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9

철학자는 철학 기반 자기계발서를 어떻게 볼까?

     

<조선일보>에 철학 기반 자기계발서가 국내에서도 인기라고 하는, 광고인지 기사인지 헷갈리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철학 기반 자기계발서는 실용성을 강조”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철학이 어떤 식으로 실용성을 가지는가?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새벽 기상해 자기계발을 하는 ‘미라클 모닝’을 한 달째 실천하는 IT 개발자 최원형(34)씨는 오전 4시 45분에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떠올리며 잠자리에서 빠져나온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침대에서 나오기 어려우면 이렇게 말하라.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 한다.’”
 
그러니까 “당장 써먹을 수 있고, 내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철학이란, 새벽 일찍 일어날 때 침대에서 뭉개적거리지 말라는 지침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잠자리에서 뽈딱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철학의 용도라면, 그에 대한 더 좋은 대체제는 충분히 많다. 깊은 수면을 유도하는 건강보조식품을 먹거나 기상용 알람시계를 하나 더 구입하는 것이 마르쿠스 아우렐레우스의 철학보다는 약발이 좋을 것이다. 할 일이 많아 일찍 일어나야 할 상황이면 그냥 일찍 일어나면 되는 것이지 무슨 놈의 철학이고 실용성이란 말인가.
 
철학 기반 자기계발서가 전하는 다른 메시지도 침대에서 뽈딱뽈딱 일어나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고, 우리의 계획을 거스르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카토)는데, 인생이 계획대로 다 잘 풀리는 사람이라면 굳이 자기계발서를 돈 주고 사서 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가진 것만 잃을 수 있는 법이다”(에픽테토스)라고 하는데, 이런 말은 신용대출 받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사람에게 위로가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작가 에릭 와이너는 자기 책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고대 아테네에 대형 서점이 있었다면 철학과 자기계발 섹션은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는 철학이 곧 자기계발이었고, 심리 치료였다. 실용적이었다.” 철학자들은 이 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이 말에 대해 철학자가 직접적인 답변을 남긴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이먼 블랙번이 다른 책에서 한 말을 통해 철학자들이 자기계발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지 유추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이먼 블랙번은 『국가론 이펙트』(Plato’s Republic: A Biography)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교육자였다. [...] 플라톤의 적인 소피스트들[...]은 살아가는 데 유용한 지혜라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상품화하여 돈을 받고 팔았다(오늘날 서점을 빼곡히 채우는 무분별한 ‘지혜서’와 ‘자기계발서’를 떠올리면 된다). (21쪽)
 
그리고 주석에는 이렇게 써놓았다.
  
소피스트들이 그렇게까지 타락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귀족이었던 플라톤이 그들에게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사실 플라톤의 진술도 그리 신뢰할만한 것은 아니다. 아테네의 법정과 공회의 속성으로 보아 재판을 어떻게 준비하고 자료를 정리하는가를 배우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런 기술을 가르쳐주고 수업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블랙번은, 실제로 소피스트들은 수업료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가르쳐주고 돈을 받았으므로 플라톤이 비난한 것처럼 그렇게까지 타락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기계발서를 팔아먹는 사람들은 가치 없는 것이나 팔아먹는, 그렇게까지 타락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만 보아도, 철학 기반 자기계발서보다는 철학 교양서적이 오히려 더 실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으려나? 이런 단편적인 사례만 놓고 보아도, 철학 교양서적보다 철학 기반 자기계발서가 더 실용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 링크: [조선일보] ‘당장 써먹는’ 철학, MZ세대 사로잡았다
 
    
(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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