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5

진보 실버타운 구상



예전에 어떤 자칭 자유주의자가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했던 적이 있다. 한때 절필 선언까지 했던 사람이 다시 칼럼을 쓰게 된 이유로 내세웠던 것은 “집에 쌀이 떨어져서”였다. 누군가의 집에 쌀이 떨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칼럼을 쓰게 하면 안 된다. 그런 식으로 칼럼을 쓰게 하고 필요 이상의 발언력을 가지게 하면 공론장이 왜곡되고 신문의 수준이 떨어진다.

그런 일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칼럼을 쓰게 할 것이 아니라, 집에 쌀이 떨어지지 않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주거지와 농지를 마련하여 그들이 칼럼 쓸 시간에 농사를 짓도록 하면 집에는 쌀이 떨어지지 않게 될 것이고,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 칼럼도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각한 것이 ‘진보 실버타운’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를 위해 수고한 분들이 세상 일을 잊고 안정된 노후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계획이다.

그러한 실버타운을 만든다면, 수도권은 땅값이 비싸니 지방에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서울에서 너무 먼 곳에 실버타운을 만들면 원로 인사들이 섭섭해 할 수 있으니, 서울과 직선거리는 멀지 않으면서 교통은 불편한 곳이 좋을 것 같다. 교통이 편리하면 괜히 옛날의 미련이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충남 서천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아니면, 재난과 질병을 피할 수 있도록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에 실버타운을 조성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경북 봉화 같은 곳도 괜찮겠다.

평생 육체노동과 담을 쌓은 이들이라 농사짓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농민 운동 하는 분들이 가끔씩 농사를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 먹을 것이 모자라면 후원자들이 먹을 것도 보내주고, 가끔씩 문화 행사도 하고, 의료 시설도 마련하는 것이다. 원로들만 모여 살면 적적할 테니 가끔씩 젊은 사람들이 그 동네로 견학 가서 그들의 고견도 듣고 옛날 이야기도 듣고 지혜를 얻는다. 그러면 그 동네는 나름대로의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관심을 받으면 원로 인사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진보 실버타운의 건립 취지와 무관하게 다시 진보 원로인사들이 불행해질 수 있다. 그래서 관광 상품도 판매해야 한다. 관광 상품으로는 유기농 농산물이 좋다. 왜 유기농이냐 하면 그냥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진보 원로 인사들을 한 곳이 모여 살면 구술사 하는 분들에게도 좋다. 구술 채록하려고 여기저기 갈 필요 없이 한 동네만 가면 되기 때문이다.

범진보 비례 후보 연합정당을 추진하는 원로 진보인사들의 소식을 들으니, 진보 실버타운의 필요성을 더 절감하게 된다. 꼼수에 꼼수로 대응하다 보니, 선거법 개정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는 미래통합당 말에 오히려 무게가 실린다. 원로들도 그러고 싶었겠는가. 마음과 다르게 판세를 읽는 눈도 흐려지고 감각도 무뎌졌을 것이다. 나이 앞에 장사가 없다고들 한다.

그 분들도 다들 젊어서는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원로들에게는 아름다운 노년을 보낼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원로들이 추해지지 않게 할 의무가 있다. <진보 실버타운 건립 추진위원회>라도 만들고 돈이라도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 링크: [아시아경제] ‘비례 연합정당’ “정의당 없이는 창당도 없다... 민주당만으론 안 한다”

( www.asiae.co.kr/article/2020030309400353113 )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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