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니다 보면 공익광고 같은 것을 듣게 된다. 성우가 아기 목소리로 “우리 엄마가 힘들어요. 자리를 양보해주세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다 큰 어른이 억지로 아기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도 들어주기 힘든데, 광고 내용도 정말 말도 안 된다. 임산부는 입 두었다 뭘 하는지 찍소리도 못 하고 말 못 하는 태아가 찡찡거리면서 자기 엄마 힘들다고 한다. 정말 듣기 힘들다.
물론 현실 상황에서는 임산부가 임산부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나 임신했는데 힘드니까 꺼져라”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공익광고에서 임산부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해야 하는 것인데, 공익 광고에서도 당사자인 임산부는 멀쩡히 입이 있고 언어 능력이 있는데도 말 한 마디 못 하고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가 찡찡거린다.
편의점 계산대에도 비슷한 문구가 붙어 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어디 가족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사람들이 지하철공사에 억지로 낸 아기 목소리가 내기 싫다고 항의하면, 아마도 그 다음 광고는 할머니나 할아버지 목소리로 “우리 새아가가 임신해서 힘들답니다”고 하는 광고가 나올 것이다. 한국은 그런 곳이다.
(2020.03.13.)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