게 개선되었나? 후배 말에 따르면, 그건 아니었다. 그러면 공대 학생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사연은 이러했다.

학부 후배는 바이오메카트로닉스학과를 다닌다. 바이오메카트로닉스라니. 내가 졸업하기 전에 그런 게 생겼다는 이야기는 듣긴 들었는데 나는 그 정체를 모른 채로 졸업했다. 바이오메카트로닉스는 인간의 행동과 관련된 기계나 도구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노인이나 장애인들의 보행을 돕는 외골격형 기계를 만든다든지 육체 노동자들이 적은 힘을 들여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수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기계공학 아닌가? 그렇긴 한데 어쨌든 바이오메카트로닉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학과에 학생 무슨 경진대회인가, 하여간 학생들끼리 조를 짜서 프로젝트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바이오메카트로닉스 학과는 생명공학에 가까운 것을 하는 학생과 기계공학에 가까운 것을 하는 학생으로 나뉘는데 생명공학 쪽이 훨씬 많다고 한다. 한 조에 생명공학 쪽 학생들과 기계공학 쪽 학생들이 섞이자 서로 자기 쪽 전공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했고, 그러다 학생들 사이에 어느 게 더 과학이냐 하는 논쟁이 벌어졌다. 생명과학 쪽 학생들은 외골격 같은 거나 만드는 게 무슨 과학이냐고 했고, 기계공학 쪽 학생들도 무슨 항변을 하고 싶었으나 학과 내에서 기계공학 쪽 학생들의 수는 적었고 기계공학과 학생들의 지원을 받기에 그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렇게 사람 수에서 밀려 논쟁에서 진 학부 후배는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토론 동아리를 찾아갔고 그렇게 경기남부 토론 동아리 연합회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교양 수업만 잘 짜도 과학학 쪽 인력 수급이 개선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과학학 쪽 수업은, 일단 개설되지 않는 학교가 많고, 개설된다고 해도 이공계 학생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적었다. 과학철학 수업이 열려도 일반 과학철학 수업이 열리고, 과학사 수업이 열려도 외적 과학사에 가까운 수업이 열리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취향이 독특한 일부 학생 말고 대부분의 공대생들은 해당 수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게 내가 배우는 과학과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만약 해당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과 관련된 것이 사례로 등장한다면, 그리고 비교적 가까운 연대의 사례가 등장한다면 학생들의 반응은 약간 달라질 수도 있겠다. 같은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철학적인 내용을 먼저 가르치고 사례로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사례를 먼저 제시하고 그것과 관련된 기초적인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다음 그것의 철학적 함축을 가르친다면, 학생들의 반응이 더 좋지 않을까? 한참 과학 이야기 하다가 중간고사 지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 흄이라고 들어봤어, 흄?” 그렇게 수강철회 기간은 지나고 기말보고서에 흄이 어떠니 인과가 어떠니 하는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이다.

아예 수업도 수업명 하나로 여러 개 분반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전공에 맞는 교양 수업을 개설하는 것이 좋겠다.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같은 제목이 아니라 <물리학도를 위한 철학>, <생물학도를 위한 철학>, <화학도를 위한 철학> 같은 식으로 맞춤형으로 강의를 개설하고 교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물론 수업 개설에는 행정상의 문제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교양 수업만 달라져도 과학학 쪽 수급이 달라질 것이다. 1천 명 중에서 한 명 지원하던 것이 열 명 지원하게 바뀐다면, 공대 입장에서는 한 명이나 열 명이나 차이가 없겠지만, 과학학 쪽에서 보면 지원자가 열 배 늘어나는 것이다.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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