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선배가 대학원에서 기말 보고서를 쓰느라 어쩔 수 없이 어떤 시사주간지 연재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도시 빈민에 관한 기획 기사였다. 그 선배가 문제 삼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문체, 그리고 그 문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시선이었다.
나도 인터넷으로 찾아서 몇 부분 읽어보았다. 가독성도 낮으면서 아름답지도 않은 문체였다. 어떤 일이 있었으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 쓰면 될 텐데, 문학 소년도 아니고 이상한 수사와 비유로 점철된 문장이 가득했다. 예를 들어, 누가 몇 명 죽었다고 하면 될 것을 꼭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꽃 피는 계절이 올 때마다 주민들은 우수수 졌다. 겨울 동안 웅크렸던 긴장을 놓으면서 겨울 동안 웅크렸던 생명들이 움틀 때 그들은 떠났다. 2014년엔 최소 14명이 이생을 정리했다. 저승사자가 실적을 채우지 못할 때마다 들러 ‘머리수’를 흥정하는 듯싶었다. 주민들에게 환절(換節)의 시간은 살아남아야 하는 나날이었다.”
사람마다 사연도 많을 것이고 그 사람들을 둘러싼 상황도 복잡할 것이다. 지면은 제한되니 그러한 사연과 상황을 누구라도 이해하기 쉽게 쓰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데도 그런 괴상한 문학성(?)을 뽐내니 이런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당시에 그런 기사를 상찬한 사람들도 있다는데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진행된 기사 문체에 관한 연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신문사들은 사람들이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통해 뉴스를 접하게 되면서 기사의 가독성을 높일 방안을 연구했다. <AP통신>의 의뢰를 받은 루돌프 플레시(Rudolf Flesch) 박사는 독자들이 쉽고 편하게 읽으려면 신문 기사의 첫 문장이 평균 1.5 음절의 단어 19개 이하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AP통신>은 기사 첫 문장의 길이를 27개 단어에서 23개로 줄이고, 음절은 평균 1.74개에서 1.55로 줄였다. 비슷한 시기 <UP통신>(<UPI>의 전신)의 의뢰를 받은 로버트 거닝(Robert Gunning)은 기사의 난이도를 분석하는 안개 지수(fog index)를 개발했다. 거닝에 따르면, 당시 <UP통신>의 기사 난이도는 평균 16.7년 이상 교육을 받아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이를 평균 11.7년 정도 교육받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아는 기사 문체는 이 시기에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문체가 달라진 신문 기사를 어려움 없이 이해하는 데도 평균 11.7년 정도 교육 기간이 필요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도시 빈민들을 정규 교육과정 중 몇 년이나 이수할 수 있었을까 자기나 자기 이웃의 삶을 다룬 기사를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도시 빈민은 얼마나 될까?
그 선배가 불편해한 것도 이러한 점과 맞닿아있을 것이다. 그 기사는 애초에 도시 빈민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형태의 글이 아니었다. 도시 빈민을 취재했지만 그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기사도 아니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면 기사를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의 요상한 문체가 도시 빈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자의 야릇한 감상을 서술하는 데 적합한 것이라는 점도 그 선배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을 것이다. 기자가 기사를 쓸 때의 태도는 내가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인 화천이에 대한 글을 쓸 때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화천이의 사진을 찍고 화천이에 대한 글을 쓰지만 거기에 대한 감상은 철저히 나의 감상이다. 처음부터 그 글은 화천이가 보여주거나 읽어줄 글이 아니었다. 기자도 도시 빈민들에게 자기의 기사를 보여주고 읽어줄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자에게 도시 빈민의 사연이란,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희미한 옛 풍경과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지. 그 기사의 문체는 종군기자의 기사보다는 가난했던 옛 추억을 곱씹는, 문학쟁이가 쓴 글에 더 가까워보였다.
* 참고 문헌: 최수묵, 『기막힌 이야기 기막힌 글쓰기』 (교보문고, 2011), 169-170쪽.
(2019.12.26.)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