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하느라 전자담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담배의 유해성 논쟁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면서 생각보다 논쟁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적으로 담배는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가리킨다. <국민건강증진법>은 담배를 궐련(일반담배), 전자담배, 파이프담배, 엽궐련, 각련, 씹는 담배, 냄새 맡는 담배, 물담배, 머금는 담배, 이렇게 9종으로 분류한다. 우리가 흔히 담배라고 부르는 불 붙여 피우는 것은 ‘궐련’이라고 부른다. 전자담배는 “니코틴이 포함된 용액 및 연초고형물을 전자장치를 이용하여 호흡기를 통하여 체내에 흡입함으로써 흡연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든 담배”를 가리키며, ‘액상형 전자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를 모두 가리킨다.
대한의사협회 등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와 궐련형 전자담배라는 명칭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제품군은 작동 원리도 다르고 배출 물질도 다른데 둘 다 전자담배라는 이름이 붙이면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준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전자담배’로, 궐련형 전자담배를 ‘가열담배’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전자담배의 작동 원리도 다르고 배출 물질도 다르다 보니, 두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관한 논의도 다른 범주에서 진행된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액상 첨가물질과 관련된 폐손상을 두고 논의가 진행된다. 실제로,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폐 손상의 원인으로는 추정되는 것은 액상에 첨가한 대마 성분 액체인데, 액상에 이상한 것을 넣어 흡연하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뿐이고 그로 인한 폐 손상 환자가 발생하는 국가도 사실상 미국뿐이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오염 물질을 매우 적게 배출한다는 것도 대체로 맞는 것 같다. 이와 달리, 궐련형 전자담배는 궐련(일반 담배)보다 오염 물질이 적은 것도 아닌데 오염 물질이 적다고 광고하는 것 아니냐는 데서 논쟁이 비롯된다.
액상형 전자담배나 궐련형 전자담배나 둘 다 전자담배라고 불린다는 점을 이용해서 기업들이 밑장빼기를 하기도 한다. 궐련형 전자담배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에서는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궐련형 전자담배가 기존의 일반 담배보다 안전하다면서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 물질 배출량을 제시한다.
회사만 밑장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학술논문에서도 밑장빼기를 한다. 분명히 알만큼 아는 분들이 미국 FDA의 결정을 언급하며 밑장을 뺀다. 밑장빼기 하는 논문이 있다 보니까 밑장빼기를 잡아내는 논문도 있다. 그 논문의 서론과 결론만 읽어도 저자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논문 저자들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논문 맨 앞부분에 “저자들은 이 기고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해상충이 없음을 밝힌다”라는 문구를 넣고, 논문 앞부분에 그러한 문구도 넣었다는 사실을 논문 중간에서 다시 강조하기도 한다. 밑장빼기 하는 논문에는 당연히 그런 문구는 없다. 그러한 논문들이 인용하는 자료는 담배회사들의 실험 결과다.
또 다른 밑장빼기 수법은 흡연량과 질환의 관계가 직선 관계가 아니라 포물선 관계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전자담배를 제조-판매하는 기업들은 전자담배가 배출하는 오염 물질이 기존 일반 담배의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담배회사는 오염 물질의 양과 위험성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연구 중에는 하루에 담배를 한 갑 피우던 사람이 반 갑으로 줄이면 심혈관질환의 상대위험은 1.8에서 1.6으로 줄어든다는 것도 있다. 흡연량이 50% 감소해도 질병의 상대위험은 11%만 감소한다는 것이다. 1일 흡연량보다 중요한 요소가 흡연기간이라는 연구도 있다. 오염 물질이 많이 나오는 담배를 단기간 흡연하고 끊는 것보다 오염 물질이 적게 나오는 담배를 장기간 흡연하는 것이 건강에는 더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담배 성분 분석방법도 밑장빼기로 의심할 만한 하다. 담배 성분 분석방법으로는 ISO(국제표준기구) 분석법과 HC(Health Canada) 분석법이 있다. ISO 분석법은 기존의 분석법이고 HC 분석법은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분석법이다. 두 분석법의 결정적인 차이는 필터 천공부분 개폐 여부에 있다. 담배 필터에는 작은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배출물질을 포집할 때, ISO 분석법에서는 이 부분을 안 막고 포집하고 HC 분석법에서는 이 부분을 막고 포집한다. 흡연자들이 흡연할 때는 검지와 중지로 이 부분을 잡는데, HC 분석법은 이러한 흡연자들의 습관을 반영한 분석법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선수들이 밑장빼기를 하고 밑장을 빼면 소리부터 다르다며 싸우는 와중에, 조용히 광을 팔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흡연 문제에 대한 과학적 논쟁이 포착 못하는 것을 인문학적 탐구로 포착한다는 주장하는 연구가 그것이다(다행히 철학은 아니다). 길지 않은 한국어 논문인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세 번 읽어봤지만 무엇을 포착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염의 경계선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인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그걸 탐구하면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한 사회의 오염에 대한 기준(경계선)이 외적 혐오감이나 위생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통제를 위해 상징적으로 선택된 것으로 본다는데,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해롭지 않아도 오염물질이 된다고 하는,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이야기를,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과학을 100% 믿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 100% 믿을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전자담배 유해성 논쟁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 그나마 과학이 더 믿을만해 보인다. 통계 자료를 조작하고 측정 방법에 속임수를 쓴 경우는 어떤 조작을 하고 어떤 속임수를 썼는지를 밝힐 수 있지만, 통계조차 쓰지 않은 글에서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하면 무엇을 어떻게 밝혀야 할지, 그런 것을 밝힐 가치가 있기는 한지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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