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4

한남충 보이루 논문 사태에 하인리히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RISS에서 논문을 찾아보았다. 논문을 대충 훑어본 다음에 그 논문이 어느 학술지에 실렸는지 보았다. <철학연구회>에서 발행하는 『철학연구』에 실린 논문이었다. 『철학연구』? 윤지선 박사의 보이루 논문이 실린 『철학연구』? 내가 알기로, 『철학연구』이라는 이름의 학술지는 한국에 두 개이다. 설마 그 『철학연구』일까. 그런데 찾아보니 그 『철학연구』였다.

분명히 내가 찾아본 논문은 정상적인 논문이었다. 이런 정상적인 논문이 『철학연구』에 실렸다니. 다른 권호에 어떤 논문이 실렸는지 찾아보았다. 믿을 만한 선생님들이 게재한 논문들이 줄줄이 나왔다. 1966년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 같은 건 내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근호에도 정상적인 논문이 게재되어 있었다.

올해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터지고 나서 <철학연구회>가 이상한 논문을 게재했다고 욕먹고 있을 때도 나는 <철학연구회>가 입을 피해 같은 것은 걱정하지도 않았다. KCI 철학 등재지만 해도 40개나 되기 때문에 이번 참에 한두 개 망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다 똑같은 KCI 등재지이겠지만 나름대로의 암묵적인 위계가 있다. 이상한 논문이나 싣는 학술지가 망하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철학 분야의 해외 최상위권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선생님도 『철학연구』 최신호에 논문을 실었던 것이다. 그 선생님 성격을 고려해본다면 아마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터질 줄 알았다면 『철학연구』에 논문을 내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한데, 하여간 그랬던 것이다.

도대체 <철학연구회>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윤지선 보이루 논문이 실렸던 것인가? 멀쩡히 연구 활동을 하던 다른 학회원들은 가만히 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한 것인가?

그런데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마른하늘의 날벼락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일이 터지기 전에도 윤지선 박사의 논문이 『철학연구』에 게재된 적이 있다.

2018년 『철학연구』에 실린 「디지털 성범죄 시스템의 형이상학적 분쇄도: 남성 시선-주체의 인식좌표계 분석」이라는 논문은 「한남충의 발생학」 못지않게 기괴한 논문이다. 제목에 ‘형이상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쥐뿔이나 형이상학 같은 것과는 상관없고 역시나 자유연상법에 따라 쓴 글이다. 남자가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여 불법 촬영하니까 주체-객체 이분법 같은 소리나 하고, 진중권이 남근 다발이라고 한 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남근 다발체 같은 단어나 만들어내고, 촬영하면 시공간, 시공간 하면 좌표계, 이런 식으로 특권적 인식 좌표계가 어쨌다나 저쨌다나 하는, 짜증날 때 짜장면, 우울할 때 울면, 복잡할 때 볶음밥, 탕탕탕탕 탕수육 같은 소리를 논문의 형식을 빌려 싸놓은 것인데, 그게 『철학연구』 122권에 실린 것이다. 그러니까, 윤지선 보이루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적어도 2018년부터 잠재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윤지선 보이루 사태에도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하인리히 법칙은 큰 재해,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며, 이는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철학연구』에 게재된 논문들을 전수조사하면 어떤 패턴이 나타날지 궁금하다.

* 뱀발: 현재 RISS에서 윤지선 박사의 다른 논문은 다 검색되는데 『관음충의 발생학』 논문은 검색되지 않고 있다. 일시적인 장애인지 아예 검색을 막아놓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논문을 이미 다운받아놓았다.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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