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도 수준도 안 되는 것 같은데 자기가 인문학자나 인문학 연구자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그만큼 관심이 많아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들이 인문학을 그만큼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자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모르더라도 대충 어떤 사람들인지는 감을 잡고 있다. 그래서 과학에 조금 관심이 있다고 해서 과학자를 자처하지 않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경제학자를 자처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인문학은 예외다. 개나 소나 인문학자를 자처한다. 이건 일요일에는 짜파게티 요리사니까 나도 요리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전국의 짜파게티 요리사들은 왜 요리사를 자처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요리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전문가라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요리 솜씨가 전문가의 솜씨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안다. 게다가, 요리사와 관련하여 자격증 제도도 있고, 자격증에는 급수도 있다. 그러면 인문학은? 개나 소나 인문학자를 자처한다는 것은,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자를 자처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인문학자의 정의는 무엇인가? 얼마나 배워야 인문학자로 취급받을 수 있는가? 박사 학위가 없으면 인문학자도 아닌가? 그들은 인문학자의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인문학자라고 선언하겠다고 엄포를 놓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엄포에 쫄아서, ‘어? 학자의 정의가 뭐지? 쿤의 『구조』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거 같은데?’ 하는 식으로 생각하면 그들의 개수작에 휘말리게 된다.
인문학자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그래서 무슨 연구를 하시는데요?” 연구 활동을 한다면 연구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이 추상적 대상이든 구체적 대상이든 대상이 있을 것이다. 연구 대상이 없으면 당연히 연구자도 아니다.
내가 과학자를 자처한다고 해보자. 누군가가 나에게 무슨 연구하냐고 물었을 때 내가 밑도 끝도 없이 “과학하는데요”라고 답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대화는 대충 이렇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니까 뭘 하시는데요?”
“과학한다구요.”
“아니, 물리학이든 생물학이든 화학이든 있을 거 아니에요?”
“제가 얼마나 과학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는지 아세요? 과학 책 읽을 만큼 읽었고, 일반물리, 일반생물, 일반화학, 다 들었는데요? 저 과학자들하고 많이 친한데요?”
대화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아무리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아, 이 새끼 과학자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세상에 연구 대상도 없는 연구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자칭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은 그래도 된다고 말한다.
미친 놈 설정을 끝까지 밀고나간다고 해보자. “과학이 대학에서는 세분화되어 있지만 원래는 하나입니다. 그건 아시죠?”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은 하나다. “과학의 핵심은 과학정신, 합리성 아닙니까? 과학자들은 과학 많이 해서 과학 정신이 있나요? 매사에 합리적인가요? 실험 재현 안 되면 징크스 때문에 수염 안 깎고 안 씻는 사람 있는 것도 내가 알아요. 과학 하면 뭐합니까? 과학 정신도 없는데.” 내가 내 정신도 모르겠는데 과학 정신 같은 게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과학자가 과학이나 잘하면 되지 과학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그딴 걸 왜 신경 써야 하는가. 그런데 과학 정신을 인문 정신으로, 합리성을 저항으로 바꾸면 자칭 인문학자들이 하는 말이 된다.
학자나 연구자들은 박사 학위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학위가 없어도 연구자와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문영 작가라고 한다. 이문영 작가는 『환단고기』를 비롯한 사이비 역사학이 어떻게 성립했는지 등에 관하여 연구자나 준-연구자급이라고 하며, 역사 전공자들도 이문영 작가에게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한다는 이야기를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이문영 작가는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정식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학위가 없다고 자칭 인문학자들을 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자가 아니니까 인문학자가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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