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1

인문대 글쓰기의 두 편향

   
학부 글쓰기 수업에서 학생들을 면담하면서 논증의 중요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가져온 논증 에세이 기획서를 검토하면서 한 말이다.
  
논증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는 아마도 역설일 것이다. 역설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했다. 왜 그런가. 타당한 논증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제가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인 것 같고 결론도 전제들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 같은데 결론이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서 결론을 내다버리고 싶지만 그 결론은 전제들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었다. 전제들도 하나하나 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무시할 수도 없다. 받아들일 수 없고 받아들이기 싫은데도 타당한 논증처럼 보여서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인문대 학부생들의 글쓰기에 나타난 두 편향도 결국은 논증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십몇 년 전 내가 학부 다닐 때는 학교에 정상적인 글쓰기를 가르치는 수업이 거의 없었다. 학부생들의 필수교양 수업인 글쓰기 수업은 처참한 수준이었고, 전공 수업도 나을 것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글 쓴다고 뻐기는 사람들은, 특히나 문과대 학생들은 아무 내용도 없는 것을 매끄럽게만 쓰거나, 꼭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쓴 것처럼 이해할 수 없게 쓴 글을 썼다. 왜 그랬을까. 왜 이러한 양극단이 나타났을까. 
  
전자의 경우는, 논증적 글쓰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상식에 어긋나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러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도록 적당히 뭉개느라 그런 글을 썼을 것이다. 제논의 역설을 예로 들자면, 전제들을 매끄럽게 정리해놓고는 “그렇지만 화살이 날아간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쓰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전승되는 글의 생명력이 탄탄한 논증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모르고 미친 놈처럼 쓰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어떻게든 독특하게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이 매번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고 다른 스타일을 글쓰기를 시도한다고 착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들이 글 쓰는 방식은 매우 단순하다. 글의 주제와 무관한 것을 계속 덧붙이고 남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을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제논의 역설로 예를 들자면, 인류가 언제부터 활을 사용했는지, 언제부터 활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런데도 우리는 왜 시간을 화살과 같다고 비유하는지, 우리에게 화살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지나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길고 지루하게 쓴 다음, “제논의 화실이 활시위를 떠났지만 날아가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행복했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우리 곁에 남아있다”면서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전자든 후자든, 문과대 글쓰기의 두 편향은 결국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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