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을 보면서 정말 천운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싶었다. 주요 대선 주자들은 죄다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알아서 자빠졌지, 올망졸망한 잠재적 경쟁자들은 크지 않지, 무언가 안 좋은 것에 많이 얽혀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리저리 잘 피해 가지, 테러를 당했는데도 살아남지, 그러다 윤석열이 계엄을 일으켜서 판을 깔아주지, 이것이 어떻게 천운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잘 나가던 정치인들이 삐끗해서 날아가는 것이 예사인데 이재명은 그것을 모두 피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특히나 결정적인 것이 계엄이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이재명을 좋아했고 지난 대선과 이번 대선 모두 이재명에게 투표했다. 그런 어머니도 이재명에게 분명히 무슨 큰 죄가 있기는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머니를 보면 마치 드라마 <카지노>의 차무식(최민식)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차무식을 응원하는 시청자와 비슷해 보였다. 나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이재명에게 무슨 죄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라에 내란이 터졌는데?
5.16 군사반란 때는 총리가 도망갔고 12.12 군사반란 때는 국방부 장관이 도망갔다. 12.3 계엄 때는 제1야당 대표가 국회로 달려갔다. 예전부터 이재명이 깡패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 도망가는 샌님이 아니라 깡이 있는 깡패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재명이 깡패와 연루된 것이 아니라 그냥 깡패라고 치자. 그래서 어쩌라고? 깡패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이번 대선에서 나는 권영국 후보를 찍었다. 민주당 이재명과 국민의힘 김문수가 박빙이었다면 이재명을 찍었겠지만, 이재명이 대통령 되는 선거라서 권영국 후보를 찍었다.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아는 사람을 통해 어떤 정책이 있는지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이런 정책은 왜 냈나 싶은 것도 몇 개 있었던 것 같다. 어차피 대통령 되지도 않을 것이고 원외 정당이 정책을 잘 짜봐야 얼마나 잘 짜겠는가 싶었다.
나는 아직도 정의당 당원이다. 2017년 4월에 입당했다. 박사과정에 입학하면 사회운동 단체의 회원이 되거나 정당의 당원이 되어야겠다고 석사과정 때부터 생각하기는 했다. 석사학위를 받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2017년 3월에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4월에 정의당에 입당했다. 정강이나 정책을 따로 보고 입당한 것은 아니다. 학부 선배가 정의당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입당을 결심했다. 메신저를 보지 말고 메시지를 보라는 말이 있는데, 메시지를 판독할 능력이 없으면 메신저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정의당에 입당했다.
정의당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얼핏 봐도 무슨 염병짓을 계속하는 것 같았다. 결국 당이 개판 났고, 원외 정당이 되었다. 6만 명에 이르던 당원이 1만 명대로 떨어졌다. 그럴 만했다. 당이 빚더미가 앉았다는 소식이 들렸더니, 당원들에게 빚 좀 갚게 후원금 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 헛짓거리하다 빚더미에 앉아놓고 돈 달라니. 나는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당비 이외에 한 푼도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대통령 선거가 열렸고, 정의당이 민주노동당이 된다고 하더니 권영국 변호사가 후보가 되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권영국 변호사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분이라는 이야기는 얼핏 건너 들었다. 망한 당에서 고생한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정의당에서 일하던 학부 선배가 민주노총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 선배가 단체카톡방에 유인물 하나, 현수막 하나 보탠다는 마음으로 권영국 후보 후원금을 내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메시지를 모르겠으면 메신저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권영국 후보 캠프에 후원금을 보냈다. 내 재산이 소액이라 후원금도 그에 맞게 소액을 보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민주노동당(정의당)이 무언가 신통한 것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정책 하나 만들려고 해도 그게 다 돈이다. 정책보고서 한 편 써내라고만 해도 300만 원 정도 든다. 원내 정당이면 그 돈이 국회 사무처에서 나오는데, 원외 정당이면 그런 돈이 나올 구멍이 없다. 정책보고서 한 편으로 정책 하나가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닌 데다, 정책을 만든다고 해도 사실상 무급 봉사로 인력을 써야 할 판이다. 그 인력은 또 어디서 구하나? 내놓는 정책이 약간 허술해 보이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하고, 원내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돈을 내놓든 표를 내놓든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준석의 정책이나 토론을 돌아보면 더더욱 역겨울 수밖에 없다. 마치 맨바닥에서부터 정치를 시작한 척, 주류 기득권에 저항하는 청년인 척 하지만, 아버지 친구는 유승민이고 발탁한 사람은 박근혜다. 국회의원 선거에 세 번 떨어지기는 했지만 비대위원이니 뭐니 하며 정치권에서 10년가량 있었고, 명태균의 실력인지는 모르겠으나 제1야당 대표가 되었고 정권이 바뀌어 여당의 대표가 되었다. 쫓겨나서 차린 정당은 의석 세 개를 건진 원내 정당이 되었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만큼은 아니더라도 원외 정당인 민주노동당(정의당)보다는 정책을 만들기 훨씬 좋은 조건이다. 이준석이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내놓은 정책을 보자. 청년 정책? 없다. 저출산 대책? 없다. 환경 정책? 없다. 외교・통일 정책? 없다.
대통령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대통령 선거를 왜 나왔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으니 명태균 관련 수사를 피하고 싶어서 선거에 나왔는지는 알 수 없고, 이준석이 대외적으로 말한 것만 보자. 이준석은 “여러분의 자녀도 이준석 될 수 있다”며 “열심히 노력해 그 자녀가 나중에 당 대표도 할 수 있고, 국회의원도 할 수 있고 대통령까지 될 수 있는 서사와 사다리가 대한민국에서 유지되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왜 이준석의 스펙을 만들어주어야 하는가? 어디서 접대받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 자리를 거저 받으려고 하나?
나는 어차피 누구를 뽑을지 정해놓았기 때문에 대선 토론회 전체 영상을 따로 찾아보지는 않았다. 이준석이 핵융합 같은 소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튜브에서 그 부분만 찾아보려고 했는데 못 찾았다. 그 대신 이준석이 기후・환경 관련하여 1분 40초가량 토론회에서 말하는 영상을 보았다. 이준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페에 가보면 종이 빨대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탄소 배출이 더 많고 인체에도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고집으로 종이 빨대를 강제하더니 플라스틱 빨대 생산 기업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또 정책이 바뀌어서 이번에 종이 빨대 생산업체들이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2002년 청성산 도롱뇽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터널이 생기면 도롱뇽이 피해를 입는다면서 어느 스님이 단식 농성을 하는 바람에 시공업체는 140억 가까운 피해를 보았습니다. 고속철 개통은 1년 넘게 지연되었습니다. 결국 터널은 뚫렸지만 생태계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환경과 기후 대응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환경 PC주의는 국가 정책을 왜곡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줍니다. 대통령이 재난영화 한 편 보고 감동해서 시작한 탈원전 정책은 전국의 농지와 임야를 태양광 패널로 바꿔 놓고, 운동권 마피아들이 태양광 보조금을 받아 흥청망청하다가 결국 사법처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준석 정부는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비-과학적인 환경주의가 아니라 과학과 상식, 그리고 국제적 기준에 입각한 합리적 기후 정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환경 정책 같은 것은 준비하지 않았다는 말을 “비-과학적인 환경주의가 아니라 과학과 상식, 그리고 국제적 기준에 입각한 합리적 기후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대충 뭉갠다. 대충 뭉개려고 종이 빨대, 청성산 도롱뇽, 태양광 패널을 사례로 가져온다. 종이 빨대? 이상하다. 농지와 임야를 덮은 태양광 패널? 그것도 문제가 많다. 그런데 개별 사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있는 거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국제적 기준에 입각한 합리적 기후 정책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이준석이 든 세 가지 사례 중 청성산 도롱뇽 사건은 적절한 사례인지도 의심스럽다. 터널 공사가 잘못되면 지하수가 유출되어 인근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 학술 자료를 따로 찾아볼 필요도 없이 뉴스만 봐도 관련 사례가 나온다.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잇는 죽령터널을 뚫고 나서 그 일대 계곡물이 사라지고 지하수가 말랐다. 터널 공사 전 시공사는 유출 지하수를 하루 평균 1,500톤으로 예측했는데 실제 유출량은 9,000톤이었다. 시공사는 지하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차수 공법을 쓴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 과태료 1천만 원만 내면 끝인 데다, 그러한 불법 행위는 여간해서는 걸리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2022년이니, 그로부터 20년 전에 터널 공사로 인한 지하수 유출을 우려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준석은 이를 두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환경 PC주의”라고 했다.
과학적 근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칠불사에서 오밤중에 홍매화를 왜 심었는지나 과학적으로 설명해라.

* 링크(1): [세계일보] 이준석 “여러분 자녀도 이준석 될 수 있다… 서사와 사다리 지켜야”
( www.segye.com/newsView/20250512506193 )
* 링크(2): [KBS] 이준석, 빨대・탈원전 비난…“과학적 상식대로 환경정책 재시작” / 2025.05.23.
( www.youtube.com/watch?v=nyd7VyHhmCQ )
* 링크(3): [jtbc] 국립공원 터널 뚫은 뒤 갑자기 말라버린 ‘소백산 지하수' / 2022.09.
( https://news.jtbc.co.kr/article/NB12081098 )
* 링크(4): [더퍼블릭] ‘주술’ 논란 이준석, 홍매화 심는 사진 공개
( www.thepublic.kr/news/articleView.html?idxno=265428 )
(20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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