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8

학위와 자신감

   
예전에 아르바이트 하러 가는데 늦어서 택시를 탄 적이 있다. 택시기사는 어머니 또래로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운전 중간에 휴대전화로 전화가 와서 택시기사는 나에게 양해를 구한 뒤 통화를 했다. 손자 교육 관련된 통화인 것 같았는데, 송도 신도시에 있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1년 교육비가 2천만 원이 든다는 내용이었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서 생각했다. ‘저 집 손자는 유치원생인데 박사과정생인 나보다 교육비가 더 들어가네.’
  
택시기사는 통화가 끝나고 나서, 자신이 원래 교사였는데 정년퇴직 후 택시기사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내가 대학원 다닌다고 대답하자, 택시기사는 자기도 대학원을 다녔다면서 대학원 다니느라 힘들었다, 학위 받는데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석사나 박사 학위를 취득한 교사에게는 교장 진급하는 데 가산점 같은 게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택시기사는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월급이 늘어나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그것도 아니라고 답했다.
  
나는 교사가 학위를 받으면 진급하는 데 가산점이 붙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아니고서는 학문적으로도 도움이 안 되고 교육 현장에서도 도움이 안 될 그 수많은 교육학 학위 논문들이 배출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학위가 진급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니. 전직 교사에게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연구 점수를 꼭 석박사 점수 따지 않아도 되어서 그 택시기사분이 진급과 무관하게 대학원에 갔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받는 거지? 당시 나는 약간 얼떨떨해서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대학원에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택시기사는 답했다. “그냥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택시기사는 곧 이어서 말했다. “학위 받으면서 정말 힘들었는데 받으니까 보람이 있었어요. 확실히 도움이 되기는 됐어요.”, “어떤 도움이요?”, “자신감이요. 학위를 받으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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