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8

독립연구자



학회에서 발표를 한다든지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는 이름과 함께 소속도 명시하게 되어 있다. 대체로, 학생은 다니고 있는 학교를 소속으로 표기하고, 강사나 교수는 일하고 있는 학교를 소속으로 표기한다. 강사들이 학회 때마다 소속이 계속 바뀌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속이 없는 사람들도 가끔씩 있다. 이런 사람들은 “독립연구자”라고 자기 소속을 표기한다. 신문에 이상한 칼럼 쓰는 사람 중에 독립연구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독립연구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눈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원래 독립연구자라는 말은 소속된 곳이 없음을 나타내는 중립적인 표현이다. 내가 아는 선생님들 중에도 상당히 훌륭한 선생님인데 마찰적 실업 상태일 때 자기 소속을 독립연구자라고 한 분도 있고, 현직 교수이고 매우 훌륭한 분인데 조만간 교수직을 그만 둘 예정이어서 올해 하반기부터 독립연구자가 될 분도 있다. 이런 분들은 독립연구자의 좋은 예일 것이다.

그렇지만 독립연구자 협회가 있어서 회원을 관리하는 것도 아니고 독립연구자 취득 자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연구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연구라고 주장하는 자의식 넘치는 사람들이 독립연구자를 자처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어떠한 제약을 걸지 않으면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이 압도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 독립연구자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분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독립연구자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눈을 이상하게 뜨게 된다.

나는 아직 대학원 다니는 대학원생이라 소속 표기를 고민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나중에 소속 없이 붕 뜨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을 소속으로 표기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연구소가 아니라 그냥 기업이면 표기가 약간 이상해지고 자영업이면 표기가 더더욱 이상해질 것이다. 학회에서 발표하는데 소속 표기를 “네네치킨 신림점”이라든지 “페리카나 봉천점”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다. 발표장 내의 사람들이 소속을 보고는 PPL인가 의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연구자’는 이미 오염된 표현이어서 쓰고 싶지는 않다.

‘독립연구자’의 원래 취지를 살리면서 소속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면서도 연구자를 자처하지 않는, 그런 중립적인 표현이 없을까? 그런 표현이 있다. 바로 ‘무소속’이다. 내가 마땅한 소속이 없어지면 소속을 ‘무소속’이라고 표기해야겠다. 그런데 웬만하면 붕 뜨지 않고 괜찮은 곳에 계속 소속되어서 ‘무소속’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1.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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