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이 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자기도 남에게 곧이곧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왜 다른 사람은 나에게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예전에 학부 수업 조교들하고 이야기할 때, 어떤 조교가 학생들이 자기한테 한 이야기를 전하며 개탄하는 한 적이 있었다. 학생이 글쓰기 과제를 제대로 안 한 것 같아서 이 글 쓰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물으니 한 시간 정도 걸렸다고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해당 학부생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20분 만에 대충 썼는데 혼날까봐 작업 시간을 한 시간으로 늘려서 말했을 수도 있고, 서너 시간 동안 나름대로 시간을 썼는데도 글을 제대로 못 쓴 것이 부끄러워서 작업 시간을 한 시간으로 줄여서 말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제서야 조교들이 “아, 그렇네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 조교도 지도교수한테 곧이곧대로 자신의 연구 진행 상황을 말하지 않았을 것인데, 왜 학생들은 조교한테 곧이곧대로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어떤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수업 시간에 학벌 차별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학생들이 학벌 차별이 없다면 누가 밤새워 공부하겠느냐고 답했다고 한다. 해당 교사는 그 일이 마치 현 세태를 보여주는 양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작성해서 올렸다. 내가 보기에, 교사가 수업 시간에 쓸데없는 소리나 하니까 학생들이 대충 대답한 것 같은데, 해당 교사는 그것을 가지고 진지하게 기사로 쓴 것 같다.
부끄럽지만, 지난 23년 동안 아이들을 만나오면서 끝내 설득을 포기한 게 하나 있다. 그들과 진지하게 대화도 나누고,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토론도 해봤지만, 끝까지 평행선만 달렸다. 학벌 문제가 그것이다. 아이들 대부분은 ‘합리적 차별은 정의’라며 학벌 구조를 두둔했다.
그 어떤 논리로도 그들의 생각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면 어느 누가 밤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하겠느냐는 질문 앞에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성만 전제된다면, 학벌은 노력에 대한 합리적 보상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았다.
[...]
지난 19일 고대 세종 캠퍼스 학생이 본교 총학생회 임원으로 임명됐다가 본교 학생들의 반대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세종 캠퍼스 학생을 향한 온갖 비하 발언이 쏟아졌다.
“요즘처럼 내가 고려대(아래 고대) 출신이라는 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다. 단지 지방 캠퍼스에 다닌다는 이유로, '예전 같으면 말도 못 섞었을 천민'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대학생을 과연 지성인이라 할 수 있을까. 저들이 학벌 구조에 기대어 행세하게 될 우리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뭐 이런 것도 기삿거리가 되느냐’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표현이 다소 거칠었을 뿐, 틀린 말은 아니잖으냐는 거다. 세종 캠퍼스의 학생을 고대생이라고 부른다면, 서울 캠퍼스에 다니는 학생에 대한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내가 본교 졸업생이니 그렇게 토를 달 자격이라도 있는 거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지방 캠퍼스 출신이라면 속으로 분을 삭여야지 밖으로 표출한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만약 그랬다간 대번 ‘아니꼬우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로 오지 그랬냐’며 비난을 받게 될 거라고 했다.
“학벌 차별이 없다면 누가 밤새워 공부하겠느냐?”는 학생들의 반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밤새 공부해서 학벌을 획득한 다음 떳떳하게 차별하겠다’고 해석해야 할까, ‘나는 차별받지 않기 위해 밤새워 공부하고 있다’라고 해석해야 할까? 그 학생들이 학벌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을지 생각해 보자. 아이들의 주변 사람들이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고 학벌로 차별하니 꿀맛이더라 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니면 학벌이 후지니 서럽다고 자책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예전에 민족사관고등학교가 없어지네 마네 할 때, 그 학교 동문들이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연달아 신문에 투고한 칼럼을 떠올려 보자. 무슨 놈의 고등학교가 꿈과 낭만의 원더랜드인지 학창 시절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왜? 어차피 좋은 대학에 갈 사람들만 모아놓았고 실제로 다들 좋은 대학에 그런 것이다.
글쓴이의 학생들 중 고려대 이상의 학교에 진학할 학생이 그리 많을 것 같지도 않다. 글쓴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도 기필코 내 대학 후배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당황스러웠던 건, 그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스스로 자극하는 방법이 특이했다는 점이다. 스터디 그룹을 만든다거나 사교육을 더 받겠다는 게 아니었다. 정신력이 해이해질 때마다 유튜브를 본다고 했다.
그들에게 공부의 의지를 북돋우는 유튜브란, 다름 아닌 고대 응원단의 영상이었다. 응원단의 화려한 복장과 절도 있는 동작과 응원곡을 목이 터져라 함께 부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카페인 음료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졸음 방지제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도 자주 듣다 보니 웬만한 노래와 동작은 따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년 뒤 저 인파 속에 자신이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해도 신나고 가슴 설렌다고 했다. 설령 올해 실패한다고 해도, 응원단 영상만 볼 수 있다면 재수, 삼수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확히 어느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인지는 모르겠으나, 고려대에 갈 거라면서 학생들이 사교육이나 공부 모임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고려대 응원단 영상이나 보는 동네라면 진학률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는가? 적어도 올해는 고려대에 갈 수 없다는 것을 학생들도 알고 있다. 그러니 재수, 삼수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반 학생들 대부분은 고려대 서울캠퍼스에 갈 가능성보다 고려대 세종캠퍼스에 갈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고려대 서울캠퍼스 교사가 후배들이 부끄럽다고 하면 학생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기사에도 나온다. “선생님은 고려대 서울캠퍼스 나와서 그런 거잖아요.” 아이들은 차별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군소리 없이 차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마당에 고려대 출신 교사가 “굳이 인간을 평가하고 줄 세워야 한다면, 그 기준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품격과 역량에 둬야 옳지, 그깟 대입 시험 성적으로 얻게 되는 학벌을 잣대로 삼으면 되겠니?”라고 하는, 무슨 고릿적 NL 품성론 같은 소리나 한다면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자기가 고려대 서울캠퍼스에 다닐 때는 그러지 않았다면서 고려대 후배들이 부끄럽다고 하면, 설사 그게 옳은 말이라고 한들, 그런 공자님 말씀에 학생들이 얼마나 감명받았겠는가?
예전에 페이스북 페이지 중에 <나는 학력차별에 반대해서 학교이름을 기재하지 않지만 사실 연세대 서울캠퍼스 출신이야>라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학력차별에 반대해서 학교이름을 기재하지 않는다>고 해놓고는 틈틈이 연세대 이야기를 하면서 내 학교가 부끄럽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을 보고 착안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 링크: [오마이뉴스] “학벌 차별 없다면, 누가 밤새워 공부하겠어요?”
(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45933 )
(2021.05.30.)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