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9

‘국가 싱크탱크’를 새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국가 싱크탱크’를 새로 만들자”는 <경향신문> 칼럼을 보자. 다음과 같이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 문단(1): 포스트 코로나는 높은 수준의 분석과 예측을 필요로 하지만 한국 사회가 보유한 지적 능력과 학문적 역량은 이에 대처하기에 불충분하다. 외국 석학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뻥쟁이라는 것도 이번에 드러났으니 그들에게 의존할 수도 없다.

- 문단(2): 포스트 코로나 담론의 네 가지 뻥쟁이 유형이 있다. 이들의 말은 듣지 말자.

- 문단(3): 미국, 중국, 유럽 국가들이 거덜 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회복력과 적응력이 다른 집단보다 클 것이다.

- 문단(4): 냉정한 유물론과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 문단(5):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국가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 문단(6): 고등교육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필요하다. 교육과 정책 기능을 함께 가져 융합 인재를 길러내는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 문단(7):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을 만들었을 때의 좋은 점들

  

이 글은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여 국가 싱크탱크인 국가인문사회과학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문단(3)은 글의 흐름과 무관한 뜬금없는 내용이므로 통째로 들어내도 된다. 사실, 문단(1), 문단(2), 문단(4)도 한 문단으로 줄이는 것이 낫다. 현재가 위기 상황이라고 하거나 더 큰 위기가 곧 온다고만 쓰면 된다. 굳이 그렇게 글을 늘려서 쓸 필요가 없다.

  

문단(5)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국가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의 국가 싱크탱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기존의 싱크탱크가 어떠했으며 어떠한 점이 미비했으며 어떤 미비점 때문에 어떤 위기에 대처하지 못했으며 어떤 점이 보완되어야 하는지 글에 나와야 한다. 글쓴이는 이 중에서 단 한 가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당연히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문단(6)에서는 “고등교육과 학술 정책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절실하다고 한다. 문단(3)은 뜬금없는 내용이고 문단(1), (2), (4)는 한 문단으로 줄여도 될 내용이고, 문단(5)는 주장만 있고 근거는 하나도 없는데 문단(6)에서는 뜬금없이 고등교육과 학술 정책 이야기를 한다. 왜? 글쓴이는 “학술진흥청” 같은 조직보다 “교육과 정책 기능을 함께 가져 새로운 융합 인재를 길러내는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술진흥청보다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이 더 좋은 이유도 역시나 글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이 있다. 교육과 정책 기능을 함께 가지는 것이 새로운 융합 인재를 길러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건 자유전공학부인가, 정책대학원인가?

  

새로운 국가 싱크탱크가 왜 필요한지도 모르고, 교육과 정책 기능을 함께 가지는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고, 그런 것이 생겼을 때 그 놈의 융합 인재가 어떻게 길러진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문단(7)은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이 생겼을 때의 좋은 점을 말한다. 도대체 어떤 점이 좋은가?

  

그것은 곧 부패한 학벌체제와 장삿속에 빠진 대학을 넘고, 586세대의 세계인식 수준을 넘는 집단지성의 새로운 육성과 제도화일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학 중심 대학체제와 재벌의 사회 지배를 생각하면 독립적이고 공공적인 제도화의 역할을 일단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 대신 거기엔 교주(校主)의 전제와 관료의 간섭이 없고, 학과 팻말과 학벌·젠더 차별 없이 열린 연구실과 세미나실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아이디어가 빚어져야 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 벽은 물론 문·이과 분리도 없어야 한다. 이는 재식민화되고 있다는 한국 사회과학과 영락의 길에서 허덕이는 인문학을 살려 시민들에게 복무하기 위한 길이며, 교육과 앎으로써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 방도이다.

  

“부패한 학벌체제와 장삿속에 빠진 대학을 넘”는다고 한다. 그딴 거 만들 돈이 있으면 국공립대에 예산을 더 지원하는 게 효과적이겠다. “586세대의 세계인식 수준을 넘는 집단지성의 새로운 육성과 제도화”가 된다고 한다. 고등인문사회과학원 원장은 파격적으로 40대가 하려나보다. 글쓴이는 그런 곳에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이 벽은 물론 문・이과 분리도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어국문학과에서 어문 전공과 문학 전공이나 친하게 지내고 나서 그런 말을 해야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재식민화되고 있다는 한국 사회과학과 영락의 길에서 허덕이는 인문학을 살려 시민들에게 복무하기 위한 길이며, 교육과 앎으로써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 방도”라고 한다. 무슨 수로? 역시나 그에 대한 근거는 나오지 않는다.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을 만들자는 이 칼럼은, 역설적이게도 고등인문사회과학원 같은 것을 절대로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을 만들면 이사회와 관료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 “학과 팻말과 학벌・젠더 차별 없이 열린 연구실과 세미나실에서 자유로운 토론”이나 하면서 아무 근거 없이 고등인문사회과학원 같은 거나 만들자는 식으로, 세상의 모든 사안에 대해 아무나 하고나 만나서 아무 소리나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몽상가들의 잡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책에 반영된다고 생각해보자. 코로나19는 일시적인 재난이지만 고등인문사회과학원은 상시적인 재난이 될 것이다.

  

  

* 링크: [경향신문] ‘국가 싱크탱크’를 새로 만들자 / 천정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7080300015 )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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