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1

국립경상대에서 학술대회를 하게 된다면



지난 주에 동료 대학원생과 함께 경상남도 진주에 다녀 왔다. 태어나서 처음 진주에 가보았다. 태어나서 진주에 처음 간다는 나의 말에, 동료 대학원생은 내가 한국 지명을 많아 알아서 전국 여기저기 가본 줄 알았는데 의외라고 말했다.

내가 지명을 많이 아나? 기억을 더듬어보았는데,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는 많이 했던 것 같다. 뭐가 어디에 붙어있고 거기에 뭐가 있다는데 거기서 무슨 사건이 있었고 등등. 그런데 그 중에 내가 정작 가본 곳은 거의 없었다. 주워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나는 왜 가본 곳이 별로 없을까? 친구가 없어서 그런가, 애인이 없어서 그런가? 하여간 동료 대학원생에게 답했다. “대충 거리를 따져보니까, 제가 60마일을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네요.”

진주에는 현재 교수인 대학원 선배와 유학 중 방학이라 본가에 온 또 다른 동료 대학원생이 있다. 그렇게 네 명이 교수 연구실에 모였다가, 저녁식사로 진주냉면을 먹고, 진주성에 거쳐 진양호에 갔다.

진주냉면이라는 것이 있다고는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먹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육수 맛이 약간 독특했다. 탕국과 비슷한 맛이 났다. 제사 때 집에서 먹는 탕국은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데(무를 너무 많이 넣어서 그런 것 같다), 퇴계 종가에서 먹은 탕국은 맛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주냉면의 육수는 안동 퇴계 종가에서 먹었던 탕국과 비슷한 맛이 났다. 일반 냉면의 육수를 만들 때와 달리, 진주냉면 육수를 만들 때는 멸치 등 해산물을 쓴다고 한다.

진양호 전망대에 오르는데 중턱에 아시아레이크사이드호텔(Asia Lakeside Hotel)이라고 하는 호텔이 있었다. 그 호텔을 보니 학술대회에 대한 발상이 떠올랐다. 학술대회 발표는 국립경상대에서 하고 뒤풀이는 레이크사이드호텔에서 하고, 국립경상대 기숙사에서 묵을 사람과 호텔에서 묵는 사람을 나누고 등등. 그리고 북 세션에서는 『과학철학 고전선집』(가칭)이나 『쿤의 주제들』(개정판)을 다루는 것이다. 참고로, 『과학철학 고전선집』이나 『쿤의 주제들』(개정판)은 아직 세부 출판 계획도 나오지 않은 것들이고 내가 서울대 출판부에 출판 의사를 문의하기만 한 것이다.

내가 전 지도교수님의 조교 일을 할 때 절판된 교재의 스캔 파일을 수업 게시판에 업로드 하는 일을 했다. 대부분의 파일은 이미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이고 나는 업로드만 하면 되었는데, 사람이 하는 일은 다 그렇듯이, 그조차도 하기 싫어졌다. 수업 교재로 쓰는 책의 대부분은 현재 절판되었는데, 그걸 고전선집의 형태로 묶어서 출판하면, 번역자는 (당연히 부족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번역의 대가를 추가로 받을 것이고, 나는 시간에 맞추어 업로드할 필요 없이 교재를 구입하라고 한 번만 공지를 올리면 될 것이다. 서울대 출판부는 『과학고전선집』과 『서양철학의 이해』를 출판한 적이 있으므로, 요청만 한다면 『과학철학 고전선집』(가칭)도 출판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전 지도교수님이 출판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전 지도교수님께 출판과 관련하여 건의하면 괜한 일을 한다고 말씀하실 것이어서, 나는 전 지도교수님을 거치지 않고 서울대 출판부에 연락했다. 출판부에 지도교수님의 의견이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을 먼저 밝힌 뒤 예상되는 책의 목차 등을 보내니, 출판부에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과학철학 고전선집』(가칭)에 대한 서울대 출판부의 긍정적인 답변을 전 지도교수님께 전달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쿤의 주제들』이 오래전에 절판되어서 이것도 스캔해야 하는 판이었다. 『쿤의 주제들』를 출판했던 이화여대 출판부에 문의했다. 이화여대 출판부에서는 저작권 계약 등의 문제 때문에 복간 계획이 없다고 했다. 나는 서울대 출판부에 다시 연락했다. 서울대 출판부에서는 이번에도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는데,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판했던 책이므로 규정상 3분의 1 이상 개정해야 출판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과학철학 인력 등을 대충 따져보니 『쿤의 주제들』 복간 작업에 내가 동원될 가능성은 없었다. 잔심부름이나 허드렛일 정도는 하겠으나 번역 작업에 동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전 지도교수님께 출판부로부터 받은 답변을 전달했다.

서울대 출판부의 답변을 이메일로 보내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한참 말씀하셨는데 간단히 줄이자면, “교재에 대한 생각은 하기는 했는데, 교재를 만들면 아마도 표준 교재로 쓰일 것이므로 1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 하므로 준비가 필요하고, 당장 작업에 착수할 수는 없겠지만 해야 하는 일”이고 “어쨌거나 수고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 교재 작업과 관련하여 선생님께 여쭤본 적은 없는데, 선생님이 워낙 신중하기가 아이작 뉴튼 같은 분이라, 10년을 내다보고 교재를 만들다가 10년 뒤에 완성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하여간, 진양호를 보면서 학술대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구상을 일행에게 말했는데, 말하면서 거리낄 것이 전혀 없었다. 진양호 전망대에서 본 경치가 탁 트여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몇 년 안에 학회 총무이사가 되지 않을 것이고(교수 임용) 총무간사가 다시 되지도 않을 것이어서(내 뒤 순번 대학원생들이 모두 도망가는 대재앙) 그에 대한 업무 부담이 전혀 없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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