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3

<박세일 법경제학 교과서 재개정판 출간기념> 연합학술대회를 보고



<박세일 법경제학 교과서 재개정판 출간기념> 연합학술대회에 가서 구경했다. 교과서 재개정판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고, 학술대회 부제인 “한국법경제학의 회고와 전망”을 보고 간 것이었다. 법경제학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게 거의 없어서 그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기도 했고, 한국의 법경제학 성립사가 궁금하기도 했다.

학술대회장에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박세일? 내가 뉴스에서 본 그 박세일은 아니겠지. 동명이인이겠지.’ 법경제학 교과서의 저자는 내가 뉴스에서 본 그 박세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박세일 교수는 박근혜한테 미움받은 떨거지들 모아서 <국민생각>이라는 깜찍한 이름을 가진 정당을 만들었다가 정치적으로 홀랑 망한, 그냥 폴리페서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법경제학에서 박세일 교수의 위상은 대단한 것이었다. 학술대회에서 사회자는 박세일 교수를 가리켜 “한국법경제학의 founding father”라고 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김일중 교수는, 한국에서 ‘법경제학’이라는 용어가 학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지만 실질적으로 법경제학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라고 진단한다.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은 “법경제학에 관한 종합소개서들의 출현”, “국내법제에 대한 법경제학적 분석 논문들의 출간”, “여러 대학에서 법경제학 과목들의 개설”, 이렇게 세 가지 현상이 1990년대 중반에 동시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박세일 교수다. 박세일 교수는 서울대 법과대학에서 <법경제학> 과목을 한국에서 최초로 개설했고 몇 년 동안 강의하던 자료를 모아서 1994년 『법경제학』이라는 교과서를 출간했다.

박세일 교수의 기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학자들의 법경제학 연구는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는 법학과 경제학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접목하면 한국의 법경제학의 수준이 도약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박세일 교수는 <법경제학연구회>를 만들어 매달 월례발표회를 열었다. 연구회는 2002년에는 <한국법경제학회>가 되었고 이때 박세일 교수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창립 11년 뒤인 2013년에는 한국법경제학회 단독으로 국제학술대회도 열게 된다.

학술대회장에서 내가 받았던 놀라움은, 눈썹 이상하게 생기고 미신이나 믿는 산신령 같은 할아버지가 사실은 『경제학원론』의 저자이자 한국 경제학계의 대부였음을 알았을 때 느낀 놀라움과 비슷했다. 나는 박세일 교수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인 줄 몰랐다. 박세일 교수를 회고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 같이 박세일 교수의 인품이 훌륭했음을 언급했다는 점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내가 느낀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의 공과를 판단할 때는 한 측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일이든 전문가가 해야 하는 것처럼 정치도 전문 정치인이 해야지, 교수나 학자 출신이 함부로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한다든지 어떤 기관의 자문을 맡는다든지 하는 현실 참여는 필요한 것이고 권장될 만한 것이겠지만, 학자가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 법경제학의 founding father도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서 곤란한 일을 겪는 판이다. 역사나 문학 같은 거 하는 사람이 정당의 선대위원장을 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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