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박사는 <한겨레>에 기고한 “코로나 시대의 인문학”라는 칼럼에서, “코로나19가 가속화시킨 교육의 디지털화 현상에서, 가장 큰 압력을 받을 분야는 인문학”이라고 주장한다. 왜? “비싼 장비와 실험재료 그리고 여러 해에 걸친 도제식 교육이 필요한 과학기술 분야와, 주로 텍스트 독해와 강독 등으로 구성된 인문학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우재 박사는 인문학을 걱정하는 척 하면서 또 이렇게 인문학에 시비를 건다.
대학들이 인문대를 정리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코로나19를 맞아 큰 압력을 받는다는 것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과를 날리는 것과 학과 자체는 두고 인건비만 줄이는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학과를 날리기로 했다면 코로나19고 뭐고 간에 그냥 날리면 된다. 코로나19가 터졌다고 인문대를 날린다는 건 너무 뜬금없어 보이지 않는가?
인건비를 줄이기 쉬운 곳은 따로 있다. 교재와 수업과 평가가 표준화된 학문이 인건비 줄이기는 더 쉽다. 경제학을 생각해보자. 여러 학교 경제학과 커리큘럼을 비교해보면 같은 과목에서 학습량 차이가 있을 뿐 배우는 내용이나 교재는 비슷하다. 경제학과에서 토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실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고시나 공무원 시험 때문에 이미 사교육 시장에서 원론, 거시, 미시, 국제경제학 등을 공급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코로나19 이후에 인문대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곳은 경제학과일 것이다. 아마 수학과도 만만치 않게 타격받게 될 것이다. 이와 달리, 인문학은 원래 위기라서 더 타격받을 것도 없다. 그런데 김우재 박사는 유독 인문대에 초점을 맞춘다. 왜? 김우재 박사의 본심은 글의 뒷부분에 나온다.
“오래전부터 국내 학자들이 떠들어온 인문학의 위기란, 기껏해야 대학 인문학의 위기였을 뿐이고, 그조차도 자세히 파헤치면 대학 인문학 교수들의 일자리 위기였을 뿐이다. [...] 이제 인문학은 학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학 밖으로 나가야 한다. 기실 오래전부터 인문학은 대학 밖에서 새로운 실험을 모색 중이기도 했다. 대학에 머물고 싶다면, 인문학은 사활을 걸고 변질된 대학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니까 이 참에 인문학은 대학 밖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김우재 박사가 인문학을 얼마나 졸로 보는지 또 한 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문학이 대학 밖으로 나간다고 치자. 그러면 대학마다 있는 박물관은 누가 관리하고 운영해야 하는가? 규장각에는 아직까지 정리 안 된 고문서들이 쌓여있고 새로 발견되는 고문서가 택배로 올라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 고문서들은 누가 정리해야 하는가? 학회들은 학술대회 개최나 운영과 관련하여 대학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데, 인문학 관련 학회들은 다 망해 자빠지라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강의를 강의실에서 하느냐 원격 화상으로 하느냐가 아니라, 대학에서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이다. 예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사람들의 수리 능력을 추정하는 연구가 있다. 경제 성장의 주요 요소로 꼽히는 중 하나가 교육인데 전-근대 시기는 정규 교육이 없기 때문에 이걸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러한 경제사 연구는 경제학과와 사학과에 걸쳐 있다. 조선시대 소득 수준에 관한 연구도 두 학과에 걸쳐 있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 급제자의 진급에 미친 요소에 관한 연구는 사학과와 사회학과에 걸쳐 있다. 청-조선의 외교 관계에 관한 연구는 동양사학과의 주제일 뿐 아니라 정치외교학과의 주제다. 인공지능이나 인지과학 쪽에서는 과학자들하고 철학자들이 같이 작업하기도 한다. 인문학이 대학 밖에 있다면, 인문학이 대학 안에 있는 것보다 인문학 연구자와 같이 연구를 하는 데 여러 면에서 비용이 늘어난다. 이런 연구를 하는 수준의 대학으로서는 인문학이 대학 내부에 있는 것이 대학 전체로 보았을 때 비용이 적게 든다.
물론, 인문학을 내세우지만 저런 게 왜 대학에 있어야 하나 싶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사료는 별로 보지도 않고 이데올로기 같은 소리나 늘어놓는 유사-사학이라든지, 수면 마취 받을 때 할 정도의 소리를 논문이라고 적어놓는 유사-문학이라든지, 철학과에서도 전혀 안 다루는데 어떻게든 철학이라고 우기는 유사-철학 같은 것들이 그렇다. 한국에 대학은 많고 미쳐 돌아가는 인문대들도 적지 않으니까 만나는 인문학 종사자들이 다 그 모양이었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만나는 인문학 연구자마다 다 이상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운이 없거나 정상적인 연구자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안목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인문대가 아프면 정상적인 연구자를 데려와서 인문대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이지 인문대를 대학에서 파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눈이 아프면 안과 가서 치료 받아야지 눈알을 파내지는 않는다.
김우재 박사가 인문학을 졸로 보는 또 한 가지 증거는 대학 밖의 인문학을 언급한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접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으나 그것이 대학에 기반한 전문적인 인문학을 대체할 수는 없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캠프가 많이 열리는 것이 과학에 좋은 일일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대학에 있는 과학을 대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대학 밖에 있는 인문학 단체란 노년에 접어들고 있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활력이나 심리적 안정을 주는 기능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학문적 기능은 거의 하지 않는다. 사실상, 대학 밖의 인문학 단체는 동네 탁구장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된다.
김우재 박사가 대학 밖의 인문학 단체가 어떤 곳인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김우재 박사는 인문학 대중화에 혁혁한 공이 있는 강 아무개 박사를 대학에서 교수로 채용하지 않는 점에서 대한민국 인문학이 썩었다고 한 적이 있다. 나도 그 강 박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인문학 대중화에 공이 있다고 해서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따라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학 대중화에 혁혁한 공이 있는 유튜버가 대학 교수가 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김우재 박사가 인문학을 이렇게 졸로 본다.
김우재 박사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그렇다고 치자. 진짜 큰 문제는, 김우재 박사의 이러한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교수들이 있다는 점이다. 어떤 선생님의 페이스북 글에서 본 것인데, 어느 학교 인문사회학부 발전방안 발표회에서 어떤 국문학 교수가 발제문에 김우재 박사의 의견과 비슷한 의견을 출처 표시 안 하고 써놓았고, 그걸 잡아서 토론에서 기선을 제압했다는 내용이었다. 학부생도 아니고 국문학 교수씩이나 되어서 인문사회학부 발전방안이라고 하면서 김우재 교수의 의견을 몰래 따올 정도라면, 그 학교에서 인문학을 가르친다고 한들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정도면 김우재 박사가 인문학을 졸로 보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만은 않다고 볼 수도 있겠다.
* 링크: [한겨레] 코로나 시대의 인문학 / 김우재
( www.hani.co.kr/arti/opinion/column/951480.html )
(20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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