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13

물류창고 우수관 공사가 수상해서 약간 파보았더니

      

2019년 5월 7일(화)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퇴근하고 집에 오다 보니 집 근처에 있는 밭에서 인부들이 포크래인으로 흄관을 묻고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인부들은 “농어촌공사의 허가를 받았다”고만 말하고는 서둘러 퇴근했다고 한다. 공사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 어머니는 한국농어촌공사 등에 문의했고, 해당 공사를 한 것은 농어촌공사가 아니라 창고부지 건설 인부들이 한 것임을 확인했다. 밭 근처에 묻은 흄관은 물류창고의 우수관(빗물관)으로 묻은 것이었다.

  

다음 날, 나는 아침에 수업을 듣고 나서 곧바로 집으로 갔다. 나는 집에 도착해서 흄관을 묻은 곳부터 창고부지까지 죽 둘러보았다. 얼핏 봐도 뭔가가 상당히 수상했다. 창고부지에서 빗물을 배출하려고 한다면 창고 바로 옆에 배수관을 내면 된다. 빗물을 배출하겠다고 몇 백 미터에 걸쳐 흄관을 묻는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게다가 흄관이 너무 컸다. 우수관이 아니라 하수도관의 크기였다.

  

  

나는 지대가 높은 곳에 올라가 마을을 둘러보았다. 미분양인 연립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창고와 창고 우수관과 연립주택의 위치가 절묘했다. 연립주택에서 20-30미터만 뚫으면 연립주택의 하수관과 창고 우수관과 연결될 수도 있는 위치다. 만약 연립주택의 하수를 창고 우수관으로 흘려보낸다면?

  

시골에서 건물을 지을 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하수도이다. 시골에는 정식 하수도가 없어서 건물을 새로 지을 때 허가받기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원래 살던 사람들은 건물이 낡으면 개축 정도만 하면서 살면 되는데, 건물을 새로 지으려면 건축허가 요건을 맞추기 어려운 것이다. 만일 나쁜 마음을 가진 건설업자라면, 창고부지를 조성한다고 해놓고 우수관을 길게 파묻어놓고 연립주택의 하수도를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준공 허가를 받은 다음 연립주택을 팔고 뜨는 것이다. 연립주택의 하수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주민들과 입주자의 싸움이 될 것이고, 시골 사람들은 죄다 어수룩하니 어느 누가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누군가 나선다고 해도 몇 년 지나면 유야무야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하수도가 생기면 물류창고 부지를 연립주택 단지로 바꾸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기존 연립주택의 하수에 신규 연립주택의 하수까지 더해져 동네는 난장판이 된다.

   

가설을 세웠으니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야 했다. 연립주택 근처의 지대가 낮은 곳에 풀이 무성했다. 풀을 헤치고 들어가서 보니 하수 방류구 같은 것이 있었다. 이장한테 이 이야기를 했는데도 이장은 “연립주택에서 하수처리장 쪽으로 하수를 뺀다고 들었다”고만 말했다. 이장 아저씨가 돈을 받아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고 정말로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통해서 다른 부동산 업자에게 연락했다. 업자의 대답은 연립주택의 하수가 무슨무슨 동네로 빠진다는 것, 즉 농수로로 배출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알아낸 것을 동네 주민들한테 말했고, 결국 6월 5일(수) 담당자인 허가민원2과 박 주무관이 마을에서 주민과 면담하게 되었다. 이장을 포함하여 동네 주민 여덟 명이 모였고 오전 10시쯤에 면담을 시작했다. 면담은 대략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 주민: “왜 답변이 계속 달라지느냐? 오늘 답변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도 되겠느냐?”

- 박: “동영상 촬영은 안 된다. 촬영하면 면담 안 한다.”

 

- 주민: “지난번에 공사현장에서 100미터 이내만 동의서를 받으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 박: “그런 적 없다.”

 

- 이장: “면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공사하는 게 맞는지 물어보겠다.”

- 박: “면장에게 묻지 말라.”

 

- 주민: “공사하면 사유지를 침범하게 된다.”

- 박: “도로에서 국유지로만 이어지므로 주민은 피해를 받지 않는다.”

 

- 주민: “지적도와 현황도가 차이가 많다. 알고 있느냐?”

- 박: (설계사무소 직원에게 묻고 둘이서 어쩌구저쩌구)

 

- 주민: “옛날에 비만 오면 논에 물이 넘쳐서 논을 줄여가면서 수로를 만들었다. 우수로를 저렇게 뚫으면 또 홍수난다.”

- 박: “환경영향평가 했다.”

 

- 주민: “왜 공사하면서 사유지를 침범하느냐?”

- 박: (설계사에게) “공사하면서 사유지를 침범했느냐?”

- 설계사: “사유지를 훼손하기는 했다.”

- 박: (주민들에게) “그러면 환경과에 민원을 제기하라.”

 

- 주민: “허가 내주기 위해서 현장에 방문한 적이 있느냐?”

- 박: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

- 이장: “그러면 그 때 만나서 동네 주민들한테 설명했어야 하지 않느냐?”

- 박: “어차피 반대할 텐데 왜 만나냐?”

  

대충 이렇게 면담이 진행되었고 동네 사람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박 주무관은 “주민들의 주장을 정리하기 힘드니 서면으로 민원을 제기하라”고 했다. 이 때 어머니가 주무관에게 연립주택 하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박 주무관이 어머니한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아주머니 댁의 하수는 어디로 가는데요?” 연립주택과 창고가 상관이 없으면 없는 것이지 갑자기 우리 집 생활하수는 왜 묻는가. 게다가 그 주무관은 “그렇게 억울하면 행정소송을 넣으시라”고 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의 공무원을 봤나.

  

그런데 싸가지의 향연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19년 6월인가, 어느 날은 어머니가 밭에서 김을 매는데 박 주무관과 설계사가 찾아와서는 “원래 땅을 다시 안 메워줘도 되는 건데 파이프만 묻고 메워준다고 하지 않느냐. 뭐가 문제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에는 창고주인의 장모(라고는 하지만 연립주택 소유주로 의심되는 여자)가 이장과 함께 우리집에 찾아와서는 “지금부터 핸드폰으로 다 녹화한다”고 하더니 “자꾸 공사를 방해하면 20억 원짜리 소송을 걸겠다”면서 혼자서 펄펄 뛰다가 돌아갔다고 한다.

  

사실, 공사 자체는 간단하다. 우리 집의 밭 사이로 농로가 지나는데 그 농로에 흄관을 묻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사를 한다면 흄관을 묻는 과정에서 밭을 침범할 수밖에 없다. 농한기에 빈 밭 좀 밟는 것이 뭐 대단한 사유재산 침해라고 공사를 반대했겠는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농로 사용을 승인했으니, 우리집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면 별다른 의심 없이 매설 작업을 하라고 승낙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평일에는 서울에 있다가 주말에 집에 와서 닭고기에 맥주나 마시고 자다 일어나서 교회 갔다가 서울로 간다. 평일에 우수관을 묻고 부모님이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면 나는 공사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 건설업자, 사장 장모가 돌아가면서 싸가지 없는 짓거리를 하니, 수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 저들은 모두 저렇게 싸가지가 없단 말인가?

  

이런 와중에 건설업자가 아버지를 공사방해로 경찰에 고발했다. 가만히 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도 건설업자를 고발하려고 경찰서에 갔다. 거기서 형사와 대화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선, 그 이유가 어쨌든 아버지가 공사방해를 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사유지를 침범했다고 고발하려면 경계 표시를 해놓았어야 했는데 경계 표시를 하지 않아서 무단 침입도 성립하지 않는다. 재물손괴로 고발하려고 해도 손괴된 재물이 없어서 이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 경계 표시도 하지 않은 빈 밭을 중장비로 밟았다고 해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선 토지측량부터 하기로 했다.

  

밭과 농로의 경계에는 측량할 때 쓰는 빨간 말뚝이 이미 꽂혀 있었다. 건설업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한테 알리지도 않고 경계 측량을 했던 것이다. 측량한 대로 업자들이 말뚝을 그대로 두었는지 믿을 수가 없어서 60만 원 가량 들여서 경계 측량을 새로 했다. 측량 결과, 건설업자들이 말뚝을 옮기지는 않았으나 자기들에게 유리하게끔 말뚝을 몇 개 없앴음을 알게 되었다. S자 모양으로 길이 휘었을 때 중간에 말뚝 몇 개를 없애버리면 길이 넓고 곧은 것처럼 속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사업자는 인접 토지 주인을 부르지도 않고 몰래 경계 측량을 했던 것이다. 나는 새로 경계 측량하고 난 뒤, 측량할 때 박은 빨간 말뚝 옆에 경계 표시를 위한 긴 말뚝을 박고 말뚝 사이를 줄로 묶어서 경계를 표시했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이러한 일들을 간단히 처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내가 창고 주인과 공사업체에 소송을 걸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손해배상청구를 할 것이 없다. 허락도 안 받고 남의 밭에 들어온 것이 기분 나쁘고 말도 안 하고 경계 측량한 것이 싸가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전적으로 손해보았다고 할 것이 마땅히 없다. 공무원과 공사업자 등이 싸가지가 없어서 내 기분이 나쁠 뿐이지 우수관 공사가 진행되어도 내가 경제적으로 손해볼 것이 거의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행정소송을 걸기도 애매했다. 창고 때문에 야간에 소음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 피해는 우리집이 아니라 위쪽에 사는 사람들이 입을 것이고, 내 추측대로 연립주택의 하수가 창고 우수관을 통해서 배출된다고 해도 그 피해는 우리집이 아니라 아래쪽에 사는 사람들이 입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이해당사자인 줄도 모르고 우리집이 이해당사자인 줄 안다. 나는 동네가 망할까봐 건설업체에 대응한 것인데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에 직접적인 피해가 올까봐 내가 대응한 줄 알았던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라 자기네들이 이해당사자인 줄 알더라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기 힘들었을 것인데, 심지어 상황 판단도 잘 못했고 그다지 협조적이지도 않았다. 이장 아저씨는 내 말을 이해 못하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마을 차원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서 행정소송을 걸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금전적인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 큰돈을 들여 내가 개인적으로 행정소송을 걸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옆집에서 행정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옆집 며느리가 도청 공무원인데 자기 선배가 얼마 전에 퇴직하고 행정사 개업을 했다고 했다. 행정사도 전관예부 비슷한 게 있다나 뭐라나. 행정사를 사려면 250만 원이 든다는데 옆집에서는 그 비용을 다 부담하겠다고 했다. 며칠 뒤에는 그 행정사가 담당자를 만나러 시청에 갔더니 담당자인 박 주무관이 도망가서 만날 수 없었고, 다시 한 번 찾아가니 주무관이 행정사에게 “제발 살려주십시오.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하며 싹싹 빌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나는 일이 쉽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행정사가 온다고 해서,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정사를 만났다. 그런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정 행정사가 한 말은 “농로 옆에 붙은 땅을 시에 기부채납하고 도로를 내면 좋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옆집 아저씨를 위해서 땅을 시에 갖다 바치라는 것이었다. 주무관이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다는데 정말 형님-동생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나는 행정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해결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시청에 가서 정보공개청구를 요구했는데 담당자가 거부해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거부 사유는 “주식회사라서 영업기밀상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해당 담당자는 공사 승인을 내준 박 주무관이었다. 원자력발전소 설계도면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까짓 창고와 관련한 서류를 달라고 한 것인데 그렇게 나온 것이었다.

  

행정사를 거치지 않고 혼자서 하려니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일단은 민원을 계속 넣었다. 민원을 넣다보니 요령이 늘었다. 어른들은 컴퓨터를 잘 못 다루기도 하고 서신으로 하는 것이 더 격식이 있다고 생각해서 종이에다 뭘 써서 하려고 한다. 그런데 민원은 전자민원으로 넣는 것이 간편하고 효과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민원 답변이 24시간 이내로 오기도 한다. 나는 혹시나 담당 공무원에게 영향을 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항상 담당 기관이 아니라 담당 기관의 상위기관으로 민원을 넣었고, 담당자의 이름과 개발행위허가서 몇 호인지를 반드시 명시했다.

  

똑같은 내용으로 반복해서 민원을 넣으면 악성 민원인이 된다. 왜 악성 민원인이 되는가? 보통은 민원 한 통에 모든 억울한 사연을 다 때려넣는다. 한 방에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담당 공무원은 대충 답변하고 만다. 민원인은 만족스러운 답변을 못 받았으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으니 딱히 다른 할 말이 없다. 억울한데 딱히 다른 할 말이 없으니 같은 말을 한 번 더 쓴다. 그렇게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민원으로 넣는 악성 민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악성 민원인이 안 되려면 민원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우선 한 대상에 대한 여러 측면을 초점을 맞추고 민원 한 통에 한 가지 측면만 써야 한다. 그렇게 여러 측면에 대한 여러 통의 민원을 쓴 다음에는 그 대상과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 관한 민원을 쓴다. 그렇게 또 민원을 여러 통 쓴 다음에는 그와 유사한 사례를 가까운 지역에서 찾아서 민원을 넣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서 원래의 대상에 대하여 새로운 내용으로 민원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민원을 주고받다가 시청의 감사관으로부터 놀라운 답변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 건축허가를 내줄 때는 농로에 1.0m×1.0m 콘크리트 개거수로를 설치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800mm 흄관이 일부 구간에 매설되었다는 것이었다. 개거수로는 위가 뻥 뚫려 있는 ㄷ자 모양의 수로다. 그러니까 시청에서 건축허가를 내줄 때 농로 한가운데에 수로를 내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공사를 허가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서야, 왜 설계사가 어머니한테 “원래 땅을 다시 안 메워줘도 되는 건데 파이프만 묻고 메워준다고 하지 않느냐. 뭐가 문제냐?”라고 말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애초에 개거수로로 공사허가를 내주었는데 흄관 매설을 해주니 감사하게 알라는 것이었다. 허가민원2과의 주무관이 답변할 때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없었는데 감사관이 답변하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

  

우수관이 원래 흄관이 아니라 개거수로로 공사허가가 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관계자와 따로 약속을 잡은 것은 아니었고, 한국농어촌공사에 하도 민원이 들어오니까 담당 공무원의 상급자가 현장에 나왔다가 나를 만난 것이었다. 내가 개거수로 이야기를 꺼내니까 관계자는 개거수로를 농로에 매설한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닌데 요즈음에는 거의 쓰지 않는 방법이라고 알려주었다. 예전에는 개거수로를 묻은 다음에 통행을 위해 콘크리트 덮개를 덮는 방법을 쓰기도 했는데, 인도가 아니라 농로다 보니 농기계가 다니다 콘크리트 덮개가 자주 파손되었고, 그래서 1990년대 이후로는 농로에 개거수로를 거의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였다. 아무래도 창고 짓는 쪽에서 농로를 도로로 사용해서 이 일대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 같다, 시청에서 농로 사용 허가해달라고 해서 허가를 내주기는 했는데 시청에서 잘못했다, 나 같으면 허가를 그런 식으로 안 내준다 등등. 이 일과 관련하여 시청 이외의 다른 기관 공무원들을 몇 번 만났는데, 그들은 모두 시청이 일을 잘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관계자는 “일단 민원 답변을 하겠지만 상부에는 민원이 다시 올 것 같다고 보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개거수로에서 흄관으로 바뀌게 된 것인가? 한국농어촌공사에 민원을 보냈다. 시청과 달리 농어촌공사에서는 민원에 대한 답변을 빨리 보냈다. 민원 답변에 따르면, 시청에서는 건설업자가 농로에서 개거수로를 설치하도록 건축허가 내주겠다고 했고, 농어촌공사는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농로에 개거수로 대신 흄관으로 묻도록 변경해달라고 시청에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시청에서 공사 관련해서 요청이 들어오면 이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흄관 매설이 최선이었다고 한다.

  

농로 한가운데에 개거수로를 설치하는 것은 말이 안 되며 관련 공무원이 이를 모를 리가 없는데, 왜 시청에서는 농로에 흄관이 아니라 개거수로를 설치하는 것을 허가했을까? 내 추측은 이렇다. 규정상 농로는 폭이 3미터이어야 하는데, 옛날에 만든 농로는 폭 3미터 미만인 곳이 중간중간에 있고 직선이 아니라 곡선인 부분도 많다. 이런 곳은 중장비가 들어올 수도 없고 흄관을 묻을 수도 없어서 지적도만 보아도 흄관 매설을 허가할 수 없다. 그런데 콘크리트 개거수로를 설치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폭 1미터, 깊이 1미터만 땅을 파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청에서 개거수로를 설치하는 걸로 건축허가를 내면, 한국농어촌공사에서는 흄관으로 바꾸어달라고 요청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농로에 흄관을 묻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흄관을 묻을 작정이었는데 흄관 매설을 허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허가받기 위해 시청에서 일부러 말도 안 되는 허가를 내주고 한국농어촌공사를 이용해 개거수로를 흄관으로 바꾸도록 유도한 것이 아닌지 정황상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런 의혹을 민원으로 시청에 제기했는데도 시청에서는 개거수로에서 흄관으로 설계 변경했으니까 문제없다는 답변만 했다. 나는 개거수로로 허가가 난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서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느냐고 묻는 것인데, 시청은 그런 식으로만 답변했다. 물론, 그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게 답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시청과 지루하게 민원을 주고받던 올해 2월 초, 법원에서 무슨 서류를 집으로 보냈다. 아버지를 상대로 한 방해금지가처분 신청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공사 방해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면서 공사를 방해하면 1회당 500만 원을 물어내도록 소송을 건 것이었다.

  

공사업체는 소송을 걸기 전까지 우리집과 타협하거나 대화하려고 시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와서는 땅을 파고 흄관 몇 개를 묻었고, 그 이후에도 예고 없이 찾아와서 공사를 시도하다 제지당한 것이 세 번이다. 그러고 나서 내용증명을 보냈고, 내용증명을 보냈는데도 반응이 없자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했다. 그들은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을까? 왜 양해도 구하지도 않고 매수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만큼 시골 사람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11월 어느 주말에 어머니는 농로 주변을 돌아다니던 건설업자들을 발견하고는 그들에게 따졌다. 어머니는 건설업자들에게, 예전에 왜 우리에게 말도 없이 경계 측량을 하고 자기들 유리한 쪽으로 빨간 말뚝을 몇 개 없앴느냐, 우리가 너희 때문에 돈을 들여서 측량을 다시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건설업자들이 눈이 똥그래져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측량을 했다구요?” 측량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렇게 놀랐다는 것은 시골 사람들은 측량 신청도 못 할 정도로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시골에 사는 노인들은 측량 신청을 어디에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마도 시골 노인들은 내용증명만 받아도 감옥 가는 줄 알고 건설업자한테 먼저 연락해서 싹싹 빌고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했을 것이고, 업자는 그런 식으로 쉽게 사업을 해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설날 연휴 직전에 법원 서류를 받고, 나는 그 동안 미루어온 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토지 경계를 따라 나무를 심는 일이다. 나무를 심어놓으면 경계 표시가 확실해질 뿐만 아니라 나무를 훼손하는 즉시 재물손죄죄가 적용되기 때문에 건설업자들을 합법적으로 막을 수 있다.

  

나무 심기는 2019년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나무 심는 시기를 놓치면 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예 묘목 자체도 구하기 어렵다. 2019년에 일이 시작되었을 때는 이미 나무 심는 시기를 지났을 때였고 2020년에도 이것저것 하다가 나무 심는 시기를 놓쳤다. 다행히 올해 2월 설날 연휴에는 나무를 옮겨 심을 수 있었는데 세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명절이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아무도 우리집에 찾아오지 않아 시간을 낼 수 있었고, 겨울이지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가 계획 없이 아무데나 나무를 심어놓았기 때문에 옮겨 심을 나무가 충분했다.

  

아버지가 심은 나무를 캐서 연휴 내내 농로 옆에 옮겨 심었다. 연휴라서 인부를 사서 일을 할 수도 없었고 어머니나 아버지나 나무 옮겨 심는 일을 시킬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나무를 옮겨 심을 정도로 체력이 좋지 않았고(사실 웬만한 여성은 하기 힘들다), 아버지는 내가 시키는 대로 일을 못할 것이라서 아예 처음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다(체력은 가능하지만 일을 못한다). 하여간 연휴가 끝난 뒤에 농로 입구를 따라 나무 길이 생겼다. 아마 공사업자 입장에서도 황당했을 것이다. 분명히 며칠 전까지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 며칠 만에 나무 길이 생겼으니 말이다.

  

  

  

   

나무 길이 생기면서 게임은 끝났다. 올해 3월에 지방법원에서는 아버지한테 공사방해를 하지 말 것이며 앞으로 공사방해를 하면 1회에 500만 원씩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그런데 그러든 말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공사업자가 중장비를 끌고 아예 우리 땅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공사를 방해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응급조치로 나무 길을 만든 다음에 추가로 나무를 더 심었다. 그렇게 모두 60그루 넘게 심었고, 심은 나무가 거의 다 살았다. 심은 묘목이 금방 죽었다면 공사업자들이 어디서 작대기를 땅바닥에 꽂아놓았다고 했을 것인데, 내가 심은 것은 비교적 큰 나무였고 그게 거의 다 살았기 때문에 업자들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농로 옆에 땅은 내 땅이고 내가 내 땅에 나무를 심었는데 어쩔 것인가. 그렇게 창고 우수관 공사는 3년째 진행되지 않고 있고 다 지은 지 몇 년 된 연립주택은 아직도 분양을 못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업자들은 나름대로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정작 이 난장판을 만든 공무원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 그 동안 해당 부서 담당자가 두 번 바뀌었고 건설허가를 내준 공무원은 다른 부서에서 잘 지내고 있다. 어떻게 해야 관련 공무원을 족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받은 배수계획도를 보니, 내가 2년 전에 한 추측과 실제 배수 계획이 정확히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창고 우수관이라고 만든 다음에 우수관 옆구리를 뚫고 연립주택 하수관을 이어붙이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허가도 무리하게 내고 공사도 무리하게 하던 것이 다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청에서는 이게 합법적인 것이며 규정상 문제도 없다고 말한다.

  

  

  

LH 직원들이 개발 정보를 빼돌려서 투기하고 아예 회사를 세우기도 하고, 전직 공무원과 현직 공무원이 결탁해서 뭔 짓거리를 하고, 하여간 전국이 부동산 투기로 난장판이 나는 와중에, 이렇게 소소한 일에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그렇지만 해당 공무원이 멀쩡하게 공직 생활을 하고 공무원 연금을 타먹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민원을 넣는 것으로는 무엇을 더 진척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니, 일단은 지역 언론사와 접촉하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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